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이 본 성혁명사(92)] 일상에서의 성혁명(2)

오피니언·칼럼
민성길(연세의대 명예교수)
민성길 명예교수

섹스의 정신적 차원이 인간으로 하여금 동물과 구별되게 해준다. 그러나 인간도 육체를 가진 이상, 인격과 감정은 근본적으로 섹스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통제되지 않은 성혁명적 프리섹스는 성병과 임신과 낙태 같은 문제로 육체뿐 아니라 마음에도 심각한 상처(트라우마)를 준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런 경고를 듣기 힘든가? 그것은 섹스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숨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미디어나 TV나 영화도, 주로 섹스의 겉보기의 “멋진 것”만 이야기한다.

섹스는 선택이다. 그러나 댓가 없는(free) 프리섹스는 없다. “멋진 섹스”는 피임약 광고문구이거나, 휴 헤프너의 선동이거나, 문화적 망상이다. 실제 프리섹스에는 임신, 성병, 낙태, 미혼모,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의 상처, 즉 정신적 비통(heartbreak)이 따른다. 특히 여성의 비통함은 크다. 여성에게 “상호허락”이라는 핑계는 옳지 않다. 왜냐하면 프리섹스로 인한 임신의 현실적인 귀결은 낙태(살인) 아니면 미혼모이기 때문이다. 요즘 성교육에서도 콘돔 사는 법과 "morning after" (사후피임약)을 구매하는 것을 가르칠 뿐이다. 이런 조처로 성병이나 임신은 줄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프리섹스가 야기하는 정신적 후유증을 막을 수 없다.

성혁명이 한창인 60년대에 한 성문화연구에 참여하였던 하바드의대 정신과교수 Dr. Armand Nicholi, Jr.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임상가들은, 새로운 프리섹스 문화가 정신적 재앙을 불러오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하바드학생들에서 프리섹스는 공허한 인간관계와 자기모멸의 감정으로 이끌었다; 그들 다수가 시간 보내기와 죽음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60년대 미국의 성혁명 문화가 그러했다고 하더라도, 21세기 지금은 어떨까? 2010년대까지 성혁명의 후유증에 대한 경고들이 많이 발견되나, 요즘은 뜸한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워낙 그 후유증이 뚜렷하고, 이미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젊은이들의 섹스는 성급하고 당황스럽고 서툴다. 결혼한 부부간에서 보는 안정된 친밀감이 없다. 영화나 포르노에서 “연출되는 장면”과 전혀 다르다. 그들은 그 순간 육체적 쾌락보다 감정적 충격을 받기 쉽다.

프리섹스의 가장 뚜렷한 내면의 상처는 공포이다. 생경함과 미숙함에 대한 불안, 도덕규범을 위반한다는 두려움, 임신에 대한 공포, 성병에 대한 공포, 그래서 부모가 알가봐 하는 공포 등이다. 에이즈 테스트를 받아야 하나, 또는 임신테스트를 해야 하나 등등 미칠 듯이 괴롭다. 그 공포는 국가의 보건통계와는 상관없는, 개인적인 내밀한 공포이다. 그러나 의사와 양호교사와 상담사들은 그들의 공포와 그들의 울음을 알고 있다.

흔히 청소년 소녀들은 미숙해 보일가봐, 또는 남자친구를 잃을가봐 두려워, 섹스를 허락한다고 한다. 이후 로맨스는 깨어지고 후회와 분노와 불신과 우울증만 남는다. 상담실에서 흔히 소녀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남자친구가 결혼해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학교에서 나를 피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대학가의 소위 hook-up 섹스에서도 남는 것은 후회이며, 혹시나 전화 오기만을 기다리는 초라한 모습만 남는다.

특히 구강성교는 임신도 안시키고 성병도 안걸리게 한다는 생각 때문에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남자들이 강요한다고 한다. 그러나 구강성교도 성병이나 에이즈에 걸리게 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여성이 구강성교에 응해주면 사후에 심각한 자존심 훼손이나 모욕감이 남는다는 사실이다.

프리섹스에 따른 후회, 자기비난, 그리고 죄의식도 있다. 청소년의 경우 더욱 그러하며, 소녀들이 더 괴로워한다. 그 섹스가 일회적(casual)이었거나 약물(술)을 사용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면, 깨어 난 후 상대가 누구였는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자기 모멸감이 더 크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서 영적으로 귀중한 것을 내팽겨쳤다고 후회한다. 그 허탈하고 공허하고 어두운 마음은 자신 이외에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

몰래 하여야 하는 낙태 때문에 많은 여성들은 심한 정신적(감정적) 상처를 입는다. 우울증, 악몽, 자기가치감 상실, 죄의식 등으로 괴로워한다. 낙태 시술 전후 그런 비통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한참 후에도 새삼 고통이 회상될 수 있다. 임신을 시킨 남자도 낙태 사실을 알게 되면 괴로움을 피할 수 없다.

프리섹스는 결혼으로 이어지기보다 헤어짐으로 끝나는 수가 많다. 섹스가 두 사람의 관계를 지배하게 되면 그동안 단순하게 좋았던 관계는 끝나고, 의사소통이 중단된다. 분노, 성급함, 질투, 이기심 등등이 생겨나고, 조만간 관계는 지루해진다. 관계에 변화가 요구되고, 그리고는 결국 관계가 깨어진다. 그러면 배반감으로 이후 모든 인간관계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

흔히 여자는 섹스에서 관계강화와 친밀과 케어를 기대하지만, 이후 남자가 로맨틱한 흥미를 보이지 않으면, 여자는 속은 기분이 들기 십상이다. 신뢰 상실의 궁극적 결과는 우울증과 자살, 아니면 반동적으로 더 섹스에 몰두(강박, 중독)하거나 술이나 마약에 빠지게 한다.

프리섹스는 젊은이들의 미래의 균형 잡힌 인간발전을 방해한다. 청소년의 경우 학교 공부를 지속하기 어려워진다. 흔히 소녀들은 남자친구의 일부가 되어 자신을 포기하기 십상이다. 더구나 결혼한 후, 프리섹스의 상대가 현재 부인이 아닐 경우, 과거 섹스파트너를 플래시백(flashback), 즉 순간적으로 회상함으로 현재 부인과 비교한다. 최근 이혼이 증가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과거 프리섹스 때문일 수 있다.

궁극적으로 프리섹스는 자신의 이기적 쾌락을 위해 타인을 성적 대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자존심을 훼손하는 것일 뿐아니라 거짓말을 하게 만든다. 흔한 거짓말은 ”사랑하니까“이다. 거짓 사랑은 자신과 상대를 파멸로 이끈다. 성관계를 가지다가 헤어지게 되면, 성관계가 없었던 경우보다 자살위험이 6배 더 크다는 통계가 있다. 섹스는 단순한 육체관계 이상이기 때문이다. 정신적이고 영적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개인의 인격은 타락으로 빠져 든다.

“포괄적“ 성교육은 청소년들에게 임신과 성병을 예방하기 위해 콘돔을 사용하라고 가르치지만, 마음의 상처를 예방할 방법은 없다. “There is no condom for the heart”. 미국의 어느 금욕교육 포스터에 나오는 문구이다.

60년대 Dr. Armand Nicholi, Jr.의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학생들은 의미를 갈구하였고, 도덕적 틀을 원하였다; 도덕적 상대주의에서 떠나 명백한 가치의 체계로 옮겨 갈 때, 또한 약물남용이 없는 라이프스타일과 엄격한 성적 규범을 지킬 때, 이성과의 관계가 개선될 뿐 아니라 일반적인 동료와의 관계도 개선되고 부모와의 관계와 학교 성적도 개선되었다; 성행동을 성적 자기-훈육(sexual self-discipline. 절제)으로 바꾸기로 결정한다면, 그런 선택은 보상을 받는다.

또한 모든 프리섹스의 부정적 대가에도 불구하고, 죄의식이 남아있고, 그 죄의식이 양심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또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결심의 증거라면, 그 경험은 건강한 경험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상처를 통한 성장이 크리스천의 희망이다.

#민성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