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론] 누가 구원을 받습니까?(1)

오피니언·칼럼
기고

*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최더함 박사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 7:7)

“내가 나의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사 42:1)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해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라”(시 135: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5)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1. 선택에 대한 여러 주장들

기독교의 구원의 종교이며 그래서 핵심교리는 구원론이며 특히 구원론 교리에서 가장 중요하고 동시에 난해한 부분이 예정교리 즉, 선택에 관한 교리입니다. 즉, ‘누가 구원을 받는가?’ 하는 물음에 여러 주장들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를 종합하면 세 부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오직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쟁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인간이 보답하여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이 있으며, 가장 성경적인 것, 즉 칼빈주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따라 택함을 받은 자만이 받는다는 주장입니다. 교회사에서는 선택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이 분출되었습니다. 이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특별히 오늘 설교에서 거론되는 인물들과 이들의 주장들을 이해하고 자세히 기억하심으로 좋은 판단의 근거를 삼으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요즘처럼 들끓는 이단과 그들의 교리들에 미혹되지 않고 잘 분별할 수 있는 지식과 정조가 될 것입니다.)

1) 많은 초기 교부들은 이교도적 숙명론과 영지주의적 결정론을 피하기 위해 인간의 의지의 자유와 회개하고 믿음을 발휘하는 능력을 강조했습니다. 즉, 구원은 인간이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달렸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교부 오리겐(254년 사망)은 성경의 예정에 관한 표현들을 강조하면 이교도들의 숙명론을 부추기는 결과가 된다면 예정교리를 매우 꺼려 했고, 크리소스톰(407년 사망) 같은 교부는 “주님은 우리에게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본성을 주셨다”며 “하나님은 인간의 이러한 합당한 일을 보시고 선택을 하신다”고 말했습니다.

2) 4세기에 들어서서는 반(세미)펠라기우스주의가 등장했습니다. 적어도 어거스틴 이전까지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인간은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강조하는 이른바 신인협력설이 우세했습니다. 빈켄티우스(434년 사망), 파우스투스(490년 사망) 같은 사람들은 “적어도 인간의 의지가 약화되었지만 하나님을 향해 첫걸음을 뗄 정도는 된다”며 인간의 자력 구원에 힘을 실었습니다. 그들은 예정론 교리를 숙명론으로 오해한 나머지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교리는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무력화시킨다고 공격했습니다. 특히 힐라리우스(449년 사망)는 어거스틴의 은혜와 선택의 교리를 철저히 반대했습니다. 이에 교회는 529년에 오렌지공회를 열어 이러한 반펠라기우스주의를 정죄했습니다.

3) 그러나 카톨릭 교회는 계속해서 인간의 전적 타락과 무력함을 반대했습니다. 그들은 죄인들이 아담의 타락으로 덧붙여진 은혜(첨가된 은혜)를 상실했지만 선을 원하고 행할 능력은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각 개인이 은혜받기를 갈망하고, 선행을 하여 공로를 쌓고(묵주 기도, 금식, 자선 등), 교회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성체 성사에 참여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가톨릭은 택한 백성도 죄의 상태에 머물게 되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4) 이후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조건적 선택을 주장했습니다. 이들의 전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인간의 자유는 서로 양립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명령은 보편적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복음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선택이란, 하나님이 미리 아신바 선행적 은혜에 반응하여 회개하고 믿게 될 이들을 구원하시기로 일반적으로 작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구원의 요소는 하나님의 은혜와 동시에 인간의 의지가 모두 포함됩니다. 따라서 이들의 구원은 신인협동입니다. 하나님만 은혜를 주신다고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수납할 때 구원이 이루어지며 얼마든지 인간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의지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 있는 자유를 가졌다고 주장했습니다.

5) 이러한 사상에 영향을 받은 감리교의 창시자 웨슬리(1791년 사망)는 끔찍이도 예정교리에 거부감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는 “나는 예정이라는 끔찍한 교리에 분명히 담겨 있는 신성모독을 거부한다. 이런 교리를 믿느니 차라리 터키인이나, 이신론자나, 아예 무신론자가 되는 게 낫다”고 폭언을 했습니다. 그는 시종일관 하나님의 선택 교리는 하나님을 죄의 조성자로 만든다고 억지를 부리며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을 버렸습니다.

6) 웨슬리의 강력한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사람이 찰스 피니(1875년 사망)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사람들을 두 부류, 즉 구원받을 수 있는 자들과 구원받을 수 없는 자들로 나누어 세상을 통치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시 말해, 구원이 가능한 자들은 믿음을 발휘할 수 있음을 하나님이 아신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피니는 선택을 개인적 구원 가능성에 대한 하나님의 예지로 본 것입니다.

7) 현대에 들어서는 잭 코츠렐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인간의 결정으로 하나님의 주권이 손상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하나님은 인간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 결정에 따라 움직인다”며 조건적 선택 교리를 강력하게 주장하였습니다.

8) 이외에 바르트주의 선택 교리가 있습니다. 바르트(1968년 사망)에게 있어서 선택은 복음의 핵심을 이룹니다. 그러나 그는 칼빈주의 선택 교리를 부정했습니다. 그는 칼빈주의의 견해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예수 그리스도와 무관하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모순이며, 또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역동적인 역사를 배제하고 정적이고 고정된 결정으로 묶어두기에 만민을 위한 복음의 효력을 제한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대표작인 <교회교의학>에서 독특한 선택 교리를 전개했습니다. 먼저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택”을 전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택하시는 하나님과 택함을 받은 인간이 하나로 결합되신 분’으로 정의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그분 없이, 그분을 벗어나서, 하나님은 어떤 것도 택하시거나 뜻하시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한편으로 그분은 하나님의 선택 대상이고,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께서 거절당하도록 선택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인간에게 거절당하는 형벌을 당하셨을 때 그는 택함을 받은 분임과 동시에 버림을 당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여기서 그의 예정론이 등장합니다. 그는 “예정이란 인간이 거절당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거절당하는 것은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 거절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정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거절당하지 않도록 정하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의 이런 견해는 ‘만인 구원설’이 되었습니다. 그는 설교 시간에 불신자들이 자신이 아직 택함을 받은 사실을 모르는 예비 신자로 규정하고 그들을 존중한다면서 불신자들을 늘 “형제자매 여러분‘으로 호칭했는데 이것이 바르트 신학의 요체를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계속)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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