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리뷰-③] 한국교회에서 ‘무교성’과 ‘유교성’을 벗겨내었을 때 남을 것

목회·신학
신학
이해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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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현 교수(연세대, 신학) 「자아도취와 우상숭배」 논문

논문 정보 : 『우상과 신앙』 (한울, 2019): 15-51

 

정재현 교수의 『우상과 신앙』

한 집단에 특정 '외래' 종교가 안착한다면, 그 종교가 자리 잡은 위치는 그 민족 정신문화의 근본적인 기층이다. 종교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생활이나 생존의 문제를 넘어, 인간관과 세계관을 이루는 문화의 근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래' 종교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토착화시키는 과정 가운데 반드시 만나는 것은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이다. 이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의 관계를 '한국 사회'와 '그리스도교'로 치환해 오늘날 한국교회를 생각해볼 수 있다. 다른 말로 '한민족의 정신문화'와 '복음의 정신'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한국 사회에 들어올 때 한국인들의 정신문화는 '진공상태'가 아니었다. 비어있는 상태에서 외부의 것이 원래 있던 그대로 심겨져 복사되듯 종교가 이식된 것이 아니라, 기존 문화와 융합과정을 거쳐 토착화된 것이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정재현 교수(연세대학교, 신학)가 한국사회의 전통 종교문화의 배경을 살피는 연구를 「자아도취와 우상숭배」 논문에서 진행하였다. 정 교수에 따르면 한국교회 문화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두 가지 전통종교는 무교(巫敎)와 유교(儒敎)이다. 정 교수는 이 논문에서 오늘날 한국교회 문화가 보여주는 부정적 현상을 '자아도취와 우상숭배'를 중심으로 정리하고, 여기에 기층종교인 무교와 유교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를 밝혔다. 이 글에서는 논의의 단순화를 위해 무교와 유교가 한국교회의 문화형성 과정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한하여 살필 것이다.

먼저 무교는, 구석기 말에 발생하고 한민족이 한반도에 정착하기 전부터 신봉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 교수는 무교가 한민족의 생성과 함께 한 것으로 사료하면서 무교는 한민족의 '밖'에서 들어온 "모든 사상과 종교를 융합해내는 용광로로 자리" 잡고 있음을 밝혔다. 문상희도 "무속신앙은 대 종교들이 전래될 때에는 언제나 그 수용기반이 되어 이들 외래 종교를 이 땅에 토착화시켜왔고"(2008)라고 밝혔다. 정 교수는 무교가 "우리 민족의 기층적 심성이면서 일상적 형태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무교는 "그리스도교로 스며들 수밖에 없는 차원을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무교가 그리스도교 형성 과정에서 끼친 영향 가운데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다뤘다.

긍정적 면은 무교라는 전통적 배경은 그리스도교가 자리 잡는 데에 매우 좋은 우호적 토양이었다는 것이다. 이유는 기층종교의 '하늘-님' 신앙에 있다. 각각의 원시사회에는 각각의 원시종교가 있는데, 한민족과 같이 '하늘-님' 신앙 즉 '하나의 신' 개념을 가진 경우는 매우 희귀하다. 이 개념이 그리스도교의 유일신 사상의 정착을 도왔을 것은 쉽게 유추 가능하다. 물론 그리스도교가 처음 전래되었을 때 전통문화는 '이방의 것'으로 간주되어 충돌이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첨예한 대립을 보였어도 "깊은 심층적 정서에서는 거의 생소하지 않을 정도로 익숙하게 받아들여" 졌을 것이라고 복수의 연구자들이 유추한다. 정 교수는 정진홍의 말을 인용한다: "기층종교의 하늘-님 신앙이 없었다면 그리스도교의 신은 그가 지닌 배타적 독선성으로 인하여 전통 문화의 파괴 없이 수용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의식의 심층에서는 표층에서처럼 생소한 것이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정 교수는 무교의 가장 강력한 문화인 소위 '신들림 체험'이 교회문화 형성에 끼친 영향을 부정적 측면에서 밝힌다. 그에 따르면 무교의 신들림 체험이라는 전통은 "종교의 이름을 바꾸어가면서 무교로부터 그리스도교로 이어지고 있다." 조흥윤은 신들림에 대하여 "신들림은 종교체험의 한국 문화적 표현이고 깨달음의 한 경지"라고 말한다. 신들림의 대표적 양태는 '주술'이다. 주술은 언어나 행동으로 '너머'에 있는 능력을 원하는 대로 사용하려는 일종의 "원시적 기술"인데, 종교적 주술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복을 비는 것'(기복)이다. 그런데 정 교수는 주술적 형태의 기복신앙이 한국교회 안에서도 흡사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복수의 연구자들을 통하여 밝힌다: "...바로 이런 현세 기복적 신앙이 표현되는 부흥회의 시끌시끌한 모습 속에서 무교의 영향을 찾으려 한다. 마치 굿판과 같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갖고 있는 이 몰아지경에 대한 동경은 무교의 신들림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최준식, 1998), "예배 분위기를 뜨겁게 만들기 위해 손뼉 치며 찬송을 점점 빠르고 힘차게, 점점 크고 높게... 이로써 예배 장소는 무당 신내림의 굿판이 된다."(한용상, 2004)

정 교수는 무교로부터 유래한 신들림의 주술성이 인간의 기복주의와 얽히면 '자아도취'로 귀결된다고 강조했다. 신앙에서 자아도취의 문제는 신앙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라고 할 때, 그 관계가 인간중심주의적으로 형성된다는 데에 있다. 자기중심적인 신앙이 요청하는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필요로 하는 하나님'이나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의 하나님'이 되기 쉽다.

한편 유교는, 삼국시대에 한반도로 유입되어 조선시대에 와서는 우리 문화사에서 지배종교가 되었다. 정 교수는 유교가 한국문화에 미친 부정적 측면에 주목한다. 유교는 한국사회에서 "서열화를 중시하는 권위주의"와 "이를 운용하기 위한 가부장적 집단주의" 문화 생성에 크게 일조했다. 대표적 예로 장유유서(長幼有序)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 취해야 할 자세만 가르칠 뿐 그 반대 방향에 해당하는 덕은 없어 '권위주의'를 부추겼다. 또 부자유친(父子有親)은 집단주의를 부추겼는데, 이 둘이 얽혀 '권위주의적 집단주의' 문화가 뿌리내렸다.

이 같은 '권위주의적인 집단주의' 문화가 우리의 "숨길 수 없는 사회적 생활 방식"이라 할 때, 교회 내 문화도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정 교수는 "교회라고 예외가 아닐 뿐더러 오히려 교회의 직제와 운영이 이러한 권위주의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한용상은 "신앙의 대상이 될 궁극적인 존재의 자리에 하나님 대신 교회"가 그리고 "목사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분신이거나 작은 하나님으로 격상되어 버렸다"(2001)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무교적 정서는 교회에 주술적 분위기를 만들고, 유교적 통념인 위계질서는 교회를 권력지향적이 되게 한다. 정 교수는 이같은 흐름 속에서 결국 교회가 "종교적 파시즘"이 되지 않도록 특별히 유의해야 해야 함을 강조한다. 근대적 파시즘이 '합의의 독재'(consensus dictatorship)를 통해 민중을 장악했던 것처럼, 교회도 권위주의에 의하여 권위에 대한 암묵적 합의를 기반으로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내는 종교적 파시즘으로 빠질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논문 말미에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종교적] 이름을 벗기고 나면 무엇이 남는가'를 질문한다. 예컨대 '예수 구원'은 그리스도인들의 소중한 신앙 고백이지만 이것이 삶 속에서의 내용 없이 구호나 주술이 되면 그것은 이름만 남은 꼴이 된다. '예수 구원'이라는 교리적 명제가 없을 때도 예수는 동일하게 우리 삶에서 구원자이신가?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해서 왜 우리의 구원자이신가? 어쩌면, 비록 성급할지라도, 이런 결론을 낼 수 있겠다. 무교나 유교는 한국교회 문화 형성에 영향을 끼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교회의 외적인 문화가 곧 개개인의 신앙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폴 틸리히의 표현대로 우리의 궁극적 관심이 선험적인 것이라 할 때, 신앙의 대상과 내용은 문화에 일방적으로 종속되지 않는다. 우리를 둘러싼 '문화'를 벗겨내고 나서도 우리의 '신앙의 내용'은 남을 것이다. 그리고 이 내용이 우리의 영속적인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