챗GPT와 신학교육(下)

오피니언·칼럼
기고
최덕성(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 본지는 최덕성 교수가 지난 3월 9일 서울 안암제일교회에서 ‘챗GPT 시대와 기독교회’라는 주제로 열렸던 개혁신학포럼 정기세미나에서 발표한 글 ‘챗GPT와 신학교육’을 두 번에 걸쳐 게재합니다.

5. 상호보완적 공존

최덕성 박사

학생들에게 ChatGPT를 사용하지 말라고 함은 실효성이 없다. 사용 금지는 학생들의 광범위한 학업 자유를 침해하는 조치이다. 신학교육과 즉답인공지능이 상호보완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방법과 지식이 필요하다. ChatGPT를 잘 사용하면 학습 효율을 높일 수도 있다. 어차피 신학생들은 인공지능으로 움직이는 세상에 살고 있다.

즉답인공지능 ChatGPT는 신학생들의 궁금한 질문에 즉각적인 답을 줄 수 있다. 구원론을 배우는 학생이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라는 생소한 용어를 접할 때, 인공지능에게 즉각 물어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단성론, 양성론, 양태론이 무엇인지, 만인보편구원주의, 유보적 칭의론, 새 관점학파의 바울 이해가 무엇인지 등을 교수에게 일일이 물어보지 않아도 대체로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다.

ChatGPT에게 ‘이 주제의 글을 쓰라’라고 요청하면 고급 답을 얻을 수 없다. 수준 높은 답을 얻으려면 영리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일곱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구체적으로 질문한다, 둘째, 명확하고 간결한 언어를 사용한다, 셋째, 맥락 정보를 제공한다, 넷째, 원하는 글쓰기 스타일을 지시한다. 다섯째, 개방형 질문을 사용한다, 여섯째,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으면 추가 정보를 제공한다. 일곱째, ‘달래기’를 잘 해야 한다. ChatGPT을 살살 달래어 원하는 답을 얻어내는 요령이 필요하다.

글쓰기 인공지능 도구들, 특히 ChatGPT를 효과적으로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있다(이세훈, <챗GPT시대 글쓰기: 오픈AI로 아이디어를 실현하라>, 서울: 매일경제신문사, 2023); 김철수, <챗GPT와 글쓰기: ChatGPT와 함께하는 AI 글쓰기 실전>, 서울: 위키북스, 2023). 글쓰기 목적에 적합한 번역기, 영어 문법 교정과 가독성과 흐름을 개선해주는 그래멀리(Grammarly), 글을 단순화 하고 간결하게 쓰도록 돕은 헤밍웨이(Hemingway) 등도 유익한 글쓰기 도구들이다.

즉답인공지능 ChatGPT는 깊은 사고가 필요하지 않은 질문에는 답을 잘 하지만 독창성을 요구하는 답변을 하지는 못한다. 복잡한 질문에 논리적인 답을 내놓지 못한다. 사회적 편견을 담은 오답을 내놓기도 한다.

6. 교수법

신학교육에서 즉답인공지능 사용을 허락할 경우, 우선적으로 인공지능의 윤리성과 즉답인공지능표절이 무엇인가를 학생들에게 정확히 일러주어야 한다. 인용할 경우 전거를 밝히도록 한다. 그리고 즉답인공지능에 의존하면 이해력, 논리적 사고력, 분석력, 비판력, 종합력, 창의력 등 다양한 인문적 역량이 연마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단히 강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학교육에 다음과 같은 교수법 개선과 적용이 바람직하다. 첫째, 수업방식의 전환이다. 일명 ‘거꾸로 하는 학습’(Flipped Learning)은 집에서 영상 강의를 듣고, 인공지능 선생님에게 물어보고, 강의실에서 교수의 부연 설명을 듣고 복습하는 방식이다. 필자는 2020부터 2023년 현재까지 “거꾸로 하는 학습방식”을 따라 신학교육을 진행해 왔다. 먼저 주제 학과목 영상을 주의 깊게 시청하고, 교실에서 질문과 토론을 하고, 필요한 부연 설명을 해 준다.

둘째, 양질의 소논문 또는 학술 에세이를 쓰게 한다. 학생 자신이 독자적으로 연구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담아 직접 작성하게 한다. 분석, 비평, 종합, 창의적 적용 능력을 향상시킬 목적이다. 학생 자신의 관점, 자기 이야기, 자기가 이해한 것을 진술하는 자기 이야기 형식의 글을 쓰도록 한다. 첨부한 학술 에세이를 참고하라.

이렇게 하면 ‘짜깁기식’ 보고서나 에세이를 요구하는 교육은 배움마당에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된다.

셋쩨, 시험문제는 ChatGPT가 답할 수 없는 것으로 출제한다. 강의영상을 충실히 시청하고 그 요점들을 중심으로 자기의 명료한 주장을 논리적으로 풀어 쓸 수 있는 문제를 출제한다. 교수가 감독하는 시험 장소에서는 인공지능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넷째, 기말 시험은 교수나 감독자 앞에서 손으로 직접 글을 쓰는 논술형 시험을 치르게 한다. 학술 에세이 쓰기 과제도 강의실에서 교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필로 직접 쓰게 한다. 학생이 교실에 출석하여 시험을 칠 수 없는 형편이면, 전화나 줌이나 화상 채팅으로 구두시험을 치른다. 영상 강의를 충실히 시청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건물 없는 대학-신학교가 유비쿼터스 방식으로 교육을 진행할 경우는 조별로 토론을 하고 함께 과제를 푸는 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

다섯째, 학술 에세이 작성에 ChatGPT 이용을 허용하는 경우는 출처, 전거를 밝히도록 한다. ChatGPT가 생산한 글을 자신이 쓴 것처럼 제출하면 부정행위로 간주하겠다고 공지한다. 자기가 쓴 것인 양 과제물을 내는 것은 속임수이다.

이러한 교육방식은 교수에게는 학생 개개인의 학습 활동을 감독, 감시, 확인할 것을 요구한다. 즉답 로봇을 이용한 부정행위를 적발하는 책임이 추가된다. 이 학습은 학생과 교수의 비율의 폭이 낮을수록 효과적이다.

즉답인공지능의 등장과 더불어 암기력이 존중받고 높이 평가되는 교육 풍토는 사라지고 있다. 단순 암기와 주입식 교육은 사라지고 있다. 지식이나 정보의 양(量)보다 비평적 사고능력이 더 중요한 시대로 바뀌고 있다. 외워서 답안을 쓰던 시대에서 창의력 요구하는 시대로 전환되고 있다. 분석, 비판, 창의적 적용 그리고 논리적 판단 능력이 더 중요해 졌다. 강의 방식과 학생 성적 평가 방식이 획기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7. 사람의 몫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정보의 정확도, 신뢰도를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사람이 인공지능에 의존하면 분별력, 판단력, 창의력 등이 둔해진다. 마음이 판단할 문제를 기계에 맡기면 그 기계가 우상이 된다. 학습방해물이 될 수도 있다.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정보가 정확하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의 필요나 질문에 대한 최상의 응답인지를 분별,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ChatGPT에 의존하는 형식의 글쓰기는 인간 뇌의 이해력, 분석력, 판단력, 비판력, 그리고 창의력을 점차 감퇴시킬 수 있다. 계속적으로 인공지능 로봇에 의존하여 걷거나 무거운 짐을 옮는 경우, 인간의 근육이 점차 퇴화하는 것과 비슷하다.

쉬운 길을 버리고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위에서 소개한 몇 가지 교육방법들은 신학도가 평소에 ChatGPT을 사용해도 지적 역량이 감퇴하지 않고 향상시킬 수 있 방편들이다. ChatGPT을 활용하더라도 개인의 지적 근육을 연마하는 훈련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들이다.

기존 검색엔진을 활용하여 자료를 검색하고, 이를 바탕으로 글의 목차와 내용 틀을 구성한 뒤에 ChatGPT을 활용하여 광범위한 정보로 보완할 수도 있다. 과거 학력검증 시험에는 계산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지만, 지금은 허용한다. 신학교육 마당도 즉답인공지능 사용을 허용하는 반면에 학업성취도 평가 시험에는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학술 에세이 쓰기의 비중을 줄이라는 요구가 많아 질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ChatGPT는 순수한 글쓰기가 배양하는 고도의 비평력과 판단력을 요구한다. ChatGPT가 작문을 제대로 했는지, 맥락을 놓치지는 않았는지, 편향된 내용이 아닌지, 주제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등을 판별. 판단하는 작업은 글쓰기에서 구축된 분석, 비판, 종합, 창의적 적용으로 이어지는 비평적 사고능력을 터득한 자의 몫이다.

즉답인공지능 ChatGPT은 양날의 칼이다. 인간을 노예나 바보로 만들 수 있고, 인간에게 충직히 봉사하는 수단일 수도 있다. 신학교육이 제공하는 분석력, 비평력, 종합력, 창의적 응용력, 문제 해결 능력을 구축한 자의 손에서는 유익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학술적인 글쓰기, 깊은 사색, 독서, 활기찬 토론에서 얻어지는 논리성, 비평력, 창의성을 배양하는 방식의 신학 교육이 절실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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