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국의 ‘백지’ 시위, 자유·민주화의 불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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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역에서 불타오른 반정부 시위가 세계로 번지고 있다. 당국의 ‘코로나 제로’ 방역에 따른 과도한 봉쇄에 항의 표시로 시작된 시위가 집권 3기를 시작한 시진핑 권력에 대한 반정부 투쟁으로 격화하고 있어 과연 이 사태가 어디까지 번져 나갈지 주목된다.

11월 마지막 주말 중국의 수도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등 대도시에서 일제히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시민들의 분노는 중국 내 주요 도시 16곳으로 번져 나갔고 홍콩 등 중화권 국가와 미국과 영국에 이어 우리나라 대학가까지 퍼져나가는 양상이다.

이번 사태가 심상치 않은 건 유혈 희생자가 나온 지난 1989년 6월 천안문 시위 이후 33년 만에 ‘반정부’ 구호가 터져 나온 본격적인 정치 시위라는 데 있다. 독일의 한 언론이 “11월이 중국엔 ‘분노의 달’로 기억될 것”이라고 보도한 데서 보듯 잠깐 일어났다 사그라들 분위기가 아니란 점이다.

이번 시위의 발단은 중국 당국의 무리한 ‘제로(zero) 코로나’ 방역정책에 있다. 지난달 24일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10명이 숨진 사건이 기폭제로 작용했다. 주민들은 화재가 발생했는데도 아파트 단지를 폐쇄하고 현관문을 쇠사슬로 잠그는 등 무리한 코로나 봉쇄 정책 탓에 제때 화재 진압이 되지 않았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코로나 방역을 빙자한 봉쇄조치에 불만을 품고 있던 다른 지역의 중국인들도 이런 뉴스를 접하면서 사람의 생명보다 코로나 통제를 더 중시하는 당국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한 명만 나와도 도시 전체를 감옥화해 온 것에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화재 사건은 곪을 대로 곪은 환부가 터진 것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이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나에게도 언제고 닥칠 수 있는 불행이라고 인식하게 된 것이 더 크게 작용했다. 이것이 중국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위가 벌어지게 된 진짜 배경이다.

엉뚱하게도 카타르에서 열리고 있는 월드컵도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월드컵 중계 TV 화면에 잡힌 카타르의 모습은 중국인들이 보기엔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응원단이 마스크 없이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중국인은 “같은 지구에서 사는 사람이 맞나” 하는 탄식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분노가 ‘코로나 제로’를 고집하고 있는 중국 당국에 대한 항의 수준을 넘어 공산당 정부를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로 쓰나미처럼 한꺼번에 덮친 것이다.

특이한 건 시위 군중이 아무 글씨도 쓰지 않은 ‘백지’를 들고 거리에 나온 점이다. 이른바 ‘백지’ 시위는 3년 전 홍콩 민주화 시위 때 등장해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당시 홍콩 시민들은 중국 정부의 검열과 통제에 저항하는 의미에서 아무런 글씨로 적지 않은 ‘백지’를 들고 시위에 나섰다. 그 ‘백지’가 중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에 다시 등장했으니 예사롭지 않다는 거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지난 10월 말 3연임을 확정했다. 중국 공산당이 집권한 후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중국 안팎에서 시황제가 등극했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으나 이는 14억 인구의 중국의 모든 걸 거머쥔 절대 권력자의 탄생을 의미한다. 정치적 경쟁자도 없는 상태라 탄탄대로가 펼쳐질 것으로 여겨졌던 그의 앞길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닥친 것이다.

‘플래시몹’ 형태로 전 세계로 번져 나가고 있는 ‘백지’ 시위가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중국 공산당과 영구 집권을 노리는 절대 권력자 시진핑이다. 과거 봉건주의 군주시대를 혁파하고 들어선 중국 공산당이 시진핑이 집권한 후 사실상 왕권으로 회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작은 불씨를 거대한 산불로 키운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 당국이 대중의 불만을 누그러트리기 위해 어느 정도 완화책을 쓰긴 하겠지만 근본적으론 조금도 변하지 않을 거로 보고 있다. 그런 만큼 이번 사태를 조기에 진압하기 위해 강경한 수단을 동원할 거란 건 누구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럴 경우, 1989년 천안문 유혈사태 때보다 더 큰 희생을 초래하게 되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된다.

다만 중국 당국도 과거와 같은 강경 시위 진압에 앞서 고민해야 할 문제가 있다. 성난 시위대가 ‘공산주의 반대’ ‘시진핑 반대’ 구호를 당당히 외치고 있는 건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이건 시위에 나선 사람들이 더는 폭압적인 공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폭정이 통하는 건 대중을 두려움에 떨게 해 무조건 복종하게 만드는 데 있다. 북한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고사포를 쏴 잔인하게 살해한 것도 그런 공포정치의 일환이다.

문제는 그런 폭압 통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두려움과 공포감을 떨치고 일어나면 그때부터 폭정은 약발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2010년 12월 18일 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일어난 재스민 혁명을 시작으로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등 아랍 세계로 번진 민주화 운동이 바로 그런 경우다. 지금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고 있는 중국민의 시위 역시 ‘자유’와 ‘민주화’를 향한 오랜 갈망이 당장의 두려움보다 훨씬 크다는 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