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코로나19 방역도 보수·진보 편 가르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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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50주기를 맞아 민노총을 비롯한 진보단체들이 주말인 14일, 서울 중심가 등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전국민중대회’를 개최했다. 그런데 코로나19 3차 재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방역 당국과 경찰은 별다른 제재 조치 없이 대회를 허용해 집회와 시위의 자유까지 ‘내로남불’, ‘방역 편 가르기’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민노총 등 진보단체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광장 등 서울시내 30곳을 포함, 전국 40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집회를 개최했다. 경찰에 신고한 참가자는 총 1만3000명이나 전국적으로 참여 인원은 1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불과 한 달여 전 개천절에 보수단체가 주최한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광화문광장을 버스 차벽으로 둘러쌓아 원천 봉쇄했던 때와는 너무나 다른 분위기에 어리둥절할 정도다. 경찰은 “집회 주최 측에 방역 수칙 준수를 요청했고, 현재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 하에서 100명 미만의 집회가 허용되는 점에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경찰과 방역 당국의 이중 잣대에 대해 국민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지난 개천절 당시 하루 확진자가 70명 수준이었던데 반해 13일 하루에만 190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14일에는 205명으로 늘어나 73일 만에 200명대를 기록했는데도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라서 집회를 허용한다니 이게 무슨 논리냐는 것이다.

확진자가 70명 수준에 불과하던 때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라서 엄중히 집회를 단속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은 200명을 돌파했어도 1단계라 집회를 허용하는 것이 방역 수칙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방역당국의 대응 수준과 온도 차에서 확연히 정치적 상황논리가 느껴진다. 즉 100명은 위법이고 99명은 합법이라고 한다면 99명씩 쪼개 수백, 수 천 명이 집회를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논리의 비약은 정치적 상황이 고려되지 않는 한 성립하기 어렵다. 이런 논리가 보수단체에는 안 먹히고 민노총 등 진보단체에게만 적용된다면 더 큰 문제다.

불과 2주 전만 해도 각 지자체들은 20~30명의 교회 소모임까지 불법이라며 고발조치와 폐쇄 명령까지 내리며 통제했다. 교회나 보수단체를 코로나 바이러스의 온상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진보단체의 99명씩 쪼개기 집회가 아무리 합법이라도 바이러스마저 종교색 정치색에 따라 위험도를 달리한다는 말밖에 안 된다. 서울시 등 지자체가 보수집회를 막기 위해 초법적인 압박수단으로 동원했던 구상권 청구를 이번에는 시민이 지자체에게 해야 한다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했던지 문재인 대통령은 집회 당일인 14일에 페이스북을 통해 “집회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안전은 더욱 중요하다”며 우려의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지난 8.15 집회와 개천절집회에 대해 험한 표현을 동원해 엄중 경고했던 것과는 분명 다른 뉘앙스로 들린다.

문 대통령은 야권이 집회 전날인 13일, 당국이 진보단체 집회에 느슨하게 대처하는 것에 대해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데도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다 집회 당일이 돼서야 “방약 수칙을 어기거나 확산의 원인이 되면 엄정히 책임을 묻겠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언급을 했다.

문 대통령이 민노총 집회 당일에 이 같은 메시지를 냈다고 당일에 집회를 포기할 단체가 있을리 만무하다. 오히려 확진자가 다시 200명을 돌파한 엄중한 시기이니 방역 수칙을 잘 지키면서 조심해서 집회를 진행해 달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지난 개천절에 경찰은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 경찰 버스 500대와 철제 바리케이드 1만여 개를 설치했다. 서울시 경계에서부터 한강 다리 등 집회 장소로 향하는 길목에 3중 방어선을 구축했고, 집회 당일엔 경찰 인력 1만2000명을 동원해 광화문 일대를 완전히 봉쇄했다.

광화문 인근을 지나는 집회 참가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까지 불심검문에 가까운 통제를 하는 바람에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당시 경찰은 이토록 강경하게 대응해야 할 근거로 대규모 집회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될 우려 때문이라고 했으나 실제 서울 도심의 개천절 집회 참여 인원은 200명 정도였다. 국민들은 이런 강압적 통제조치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이해했다.

개천절과 11월14일을 비교해 볼 때 다른 것은 주최측이 보수냐 진보냐의 차이다. 또 그 때는 확진자가 1주일간 하루 평균 26명 수준이었고, 지금은 지난 1주일간 그 두 배 이상이 나왔다는 것이 다르다. 확진자가 100명 이하일 때 국민 생명과 안전을 그토록 외치던 정부가 확진자가 200명을 돌파했는데 헌법상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인권정부로 돌아온 것을 마냥 반갑다고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내 편이냐 네 편이냐”에 따라 방역 기준과 원칙도 달라지는 소위 ‘방역정치’라는 신조어가 탄생한 것이다.

이에 대해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김근식 교수는 “개천절에는 집회시위의 자유보다 코로나 ‘방역이 우선’이었고, 14일에는 코로나 방역보다 집회시위의 ‘자유가 우선’이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개천절 반정부 시위대는 코로나 ‘보균자’들이고, 민중대회 시위대는 코로나 ‘무균자’들인가”라고 반문했다.

민노총 등 진보단체가 주최한 집회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방역 수칙만 잘 지킨다면 보수든 진보든 집회와 시위, 표현의 자유를 통제, 억압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마저 정치적 상황논리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렸다 줄였다 하는 공권력에 있다. 이들의 시각에 따라 어떤 국민은 ‘살인자’로 매도되고, 또 다른 국민은 ‘내 편’으로 합법화 해 주는 편향과 굴절이 문제라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