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얀마 사태 100일, “가서 도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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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미얀마 국민 시위가 11일로 100일째를 맞지만, 사태 해결은커녕 갈수록 악화일로에 있다. 미얀마 국민은 “유엔이 행동에 나서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체가 필요한가”라며 국제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눈물로 호소하고 있으나 강대국 간의 셈법이 서로 달라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을 초래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2월 1일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들에 의해 시작된 평화시위를 군부가 무력으로 저지하는 과정에서 770여 명이 사망하고, 정치인도 4,700명이 체포 구금됐다. 그러나 군부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수가 점점 더 늘어나면서 이를 막는 군부의 폭력도 심해지고 있다.

미얀마 국민이 군부의 총칼 앞에서도 목숨을 걸고 시위에 나서고 있는 것은 지난 50년간 군부의 철권통치를 겪어오며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신념과 의지가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미얀마는 지난 2007년 수십 명이 목숨을 잃은 ‘샤프란 항쟁’을 통해 더는 군정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국민적 열망을 표출한 바 있다.

미얀마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민정 이양 이후 2015년과 2020년 두 차례 치러진 총선 결과가 말해준다. 특히 지난해 총선에서는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상·하원 471석 중 396석을 차지하는 등 압승을 거두었다. 그러자 자신들의 미래가 위태로워진 군부 핵심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찬탈한 것이다.

미얀마 사태는 최근 군부 통치에 반대하는 미얀마 내 민주 진영과 소수 민족 반군이 임시정부 형태의 국민통합정부(NUG)를 수립하면서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NUG가 시민방어군을 창설해 군부에 강대강으로 맞서면서 평화시위는 내전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양측이 무력 충돌하는 과정에서 앞으로 얼마나 끔찍한 인명 살상 행위가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 미국과 유엔이 하루라도 빨리 행동에 나서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러나 미얀마 사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엔 등 국제사회가 적극적인 사태 해결에 나섰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유엔 안보리 이사회에 속한 강대국들이 서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바람에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EU 등 서방 국가들은 미얀마 군부에 강력한 제재를 주장하는 반면에 중국과 러시아는 제재에 반대하며 힘겨루기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 5월 4~5일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G7 외교·개발장관회의에도 미얀마 사태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그러나 발표된 성명은 “미얀마 군부의 폭력적 대응을 강력히 규탄하며 수치 여사 등 체포된 인사들을 즉각 석방하고 민의에 의해 선출된 민주 정부로 정권을 이양하라”고 촉구했지만 그야말로 원론적 입장을 표명한 것에 불과해 사태 해결을 위한 방안 제시에는 한참 멀었다는 평가다.

미얀마 군부에 대한 미국과 유엔 안보리 차원의 제재 움직임에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 정부는 “국제사회가 한 국가의 내정에 간섭해서는 안 되며, 미얀마가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미얀마 사태에 개입하려는 유엔의 길목을 차단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이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6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미얀마 국민들에 대한 폭력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더 이상 인명의 희생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군부를 비판했다. 그러자 외교부도 세 차례 성명을 통해 폭력 사용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으나 이 역시 원론적인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정부가 미얀마 사태에 미온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은 유엔 등 국제사회가 확실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크지만, 중국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그런데 정말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오히려 비난을 사기 십상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군부독재를 단죄해 온 정부 여당이 중국과 국제사회를 설득하는데 앞장서지는 못할망정 남의 나라 일이라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교계 역시 이 문제를 남의 나라 일로 여기는 분위기다. 다만 미얀마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지원하는 교단과 단체들은 미얀마 사태가 어디로 흘러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주시하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난 4일 한국세계선교협의회와 한국교회봉사단이 공동 주최한 ‘고난받는 미얀마와 함께하는 제1차 기도회’는 한국교회가 미얀마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기도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과제를 던져줬다.

이날 기도회에서 증언한 미얀마 한인선교사회 회장 강성원 선교사는 “미얀마 사태가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211명의 한인 선교사가 현지를 떠났고, 아직 167명의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신변안전도 보장받지 못한 채 현지에 남아 삶의 터전까지 잃어버린 미얀마 사람들을 위한 사역을 펼치고 있다”며 “선교사들과 미얀마 국민의 안전과 생계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호소했다.

미얀마는 전통적인 불교 국가이나 기독교 선교활동에 대해서는 비교적 제재가 덜한 나라 중 하나였다. 따라서 400여 명의 한국 선교사들이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28:19)라는 성경 말씀을 실천하며, ​병원과 학교를 세우는 등 활발한 선교활동을 전개해 왔다. 그런 미얀마가 군부 철권통치시대로 다시 돌아가게 되면 최악의 경우 현지의 선교사역을 모두 접고 빈손으로 떠나야 하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

사도 바울은 환상 가운데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소리를 듣고 즉시 마게도냐로 건너가 복음 전도사역을 시작했다. 지금 미얀마 국민은 5.18을 겪은 한국 국민에, 그리고 400여 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한국교회에 눈물로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건너가서 도우라”는 주님의 음성에 응답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