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포스트 코로나, 한국교회 이대로 주저앉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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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종식 가능성을 언급한 가운데 우리 정부도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 시점을 놓고 논의에 들어갔다. 지금처럼 코로나19가 안정적으로 관리된다면 머지않아 모든 제재를 풀겠다는 취지여서 완전한 일상회복의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 집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확진자 수 대비 치명률은 0.11% 수준이다. 1.1%인 미국, 영국(0.8%), 프랑스와 독일(0.5%)과 비교해 봐도 월등히 낮다. 백신 3차 접종률도 우리나라는 65.4%로 미국 39.4%, 프랑스 63.7%, 이스라엘 57.6% 보다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 등 방역을 위한 기본 제재만큼은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이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우리나라보다 치명률도 높고 3차 백신 접종률이 더 낮은 국가들이 오래 전부터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를 비롯해 거의 모든 제재를 푼 것과 비교된다.

정부가 방역과 관련한 제재를 쉽게 풀지 못하는 이유는 코로나19 유행이 한동안 잠잠하다 다시 확산되는 싸이클에 학습된 탓이 크다. 또 국민 사이에 코로나19를 여전히 위험하게 여기는 인식도 작용하고 있다.

치명률이 아무리 낮고 백신 접종률이 높아도 코로나19가 감기나 독감과는 분명 다르다고 여기는 사회적 인식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증거다. 이런 위기의식이 코로나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두려움에 떨고 있어야 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국가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위원회 위원장 정기석 교수는 이에 대해 “세계적으로 팬데믹에 대한 종식이 이어질 때 우리나라만 뒤처져서는 안 될 것”이라며 “준비는 지금부터 해나가야겠고, 앞으로 6개월 정도 뒤면 본격적인 출구전략이 마련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코로나19 종식에 따른 준비에 들어갔다는 건 한국교회에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코로나19 펜데믹이 앗아간 지난 3년여 시간과 희생, 고통을 생각할 때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도 없지 않다.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정부가 취한 방역조치는 제재에 방점이 있었다. 그것도 선택적 통제가 일상화 되면서 국민 원성이 컸다. 코로나19 발생지인 중국에서 들어오는 해외입국자는 그대로 두고 교회 등 일부 확진자 그룹을 성난 여론의 방패막이로 삼았다.

정부의 통제 위주의 획일적 방역 조치의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교회에 돌아왔다. 소상공인 영세 자영업자들이 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 삶의 벼랑 끝까지 내몰렸다면 교회는 영적으로 더 절박한 위기상황에 처해졌다.

그중 교회가 예배할 자유를 박탈당한 건 영적으로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당한 것이나 진배없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인 예배의 방법을 놓고 교회 내부에서 대면·비대면파로 나뉘어 찬반이 격화되고 갈등으로 번지게 된 것도 처음부터 정부가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큰 내홍을 입은 건 한국교회다.

지난 20일 예장 통합측 총회장에 선출된 이순창 목사는 총회 개회 설교 중 이 문제를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이 목사는 “팬데믹 시대에 우리는 많은 아픔을 겪었다. 하루에 우리 교단 교인 수가 313명씩 줄었다. 3백만에 가까웠던 우리 교단 교인 수가 2백35만8,914명이 되었다. 참으로 안타깝다”고 했다.

한국교회 교단의 교세 감소세는 비단 통합측만의 문제는 아니다. 예장 합동측은 이번 총회에 교인 수가 한해동안 9만여 명이 줄었다고 보고했고, 고신측은 총회 산하 교회의 주일학교 학생 수가 지난 1년간 무려 33.8%나 준 것으로 보고해 충격을 안겼다.

한국교회의 교세 감수 추세는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지속돼 왔다는 점에서 이 모든 것이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코로나가 한국교회 회복의 의지를 꺾은 것만은 분명하다. 문제는 당장 이런 난제를 타개할 마땅한 방안도 묘안도 없어 보인다는 데 있다.

이 문제를 놓고 최근 교단마다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는 있으나 그 어떤 처방도 약효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통합측 총회장이 “이 때에 우리가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나. 남들을 탓하고 원망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며 “우리는 약자와 연약한 자를 끌어안아야 한다”고 한건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다는 뜻이다.

이런 때에 미국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어려운 교회를 돕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어 주목된다. ‘위 브릿지’(We Bridge)로 이름 붙여진 이 운동은 팬데믹 기간 중 미주의 많은 한인교회들이 문을 닫고 있는 현실에서 어려운 환경에 처한 교회와 목회자를 돕자는 뜻에서 미주 기독일보 등이 앞장서 교회와 교회를 연결하는 사역을 진행해 오고 있다.

주최측은 ‘위 브릿지’ 사역을 통해 모든 교회들이 본래의 사명인 ‘세상과 그리스도를 잇는 다리’의 역할을 잘 감당해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큰 교회와 작은 교회들이 주님의 지체로서 서로 이어지는 목회적 다리가 되어 선한 동역의 모델을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다. 미국 남가주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 사역이 한국교회에 자극제가 되어 선한 ‘나비효과’가 계속 일어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