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데믹 터널 지나니 경기침체… 돌파구 안 보이는 韓경제

코로나 후폭풍 물가 치솟고, 전쟁으로 공급망 교란 악화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에서 고객들이 장을 보고 있다. ©뉴시스

전 세계가 코로나19 충격에서 벗어나나 싶더니 그 후유증으로 시중에 풀린 풍부한 유동성 탓에 물가가 치솟는 것은 물론 경기 둔화까지 우려되는 등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공포가 짙어지고 있다.

한국 경제는 주요국 중 코로나19 위기를 가장 먼저 털고 일어서는 저력을 보여주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공급망 차질과 일제히 급등한 에너지·곡물·원자재 가격, 환율 변동 등 대외여건은 다시금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12일 관계부처와 통화당국 등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16일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과 함께 올해 경제 성장률 수정 전망치를 내놓는다. 지난해 12월 이전 정부가 제시한 3.1%에서 얼마나 하향 조정할지 관심이 쏠린다.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한 2020년 한국 경제는 -0.9% 성장률로 역성장 했으나 지난해 반등에 성공하며 4.0%의 비교적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정부는 물론 대외 기관은 올해도 3%대 성장을 예측하는 곳이 많았지만 최근의 경제여건을 감안하면 대폭적인 후퇴가 불가피해 보인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교란이 전쟁 여파로 더욱 가중됐다. 국제유가는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고, 곡물과 원자재 수급에 있어서도 비상 상황이 장기화되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경우 작금의 상황에 매우 취약하다. 국제 유가 상승과 공급망 불안으로 작년 하반기부터 꿈틀대기 시작한 물가는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올해 초 3% 수준이던 물가는 두 달 만에 4%대를 돌파해 지난달 5.4%까지 치솟았다.

공급망 위기 속에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소비까지 폭발하면서 물가는 걷잡을 새 없이 치솟고 있다. 정부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고심하고 있지만 급등세를 제어할 마땅한 카드가 보이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의 연간 물가 상승률을 4.8%로 대폭 높였다.

주요국이 기준 금리 인상과 함께 양적 긴축에 나서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흐름에 있어 기막힌 반전을 이끌어내지는 못하는 형국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지난 3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올린 데 이어 5월에는 한 번에 0.5%p를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그럼에도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는 8.6%나 올랐다. 1981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우리나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국은행(한은)은 지난 5월 두 달 연속 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등 현재 기준금리는 1.75%까지 오른 상태다.

한은은 앞으로도 물가 상방리스크가 큰 상황에서 통화정책도 물가에 비중을 두고 수립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물가 상승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하는 만큼 올해 4차례 남은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금리를 추가로 올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부와 통화당국은 당분간 5%대 물가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하반기 물가가 6%까지 오를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도 내놓고 있다. 6%대로 올라서면 이 또한 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치솟는 물가도 문제지만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은 것도 통화당국으로서는 여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1년 후 물가 상승률을 전망하는 일반인들의 기대인플레이션은 3.3%다. 전문가들의 경우 기대인플레이션은 3.7%로 더 높은 수준이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높으면 물가 상승을 우려하는 근로자는 기업에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 이러한 임금 인상분은 상품과 서비스 가격 등에 더해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부채질 한다.

문제는 이 같은 물가 상승 흐름 속에서도 경기 둔화가 심화되는 양상이다. 지난 4월 경제 지표 중 생산, 소비, 투자가 일제히 하락하는 이른바 '트리플 감소'가 나타났다. 최근 경기 흐름을 보여주는 세 지표가 모두 하락한 것은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 2월 이후 26개월 만이다.

대외적인 악조건 속에서 우리 경제를 코로나19 확진자 감소와 일상 회복에 따른 내수 회복 요인이 떠받칠 것으로 기대를 모으지만 지금과 같은 물가 상승 추세라면 하반기 경기 회복에 제약 요인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 위기에서도 우리 경제의 큰 버팀목이 됐던 수출도 이전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전망을 어둡게 한다. 여전히 월간 수출액은 역대급 실적을 보여주고 있지만 에너지 가격 급등에 연속적인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며 비상이 걸렸다.

지난달 수출액은 615억2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1.3%나 늘면서 역대 5월 중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수입액이 1년 전보다 32%나 늘어난 632억2000만 달러로 17.1000만 달러 적자를 보였다.

원유와 가스 등 에너지 수입액 증가로 무역 적자 폭이 커질 우려가 있는 가운데 수출 효자 품목인 반도체가 하반기에는 지금처럼 힘을 쓰지 못할 것이란 어두운 전망도 나온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수출 호조의 배경과 함의'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진정되지 많을 경우, 세계경제는 1970~80년대와 유사한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도 있다"면서 "우리 수출도 당시보다 더 심각한 부진을 보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처럼 무역수지 적자폭이 확대되면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경상수지도 적자가 우려된다. 올해 관리재정수지가 2차 추가경정예산 기준 110조원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여 경상수지와 재정수지가 동시에 적자에 빠지는 쌍둥이 적자가 굳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드리울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 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경제 성장률이 2%대 중후반을 가리키고 있는 만큼 지나치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 장기화되면 코로나19 위기보다 더 큰 경제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은 전형적인 공급비용 상승충격이 유발한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으로 경직적인 노동시장으로 인해 생산성이 약화되고 잠재성장률이 저하되고 있다"며 "향후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통화 정책의 필요 강도를 높여 국내경제의 공급비용 부담을 가중시키면 유동성 회수와 금리인상으로 경기침체의 강도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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