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는 바로 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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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우 작가(전국청년연합 ‘바로서다’ 대변인, <선의 비범성> 저자)
황선우 작가

“성경 읽어본 적 있나? 하나님의 자리에 돈을 넣어 읽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야. … 돈이란 믿음, 난 그 길을 선택한 거야.”

이미 부자였던 권요한(최원영)이 금수저를 사용해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 황현도의 삶을 빼앗고서 한 말이다. 금수저로 동갑내기의 집에서 식사만 하면 부모를 바꿀 수 있다는 설정의 드라마 <금수저>는 일확천금의 비극을 보여준 것은 물론, 소위 수저계급론의 비극 역시 보여줬다. 성경 인물 요한 같이 살길 거부한 권요한은 황현도가 되어 최고의 부를 얻었지만 그의 삶은 괴물과 같이 변했다.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데 있어 방해가 되면 원래의 자신이었던 권요한마저도 살해하고 모든 것을 감췄다. 그 끝은 비극이었다.

권요한이 애초에 괴물과 같은 심성이 있어 그랬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부모를 바꾸는 패륜적인 마법이 굳이 존재한 것이 문제였다. 권요한은 권요한의 삶을 살았으면 가식적이든 억지로든 훨씬 인간적이고 선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에게는 황현도의 부가 필요했던 게 아니라, 남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열등감 속에서 살아가던 삶으로부터의 회복이 필요했다. 현실에서는 이런 마법이 존재하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장난으로라도 “나도 재벌 집 자식이었으면 좋겠다” 등의 말을 하는 이들이 나오지 않도록 무엇이 진짜 행복인지 알려주는 것이다.

금수저, 흙수저 같은 단어는 2015년경부터 유행했다. 가정 형편이 결국 대학 입시와 취업까지 영향 준다고 하며 가정 형편을 금, 은, 흙 등으로 계급을 나눈다. 이는 수저계급론으로 이어져 자본주의를 공격하는 이론의 역할까지 해왔다. 그런데 진짜 현실을 보니 어땠나? 흙수저를 위한 정책을 펼친다고 했지만 저소득층의 소득은 더 낮아졌고, 금수저를 그렇게나 비판하던 수저계급론자들이 더 악랄하고 위선적인 비리를 저지른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다. 흙수저라 불리는 이들을 정말 위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많은 이들을 고민케 했다.

드라마 <금수저>는 이를 넘어 많은 것을 잘 짚어주었다. 이승천(육성재)이 금수저를 이용해 재벌 아들 황태용이 되었으나 겉만 바뀌었을 뿐 자신의 진짜 매력과 흠은 여전했음을, 그래서 이승천일 때의 그를 좋아했던 나주희(정채연)는 여전히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아들이 부모를 바꾼 걸 안 아버지(최대철)는 어땠나. 모든 게 원망스러울 수 있었던 순간에도 죽을 때까지 아들을 사랑했고, 이제 남의 아들이 됐음에도 또 한 번 그를 보고싶어 했다. 그리고 황태용이 되길 원하는 이승천에게 나주희가 말하는 “승천이로 남아줘”, 황태용(이종원)에서 이승천이 되어 모든 걸 잃은 듯한 그가 말하는 “금수저는 바로 접니다”, 이 두 말은 같은 의미를 지닌다.

금수저, 흙수저 같은 단어가 유행했던 2015년경에 필자가 이런 단어를 장난으로라도 잘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이는 스스로 부모님 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을 “흙수저”라 하면 스스로 부모님에게 흙이라 비난하는 게 되고, “금수저”라 하면 역시 스스로 부모님에게 금상을 주는 어이없는 행동을 하는 게 된다. 이런 황당한 단어가 퍼지니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비하하는 단어가 등장하는 건 당연하다.

무엇이 해결책인가? 드라마에서처럼 점쟁이 할머니를 찾아가야 하나? 부모를 원망해야 하나? 나보다 부유한 사람을 보며 시기해야 하나? 모두 옳지 않다. 많은 걸 가진 자라 한들, 가지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면 열등감은 영원하다. 황현도가 된 권요한에게 이승천 어머니(한채아)가 말했듯, 모든 걸 다 가졌다 해도 그 사람은 가난하다. 남과 비교하는 걸 그쳐야 한다. 그리고 부모님의 경제 형편이 어떻든 그것과는 독립적으로 이제 성숙한 한 인간으로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부모님이 돈이 많다고 그것만 의존한다면 그것만큼 미숙한 게 없고, 부모님이 돈이 부족하다고 그것을 원망한다면 그것만큼 비참한 게 없다.

나에게 주어진 성별, 국적, 부모님 등 이 모든 것은 그 무엇보다 위대하다. 그리고 나의 상황에서 허락된 기쁨과 슬픔 이 모든 것은 그 무엇보다 귀중하다. 남과 비교할 수 없는, 열등감도 우월감도 가질 필요 없는 행복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당신 바로 옆에 있다.

#황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