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도 제목보다 학생들 위한 기도 제목 우선될 때 교사 되는 것”

차명호 교수(부산장신대) ©구포교회 교사헌신예배 영상 캡처

구포교회(한영수 목사)에서 지난 10일 열린 교사헌신예배에서 차명호 교수(부산 장신대)가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태복음 28:1~20)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차명호 교수는 “세상의 교육과 교회 교육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가 과제다. 학교 교육은 학생과 선생님의 관계가 성적으로 잘 배웠는가를 평가하고 학생들도 교사를 평가한다. 교사와 학생이 서로를 평가하는 데 익숙하다. 그런데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는 세상 학교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세상 학교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게 교회 학교다. 교부 시대에도 교리를 가르치고 성경을 가르치는 학당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보면 교회 학교가 세상 학교를 따라가고 있다”며 두 개는 분명히 분리되어 있다”고 했다.

이어 “마태복음 28장 20절에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라고 명령하셨다. 예배가 있기 전에 가르치는 게 먼저였을 수도 있다. 가르치는 건 오래된 교회의 전통이다. 이 가르침에 관해선 복음서에 많이 나와 있다. 중요한 건 가르치라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가 한 문장으로 연결돼 있다. 이게 바로 세상 교육과 교회 교육이 다른 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세상에선 ‘가르쳐 알게 하라’, ‘가르쳐 배우게 하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교회는 가르쳐 지키게 하라다. 문제는 우리가 세상 교육에 익숙하다 보니까 세상 교육방식과 내용을 교회에서도 익숙하게 적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열심히 가르치지만 가르친다고 해서 다 배우는 것은 아니다. 배웠다면 분명히 변화와 성장이 있을 텐데 변하지 않는 것을 보니까 배운 척을 하는 것이다. 학생들도 배움의 변화를 일으키기보다는 배운 척 연기하는데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가르친다고 해서 늘 배움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우리 현실”이라고 했다.

이어 “왜 우리가 열심히 가르치지만 배움이 없는지에 관해 누가가 답을 준다. 사도행전 1장 1절에서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이라고 말한다. 행하시며 가르치셨다는 두 개의 단어를 연결해놨다. 누가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서 예수님은 단지 가르치시는 분이 아니라 행하고 가르치신다고 두 개를 연결해서 증언하고 있다”고 했다.

차 목사는 “세상일에는 가르치는 사람보다 배우는 사람이 그것을 더 잘할 수 있지만 교회 일, 복음은 그렇지 않다. 사랑하라고 가르치려면 사랑을 행해야 가르칠 수 있다. 이게 세상의 것과 전혀 다른 것이다. 예수님은 정말 사랑하시면서 가르치셨는가?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엔 예수님의 가르침이 많이 나오는데, 그 무엇 하나도 자신은 행하지 않으면서 제자들에게 행하라고 종용한 적이 없으시다”고 했다.

이어 “마태복음 5장 44절에서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이를 행하시기 위해서 마지막에 붙잡히시기 바로 전까지도 예수님을 이용하고 부인하고 회피하는 제자들에게 여전히 사랑을 몸소 행하시며 가르치셨다. 그 증거가 요한복음 13장 1절에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나와 있다. 자기를 팔아먹을 유다, 배신할 베드로, 서로 싸우고 회피할 그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그뿐 아니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신 것도 행하셨다. 누가복음 23장 34절에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용서하는 기도를 하셨다. 가르친 것을 그대로 삶에서 행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는 성경에서 늘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행하면서 가르치는가? 아니면 가르치기만 하는가? 가르치기만 한다면 우리는 주님이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을 반만 행하는 것이다. 세상의 방식인 가르쳐 알게 하라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정작 주님의 명령인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은 부족한 모습”이라고 했다.

차 목사는 “제가 목회할 때 경험한 것 중 하나가 설교가 너무 힘들었다. 매주 몇 번의 설교를 하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설교 거리가 없어서 힘들었다. 성경 지식과 교리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어서 이 책 저 책을 봤지만 그런다고 해서 설교의 능력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깨달은 게 있다. 내가 주님이 명하신 것을 행하지 않으면서 설교 거리에 올리는 게 양심에 꺼렸던 것이다. 용서하라, 사랑하라는 설교를 하려니 양심에 꺼려서 빼고 나니까 설교할 게 없었다. 그게 저의 문제였다”고 했다.

이어 “교회 학교의 가르침은 근본적으로 세상 학교와 내용도 다르고 방법론적으로도 다르다. 우리가 오랫동안 세상 교육에 익숙해져서 교회 학교에서도 객관적인 것 중심으로 가르친다. ‘열두 제자의 이름은?’. ‘예수님 아버지의 이름은?’. ‘팔복은?’ 이렇게 객관식화 되어 있다. 사실 교회에서 그 무엇을 가르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학생들이 그 누구가 되는가를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나 자신이 그것을 지켜 행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보니까 자꾸 누구가 되는가보다 성경, 교리에 있는 객관적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가르쳐 알게 하라만 집중하고 가르쳐 어떤 사람이 되게 하라까지는 잘 못 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차 교수는 “우리는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하는가? 누가복음 17장 7~8절은 주의 종이 된다는 것,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제자가 된다는 게 어떤 사람을 의미하는지 예수님께서 가르쳐 준 부분이다. 본문의 종은 밖에 나가서 종일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 쉬지도 못하고 주인의 식사를 준비한다. 그리고서 쉬는 게 아니라 옆에서 주인의 수종을 들어야 한다. 예수님의 종이 된다는 건 그런 것이다. 일주일 내내 세상에서 일하고 힘들어서 제일 쉬고 싶을 때 주일날 나와서 종처럼 섬긴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세상에서 바빴다고 변명할 수도 없다. 그게 주님의 종이 감당해야 하는 첫 번째 과제라고 말씀하신다”고 했다.

이어 “두 번째 과제가 있다. 예수님께선 17장 9절에서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고 하신다. 첫 번째 과제가 육체적으로 힘든 이야기라면 두 번째 과제는 정신적으로 힘든 이야기다. 그래도 주님 사랑하니까 열심히 교사로 섬겼다. 너무 힘든데 주님께서 너희가 육체적으로 수고했다고 감사하겠느냐라고 말씀하신다. 주인은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고 교회에 와서도 교사로 열심히 일할 때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이 감사하지 않아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게 주님이 얘기하시는 종이 감당해야 하는 두 번째 과제”라고 했다.

이어 “감사하다는 이야기 하나만으로 살 수 있는 게 사람 일이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감사하다는 그 한마디를 못 들어서 섭섭해서 분란이 일어나고 싸운다. 그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하지 않아서 마음이 섭섭한 사람도 있다. 그런데 주님께서 명하셨다. 칭찬받을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게 주의 종이 되는 두 번째 비결이라고 말씀하신다”고 했다.

또 “세 번째 도전이 있다. 세 번째는 영적으로 힘든 것이다.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라도 가지면 좋은데 주님은 그것도 하지 말라고 하신다. 주님의 귀한 사람이라는 자부심도 갖지 말고 나는 무익한 종 다시 말하면 쓸모없는 종이라고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라는 것이다. 헌신은 여기까지 와야 헌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대부분 육체적으로 힘든 걸로 헌신이라고 말한다. 칭찬도 받아야 하고 자부심도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사람들 앞에서 나는 쓸모없는 종이라고 고백하라는 것이다. 종이 해야 할 일을 다 한 후에라고 되어 있다. 해야 할 일을 다 완수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쓸모없는 종이라고 고백하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차 교수는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완악한 죄인이었는지, 얼마나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는지 알고 있다. 주님을 만나서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 영생을 약속받은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받았다.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악한 것임을 우리는 잘 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교사로 택하셨다. 완벽하고 능력 있고 온전해서 택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지 잘 아신다. 완벽하지 않은 것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교사의 자리로 세워주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 본질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주님 앞에서 끊임없이 쓸모없는 종이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완벽하게 모든 것을 헌신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주님 앞에서 쓸모없는 종이라고 고백하는 자세를 우리가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객관식 문제를 가르치고, 교회 열심히 다니면 세상에서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가르쳤다. 그게 아니라 반대로 해야 한다. 세상에서 아무리 부자가 되고 높은 사람이 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주님 앞에 서는 순간 쓸모없는 종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행하고 보여줘야 한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셨다. 주님께선 우리의 잘난 것으로 택하지 않으셨다. 그러니 부족한 것을 숨길 이유가 없고 학생들 앞에서 의인인척 할 이유도 없다”고 했다.

차 교수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옛말이 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신대원에 가서 전도사를 하는데 이기적이고 못난 전도사니 학생들과 교사들이 너무 힘든 것이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난 어느 날 제가 중등부에서 제일 어려운 가정에 있는 학생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울고 있었다. 그때 이렇게 사역자가 되어간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가 그렇게 주님의 종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나의 기도제목보다 학생들을 위한 기도제목이 더 우선될 때 교사가 되는 것이다. 지금 인생의 중요한 다섯 가지 기도제목을 뽑으라고 하면 대부분 자신을 위한 기도일 것이다. 내가 맡은 학생들을 위한 기도가 그 기도제목보다 우선인지 돌아봐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학생들을 맡기셨다면 그게 제1순위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나머지 일들은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주실 것이다. 그게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다. 우리가 그렇게 교사가 될 때 우리의 교회와 가정이 가르칠 뿐만 아니라 지켜 행하는 일이 벌어지는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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