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곤 목사 복음전파로 전남 신안군 봉리교회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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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글씨로 쓰인 교회 연혁 문서에 기록돼
봉리교회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전남 신안군 지도읍 봉리 원동마을에 설립된 봉리교회가 이 마을에서 출생한 한국CCC 설립자 故 김준곤 목사에 의해 1951년 4월 15일에 시작됐다는 문서가 공개됐다.

그동안 김준곤 목사의 친척인 문준경 전도사가 마을을 순회하며 복음사역을 할 때 봉리마을에선 김준곤 목사의 집에 2~3일씩 머물면서 어머니에게 복음을 전하고 동네사람들을 모아 복음을 전했다는 것은 알려져 있었으나, 봉리교회가 김준곤 목사의 첫 복음전파로 시작됐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밝혀진 것이다.

CCC 총재 특보를 역임하며 김준곤 목사를 가까이에서 보좌했고, 김 목사의 역사 정리를 해온 김철영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는 김준곤 목사 서거 13주기인 29일 해당 문서를 공개했다.

지난 26일과 27일 전남 신안을 방문한 김 목사는 봉리교회 최용호 담임목사를 만나 펜글씨로 쓰여진 교회 연혁이 적힌 문서를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봉리교회 연혁’이라는 이 문서에 따르면 “1951년 4월 15일 김준곤 목사의 첫 복음전파로 시작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김 목사는 한 달 후에 송리복 전도사를 봉리교회 초대 전도사로 청빙할 수 있도록 주선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봉리교회 연혁 문서에는 “1951년 5월 15일 송리복 전도사가 초대 교역자로 부임하여 (김준곤 목사 안내로) 당시 남상길 집사댁에서 모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김 목사가 한 달만에 봉리교회 초대 전도사를 청빙한 것은 6.25 전쟁의 상처와 아픔 때문으로 보인다.

봉리교회 연혁 문서 ©세계성시화운동본부

봉리교회는 1952년 4월 송희복 전도사가 사임을 하고, 1952년 5월 감정리 소재 백련교회로 전 성도들이 임시 출석을 했다. 그리고 1954년 9월 다시 봉리 원동 소재 박금례 집사 댁에서 모였다.

1955년 9월에는 서동 남집사 댁에서 모였으며, 1958년 3월 24일 김재권 전도사가 부임해 1960년 4월 7일 원동에 16평의 초가 교회당을 건축했다. 1965년 4월 김재관 전도사가 사임하고 1966년 2월 7일 박형구 전도사가 부임해 1970년 5월까지 시무했다. 이어 1970년 10월 15일 정재원 전도사가 부임해 1972년 10월까지 시무했다.

1972년 11월 13일 이영조 전도사가 부임했으며, 1972년 12월 1일 성가대가 조직됐다. 교회가 그만큼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1973년 1월 1일 교회당 신축안이 통과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김준곤 목사는 봉리교회 예배당 건축을 위해 밭을 기증하고 큰 액수의 건축헌금을 냈다.

한편 한국대학생선교회(CCC, 대표 박성민 목사)와 세계성시화운동본부(대표회장 김상복 목사·전용태 장로)는 지난 8월 29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제1차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한데 이어 오는 11월 7일 오후 3시 신안군 증도면 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에서 ‘김준곤 목사 선양 제2차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제2차 학술심포지엄에는 주도홍 박사(총신대 초빙교수, 백석대 전 부총장)가 “김준곤 목사의 통일운동”에 대해 발제하고 논찬은 안인섭 교수(총신대 신대원)가 담당한다. “문준경 전도사와 김준곤 목사의 영적 계승”이라는 주제로 이은선 교수(안양대)가 발제하고 김호욱 교수(광신대)가 논찬을 한다. 또한 “신안군 관광문화와 김준곤 목사”라는 주제로 곽행구 박사(광주전남연구원)가 발제하고 황종환 박사(지식공유상생네트워크 이사장)가 논찬을 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