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깜깜이’ 선거에 ‘백년지대계’가 좌우되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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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교육감 선거는 우리 교육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런데 서울을 비롯해 다수의 지역에서 보수 후보들이 난립함으로써 지난 2014년과 2018년 선거의 재탕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후보 등록 현황에 따르면, 이번 교육감 선거는 전국 17개 시·도에서 치러진다. 그중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 후보 간에 1대1로 대결하는 것은 7곳에 불과하고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중도·보수 후보가 난립하는 상황이다.

특히 가장 관심이 집중된 서울시교육감 선거의 경우 중도·보수 진영 후보만 4명이 등록했다. 이중 조전혁·박선영·조영달 후보는 인지도가 엇비슷한데다 ‘전교조 아웃’ 등 내세우는 정책에 차이점이 거의 없어 그만큼 유권자의 선택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뛰어든 보수 성향의 후보들은 지난 선거의 뼈아픈 경험으로 일찌감치 단일화 작업에 적극 뛰어드는 듯했다. 지난 2014년과 2018년 선거에서 보수 후보 들 간에 표가 분산돼 진보 후보에게 ‘어부지리’를 안긴 경험 때문이다.

그런데 잘 되는 것 같더니 또 다시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병이 도지고 말았다. 상대방을 비방하는 녹취록까지 공개되는 등 도리어 감정싸움의 골이 깊어지는 바람에 단일화 약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들은 투표용지 인쇄 전인 19일까지 단일화 결론을 내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지만 결국 시간만 끌다 ‘각자 도생’하는 길을 택했다. 각자 유권자의 심판을 받겠다는 뜻이겠으나 그 결과가 과거의 재탕이라면 그 책임을 누가진단 말인가.

반면에 진보 진영은 현 조희연 교육감이 현직 프리미엄을 한껏 누리는 분위기다. 진보 성향의 후보 3명이 출마했지만 이중 강신만 후보가 최근 조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사퇴하는 등 일찌감치 진영 내 결집을 다지고 있다. 강 후보는 후보직 사퇴 후 조 후보 선거대책본부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진보 진영이 이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배경은 보수 후보의 당선만은 무조건 막겠다는 공감대를 이룬 데 있다. 보수 후보들이 한결같이 전교조를 공격하는 것도 일종의 자극제가 됐다. 전교조 부위원장 출신인 강 후보의 경우, 보수 후보들이 저마다 선거 현수막에 ‘전교조 아웃(OUT)’을 표기하는 등 노골적으로 적대시 하는데 자극 받아 조 현 교육감을 밀어주기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현 교육감이라는 유리한 고지에다 단일화를 통한 결집까지 더해진 진보 진영의 현실은 후보 난립으로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보수 진영의 후보들에게는 ‘타산지석’이고 더할 수 없는 위기의식이 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이들 보수 후보들은 기회와 시간을 모두 허비했다. 그 뿐 아니라 지지자들의 기대와 희망까지 모두 날려버렸다.

이미 지난 27~28일 사전 선거까지 진행된 이상 단일화는 벌써 물 건너갔다. 이대로라면 보수진영은 2014년과 2018년에 이어 또다시 패배가 눈앞에 어른거리고, 결과적으로 조희연 현 교육감에게 승리를 갖다 바칠 분위기다.

이런 현실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바로 교육감을 뽑는 선거제도다. 지방선거와 함께 4년마다 치러지는 교육감 선거는 ‘돈 선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지난 2018년 선거 당시 교육감 후보자가 선거에 쓴 평균 지출액이 11억여 원이었다.

그런데 교육감 후보는 선거법상 정당 소속으로 출마할 수 없고, 정당의 지원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선거비용 대부분을 후보가 직접 부담해야 한다. 이런 어마어마한 비용을 개인이 모두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특정 단체들로부터 암암리에 돈과 인력을 지원받고 당선된 후 정책과 행정력으로 그 빚을 갚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국의 시도에서 17명의 교육감이 집행하는 교육 예산은 무려 93조 원이 넘는다. 또 전국 57만 명의 교사와 교직원의 인사권까지 쥐고 있다. 교육 예산 집행권과 인사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교육감의 자리지만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정당의 개입을 막고 있어 누군지도 모르는 ‘깜깜이’ 선거가 매번 반복되고 있다는 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란 게 ‘눈 가리고 아웅’식이다. 지난 25일 조희연 후보의 측근이 더불어민주당 소속 서울시의회 의원들과 만나 선거 전략을 논의한 정황이 모 언론 보도로 드러나 논란이 됐다. 공개된 녹취에는 조 후보 측근이 “조전혁으로 집중되는 보수의 결집을 흩트려 놓아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에 대해 조 후보 측은 선거캠프와 무관한 개인의 사적 행동이라는 입장이나 사실로 밝혀질 경우 정당이 선거에 관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지방자치교육법 위반이다.

실제로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를 모르거나 지지하는 사람이 없다는 응답이 서울은 60%, 경기도는 70%에 달한다. 결국 이런 맹점을 마음껏 향유해 온 쪽이 진보진영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018년 교육감 선거에서 17개 시·도 중 14곳에서 진보 성향 후보가 휩쓴 것이 그 증거다. 그렇다고 보수 진영이 억울한 피해를 봤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는 중도·보수 후보 난립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표가 분산된 반면 진보 진영은 결집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어떤 선거든 현실적으로 정책 경쟁보다는 보수-진보 간의 성향 또는 진영 대결로 흐르기 일쑤다. 그런 마당에 정당의 개입을 무조건 막는다고 교육의 질이 나아지리란 보장은 없다. 도리어 제도상의 허점과 맹점을 마음껏 이용해 득을 보는 구조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문제점에 대한 대안으로 시도지사 후보와 교육감 후보가 러닝메이트로 함께 나와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는 방법도 거론되고 있다. 제도에 문제가 있으면 바꾸는 게 상책이다. ‘깜깜이’ 선거의 결과가 ‘백년지대계’를 좌우하는 현실을 언제까지나 방치할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