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작가들의 말말말>

©도서『대위임령』

P. 31 신약성경의 핵심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교회를 중심으로 한 삶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사례는 너무나 많다.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제자 됨은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드러난다. 그것은 선교사의 사명이 새로운 신자가 지역 교회에 정착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P. 36 양이 완벽한 분별력을 가질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교회에 충성스러운 장로와 회중이 복음을 수호하기 위해 함께 일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을 제외하고 다른 누군가를 책임지지 않으면서 어떻게 복음을 지키겠는가? 교회는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이다(딤전 3:15).

©도서『은혜의 수단』

우리는 마치 “나는 괜찮아. 너도 괜찮아.”라는 상태를 어떻게든 유지하고자 목숨을 거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은 모든 증거가 반대를 향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 결과 우리의 양심은 갉아 먹힌 죄책감에 고통받고, 우리의 평안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깊고도 오래된 감각에 지배당하고, 우리의 승리는 반영구적이라 할 수 있는 패배에 집어삼킨 바 되었습니다.
세상의 눈, 육신의 눈, 무지의 눈으로 보면 회개와 죄 고백은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하며 파괴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눈으로 보면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우리를 회복과 평안과 기쁨으로 인도할 은혜의 수단입니다.
우리가 회심할 때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며, 우리 지성에 빛을 비추시고, 우리의 허물과 죄를 하나님의 진리의 계시로 밝히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사역으로 말미암아 실재를 보는 우리의 지성과 관점은 철저하게 바뀝니다. 특히 하나님, 우리 자신, 죄, 그리고 구원의 길에 관해 그렇습니다. 즉 불신앙과 믿음의 자율성에서 하나님의 뜻을 믿고 순종하는 것으로 돌이킵니다.
- 4장 <회개와 죄 고백> 중에서

©도서『질문 마태복음』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초청하여 자신에게서 배우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며 그분의 멍에는 쉽고 가볍기 때문에 그렇다. 멍에는 유대교와 신약성경에서 율법에 대한 은유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가벼운가? 아니다. 예수님의 멍에가 가볍고 쉽다는 말은 예수님이 권고하는 제자의 길이 쉽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의를 넘어서는 의를 요구하셨고 (5:20), 철저한 헌신과 자기 부정을 제자의 길로 제시하셨다.
종교 지도자들은 가혹하리만치 세세한 율법 조항을 제시하여 당시 사람들을 숨 막히게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율법에 담긴 진정한 생명의 의미를 가르치시므로 제자들로 하여금 자발적 순종으로 나아가도록 이끄셨고, 그들이 택한 좁은 길의 순종이 참 안식으로 이어진다고 약속하신다.
예수님은 우리의 굽은 등에서 짐을 내려 주시기 위해 오셨는데, 이때 쉼은 수고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종할 때 찾아오는 보람과 참 평강이다(참조. 렘 6:16). 주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자는 평강을 얻게 되어 있다. 또한 현재에도 순종 후에 오는 기쁨을 누리겠지만, 종말적 의미에서 히브리서 3:7-4:6에 나오는 하나님 안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안식이 쉼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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