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건 다 긁어…" 기재부, 1조 세출조정에 '진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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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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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결위 심사서 감액하는 방식… 연가보상비 추가 삭감 검토

예산 당국이 재정 건전성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가구에 지급하기 위한 방안에 골몰하고 있다. 여야가 29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2차 추경안을 처리키로 합의하면서 재난지원금 소요 예산이 기존 9조7000억원에서 14조3000억원으로 늘게 됐기 때문이다.

당정은 일단 추가되는 예산 4조6000억원 중 3조6000억원은 국채발행으로, 지방비로 충당할 예정이었던 1조원은 기존 예산을 재조정해서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들어 쉴 새 없이 예산 작업에 매달려 온 기획재정부 예산실은 또다시 지출 조정 작업에 속도를 내야할 상황이다.

28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기재부 예산실은 당초 지방비로 충당하려 했던 1조원 규모의 긴급재난지원금 재원을 세출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하기로 함에 따라 추가로 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 사업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있다.

예산 당국은 7조6000억원 규모의 재난지원금 추경을 짜는 과정에서 이미 3조6000억원어치의 지출 구조조정을 이뤄냈다. 연가 보상비 등 공무원 인건비를 깎고 방위력 개선 사업, 철도 사업, 공적개발원조(ODA) 등 감액이 가능한 사업을 최대한 추려낸 결과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를 두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라고 표현했다.

세출 사업비 삭감에 더해 기금의 지출을 줄이고 용처를 달리해 끌어 쓰는 방식으로 나머지 4조원을 채웠다. 안도걸 기재부 예산총괄심의관(국장)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기금에서도 상당한 고통 분담을 수반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국회 심의 과정에서 1조원만큼의 추가 조정 미션이 또 떨어지게 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가능한 사업은 최대한 모두 싹싹 긁어내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정부에서 새로운 세출 조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것이 아닌,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심사 과정에서 사업별로 감액 여부를 검토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기재부로서도 예결위가 열리기 전에는 어떤 사업이 감액 대상에 오를지 확신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2차 추경 처리를 위한 예결위 전체회의는 이날 오전 10시께 예정돼 있다.

중앙 부처 공무원들의 연가 보상비를 깎는 방안이 유력한 검토 대상이다. 기재부는 당초 인건비 규모가 1조원 이상인 부처와 헌법기관(7개), 재정 사업 삭감 등으로 추경 심사 대상에 오른 부처(13개) 등 20개 기관만 연가 보상비 삭감 대상에 올려 3953억원을 마련했다.

전 기관을 삭감 대상에 포함시키면 모든 국회 상임위를 가동해야 하기 때문에 심사가 더뎌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포함되지 않은 나머지 34개 기관에 대해선 연가 보상비를 집행하지 않도록 지침을 내려 사실상 삭감과 같은 효과를 내게 할 방침이었다.

나머지 34개 기관의 연가 보상비는 약 400억원에 불과하지만, 기재부로서는 이마저도 아쉬운 상황이어서 세출 조정 사업에 포함시킬 지 여부를 고민 중이다. 삭감 효과가 큰 기관 20곳을 추린 것을 두고 부처별 형평성 논란이 불거지자 기재부는 향후 추경 편성 과정에서 나머지 부처의 연가 보상비 역시 깎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던 바 있다. 향후 추경 재원으로 쓰려던 것을 앞당겨 쓰게 되는 셈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예결위 심의 단계에서 개별 상임위를 거치지 않고도 삭감할 수 있기 때문에 국회에 달려있다"고 언급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코로나19 사태로 국내·국외 교류가 현저히 위축된 현 상황을 고려할 때 올해 예산에 6914억원 규모로 편성돼 있는 공무원 여비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외교부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으로 외국인 입국을 금지한 국가는 총 150개에 이른다. 같은 이유에서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역시 상당한 불용이 예상된다는 분석이다.

예산 당국은 이미 기재부, 외교부 등 2곳의 ODA 사업을 합쳐 2677억원 규모로 줄였지만, 외교부 사업 13개, 행정안전부 사업 3개 등 나머지 사업에 대한 추가 감액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고 예정처는 제안했다.

여비 조정은 민간단체인 나라살림연구소에서도 제안한 방안이다. 그러나 예산 당국은 여비 삭감안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내놨다. 기재부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고 해서 공무원들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나. 질병관리본부같이 일이 더 늘어난 곳도 있다"면서 "행정여비를 깎는 일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고통 감내가 필요한 분야 외에 코로나19로 소요가 자연스럽게 줄어든 사업들도 있다. 기재부는 금리 하락에 따른 국고채 이자 절감분을 2700억원 규모로 잡았다. 예정처는 신규 발행 국고채의 금리를 낮춰 잡으면 추가적인 감액 조정이 가능하다고 봤다. 지난해 4분기 이자율을 기준으로 계획한 올해 국고채 이자 상환 사업은 18조5600억원인데, 신규 발행 국고채 금리를 2.1%로 계산하면 최대 17조4965억원까지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국제유가 하락에 따라 전 부처의 유류비 예산을 깎는 방안도 제시됐다. 기재부는 당초 군의 장비·난방연료비와 해경 함정, 경찰 차량에 드는 유류비를 2242억원으로 감액했다. 4개 사업 예산(8700억원)의 25.7%를 축소한 것이다. 예정처는 이 비율을 나머지 사업들에도 적용하면 약 387억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집행 부진이 예상되거나 사업계획 조정을 통해 집행 시기를 늦출 수 있는 일부 사회간접자본(SOC) 사업도 들여다볼 여지가 있다. 예정처는 내륙철도사업 및 복선전철사업, 월성 원자력 환경관리센터 건설 사업, 광화문 월대 등 복원 및 주변 정비 사업, 국방 시설 공사 사업 등을 그 예로 들었다.

한편 정부는 '한국판 뉴딜'로 대표되는 코로나19 대응책을 시행하기 위해 1972년 이후 48년 만의 3차 추경을 계획 중이다. 10조1000억원 규모의 고용안정 패키지 대책 중 기금 변경, 예비비 등 정부 차원에서 마련할 수 있는 8000억원을 제외한 9조3000억원과 10조원 내외로 추산되는 세입경정(세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한 재원)만 합해도 20조원에 이른다. 앞선 1차(11조7000억원), 2차(12조2000억원) 추경과 합하면 약 43조원으로 이미 역대 최대 규모다. 실제 편성 시기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는 6월 초로 예고됐다.

장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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