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형은 목사] 교회 갱신, 어떻게 할 것인가?

교회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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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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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복음주의협의회 4월 월례발표회 지형은 목사 발표
▲지형은 목사(성락성결교회)

교회 갱신을 세 가지 면에서 살피면 좋을 것이다. (1)특별계시와 연관하여, (2)일반계시와 연관하여, (3)앞의 두 가지가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펼쳐져야 하는지에 대하여. 주어진 시간 때문에 첫 번째 항목만 다룬다.

교회 갱신, 저 유명한 명제를 먼저 떠올려야 한다.

'Ecclesia semper reformanda', 늘 갱신되는 교회!

이 명제는 교회론의 중심에서부터 나왔다. 근본적으로는 어느 시대나 어느 문화권의 교회가 다른 교회보다 유별나게 더 망가져서 교회 갱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 갱신은 교회가 존재하는 내내 늘 지속된다. '갱신돼야 한다'고 사람의 책임과 헌신을 겨냥하여 유달리 당위(當爲)를 말할 것도 없다. 교회론에서 보면 교회 갱신의 주체는 본디 하나님이지 사람이 아니다. 교회를 말할 때 사람이나 사람과 연관된 제도, 직무, 건물, 재정, 사회적 관계 등 모든 것은 갱신의 대상이다. 갱신이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일인 것이 이 까닭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결정적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요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회다. 마태복음 16장 18절을 보자.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 구절은 교회가 하나님의 소유(所有)라는 것을 두 가지로 말한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교회"라고 말씀하신다. 교회는 어느 사람이나 조직이나 기관의 소속이 아니다. 다음으로 "이 반석 위에" 곧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특별하게 드러낸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인격적으로 고백하는 믿음 말이다. 그렇게 신앙을 고백하며 그 고백대로 사는 사람들이 교회다.

교회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소유(所有)'는 '거기 있음'이다.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은 '하나님이 계신 거기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주님이 계신 곳에 있어야 교회며, 주님을 따라야 교회다. 요한복음 12장 26절 전반부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마태복음 18장 20절은 '이름'이 곧 그 이름이 가리키는 존재의 현존이라는 성서의 전통을 따른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 거기'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하나님은 영이셔서 물리적 시공간에서 가시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표적이라는 현상이 있을 뿐이다. 정신과 영의 어떤 상황에서 감지되기도 한다. 그러나 체험일 뿐 하나님 자체는 아니다. 깊은 영의 차원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황홀경으로 느끼고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신비일 뿐 하나님 자체는 아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계신 거기는 무엇인가? 사실 위에서 벌써 말했다. 교회 설립에 대한 마태복음 16장과 소유란 단어를 해명하면서 인용한 두 구절에서 말이다. 우리가 사는 시공간으로 사람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거기'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동일한 문제에 맞닥뜨린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셔서 하늘로 오르셨다. 그분은 지금 우리가 사는 여기에 계시지 않다. 그분의 임재와 현존은 우리가 존재하는 시공간에서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와 현존은 말씀과 성령에서 구체성을 갖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태복음 28장 20절에서 당신이 세상 끝 날까지 교회와 함께 있겠다고 하셨다. 임재와 현존의 이 약속이 성령의 오심으로 성취되었다. 성서의 시대 흐름에서 마지막 시대 곧 말세(末世)의 중심 표징은 성령이 오셔서 일하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14장에서 16장까지 이어지는 예수의 가르침에 따르면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깨닫게 하고 살게 하신다. 성령의 역할에서 심장이다. 제자들(곧 교회!)이 스승이신 예수보다 '더 큰 일'을 하게 된다는 약속은 복음서의 맥락에서 성령의 강림과 연관된다. 요한복음 16장 23-24, 26절이다.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기록된 66권 성경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말씀이요, 말씀의 해석자인 성령의 가르침으로 말씀이 삶으로 작동되는 곳이 '하나님이 계신 거기'다. 내년이면 500주년이 되는 종교개혁, 그 위대한 운동의 지도자들이 말씀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고 했다. 보이는 말씀인 성례와 들리는 말씀인 설교다. 루터, 쯔빙글리, 칼빈 등 16세기의 지도자들만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신 뒤로 말씀이 삶이 되는 거룩한 운동은 계속돼 왔다. 흔히 '천년의 암흑기'라고 불리는 중세에도 이 흐름은 끊이지 않았다. 5-6세기의 베네딕트, 12-13세기의 페트루스 발두스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14세기의 존 위클리프, 14-15세기의 얀 후스, 15세기의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그리고 16세기의 개혁자들!

교회 갱신은 현실적으로 기록된 성서와 연관된 문제다. 영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이 이 책으로 성육신하셨다. 그런 뜻에서 이 책은 거룩한 진리의 가르침 곧 성경(聖經)이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문의 언어로 말하면 하늘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일의 중심에 이 책의 말씀이 있다. 이 책에 교회의 존재가 걸려 있다. 이 책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순명(殉命)하느냐에 따라 교회는 교회답게 갱신되기도 하고 교회답지 못하게 망가지기도 한다.

문제는 책의 말씀이 삶의 일상이 되는 것이다. 이 일이 신앙의 중심 과제요 신학의 본디 사명이다. 요한복음 1장의 기록처럼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심장이다. 이 심장의 박동을 늘 건강하게 하는 일이 교회 갱신이다. 말씀이 삶이 되게 하는 영적 훈련을 가리켜 '말씀묵상'이라고 정의하면, 말씀묵상이 곧 교회 갱신의 핵심 과제다.

누가복음 10장 25-37절에 말씀묵상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예수께서 한 율법교사와 대화하는 장면이다. 율법교사가 묻는다. 25절이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되물으시는데 이 물음에 예수의 말씀묵상이 들어 있다. 26절을 보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여기에 질문이 둘이다. (1)율법 곧 성경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었느냐? (2)네가 어떻게 읽느냐? 첫 번째 질문은 주석(註釋) 및 이해와 연관된 객관적인 작업이며 두 번째 질문은 강해(講解) 및 순종에 연관된 주관적인 변화의 문제다. 오늘날의 신학적 용어로 말하면 첫째 질문은 성서신학 및 이론신학의 과제와 관련되며, 둘째 질문은 실천신학의 과제와 관련된다. 이렇게 보면 누가복음 10장에 기록된 예수의 가르침은 근본적인 의미에서 신학의 일을 다룬 셈이다.

지금까지 논의한 것에 터하여 보면 교회 갱신을 위해서 먼저 제도권의 신학 교육이 변해야 한다. '신학하기'의 본디 뜻 곧 어떻게 해야 말씀이 삶으로 이어지는 것을 잘 가르치고 배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씨름해야 한다. 야곱이 씨름한 것처럼 뼈가 부러져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다음으로 교회 현장이 변해야 한다. '목회하기'의 본디 뜻 곧 어떻게 해야 성서의 말씀이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에서 힘차게 작동할까에 무섭게 집중하고 여기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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