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과 다양성은 ‘하나님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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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영(미국 변호사, 세인트폴 세계관 아카데미 대표)
정소영 미국 변호사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특징은 한마디로 '상대주의'입니다. 세상에는 어떤 절대적인 진리도, 절대적인 삶의 기준도 없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각자 자기의 소견대로 기분 좋게, 행복하게 살면 된다는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단연 두드러지는 단어는 '관용, 포용, 다양성, 환대' 같은 말들입니다.

최근에는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도 '교회가 너무 세상과 단절되었다, 세상과 대화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하는 말들이 심심찮게 나옵니다. 제가 주로 다루고 있는 세계관 분야에서도 저명하신 전문가분들께서 그동안의 기독교 세계관은 세계관별 차이점만을 너무 강조하고 서로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버림으로써 기독교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킨 것이 문제였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교회가 세상 속에서 영향력을 잃고 세상과의 소통이 힘들어진 이유는 기독교가 세상에 대하여 너무 편협하고 포용성이 부족하고 환대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로 세상과 섞이고, 타협하고, 세상으로부터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크리스천들이 교회 문턱만 밟고 다녔지 세상과 구별되는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의 어둠을 밝혀주는 빛과 세상의 부패를 막아주는 소금의 역할을 못 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도 세상으로부터도 쓸모가 없어져서 밟히는 것이지, 크리스천들이 진정 성경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 거룩하게 구별되는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경멸과 모욕은 당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 이 시대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진단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다양한 것들을 좋아하시는지 자연을 보면서 많이 느낍니다. 자연계의 모든 생물의 디자인이 얼마나 다양하고 신묘막측한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의 지문이나 홍채도 같은 것이 하나도 없고, 일란성 쌍둥이들이라 하더라도 그 성품과 기질이 다 다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마음이 넓으신지요. 세상 누구라도 회개하고 돌이키기만 하면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사랑해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 이상의 '환대'가 또 있을까요?

에덴동산에서 모든 것을 허용하셨지만, 피조물인 인간에게 단 한 가지,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고 한계를 정해주셨던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한계 안에서 얼마든지 다양함, 포용성, 관용을 베풀고 누리라고 허락하시는 분이십니다. 다만 창조 때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이 인간이 그 한계를 벗어나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살려는 것이 문제이지요.

저는 교회 안에서 세상과 화해하려는 노력보다는 하나님과 화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 안에서 이웃을 품고, 환대하고, 포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우선순위가 바뀌는 순간, 세상은 우리를 우습게 보고, 더 밟으려고 할 것입니다.

#정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