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빌라도의 재판

목회·신학
편집부 기자
하늘중앙교회 유영완 목사ㅣ요한복음 18:38~19:1
▲유영완 목사ㅣ하늘중앙교회

예수님의 재판 과정을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체포되셔서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 대제사장에게 끌려가셨습니다. 심문을 받으신 후 안나스는 예수님을 결박하여 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에게 보냈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와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로마법으로 재판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빌라도는 심문한 후에 별다른 죄를 찾지 못하자, 당시 갈릴리를 통치하던 분봉왕이었던 헤롯 안티파스에게 보냈습니다. 헤롯은 사도 요한을 처형했던 사람인데, 예수님에 대한 재판 맡기를 거부하고 다시 빌라도 총독에게 보냈습니다. 빌라도 총독은 대제사장과 군중들의 압력을 받고, 예수님 재판을 맡아 십자가 처형을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하셔서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셨습니다. 빌라도 재판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빌라도의 재판
빌라도는 처음부터 예수님 재판 맡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끌고 왔을 때 빌라도는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빌라도가 볼 때 예수님은 로마 제국에 대항하여 폭동과 반란을 일으키는 정치범이라기 보다는, 유대 종교법을 어기는 종교범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종교재판은 산헤드린 공회에서 맡았고, 정치범은 로마 총독이 재판을 맡았습니다.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끌고와 예수님을 가리켜 "이 자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하니, 정치적 사건으로 재판을 맡아달라고 아우성 댔습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재판을 맡게 되었습니다.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 빌라도의 아내가 나옵니다. 빌라도 부인의 이름은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3세기 교회 전승에 의하면 그녀의 이름은 "프로클라"라고 알려졌습니다. 동방정교회와 에디오피아 교회에서는 그녀를 성자 중 하나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프로클라는 빌라도의 로마인 아내였는데, 빌라도에게 올바른 충고를 해주고 있습니다.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마 27:19) 정치적으로 예민한 공적 재판에 개입한다는 것은 매우 큰 용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마치 에스더가 유대 민족을 구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간 것과 같이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얻어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결혼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한 가지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배우자가 옳고 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아내의 역할입니다.
빌라도는 재판을 진행하면서 3번이나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요 18:38) ,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19:4) ,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19:6)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십니다. 다만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대속적 죽음'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십니다. 죄 때문에 재판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십자가의 죽음을 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오직 한 가지 이유는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2. 군중들의 선택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죄를 찾지 못하자,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힘썼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강력한 반발 때문에 예수님을 놓아줄 수가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빌라도 총독에게 협박까지 합니다. "이 사람을 놓아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요 19:12) 그러자 빌라도는 정치적 선택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무죄가 아닌 유월절 특별사면으로 석방하려고 군중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시 유월절에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예수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었는데, 빌라도가 군중들에게 묻습니다.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예수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바라바와 예수를 군중들 앞으로 끌고와, 누구를 석방할지 선택하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지금 빌라도는 군중들에게 2명의 구세주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예수 바라바는 로마 제국에 대항하여 폭력과 테러를 통해 폭동을 일으켜 체포된 자였고, 나사렛 예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면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요,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까지 대주는 것이요, 서로의 발을 씻겨주는 섬김의 나라인 것입니다. 한 마디로 바라바는 폭력과 무력을 통해서 그 나라를 이루려 했고, 예수님은 사랑과 용서를 통해 그 나라를 실현하려 했습니다. 빌라도가 군중들에게 선택하라고 한 "바라바냐? 예수냐?", 이것은 "폭력을 선택할 것이냐? 사랑을 선택할 것이냐?"의 질문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보다 폭력의 힘을 빌리는 것이 훨씬 쉽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항상 폭력을 선택해 왔습니다. 그것이 전쟁과 독재와 테러가 끊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되는 이유입니다.

인생이란 선택의 연속입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 가 미래를 결정합니다. 세상을 선택할 것인가? 하나님 나라를 선택할 것인가? 결단해야 합니다. 세상을 선택하면 세상과 함께 멸망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선택하면 하나님께서 영원한 당신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또한 내 힘으로 할 것인가? 하나님의 힘으로 할 것인가? 선택해야 합니다. 인간의 힘이란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힘은 우주를 움직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항상 기도하여 하나님의 힘을 빌려 쓰십시오. 또한 폭력입니까? 사랑입니까? 법보다 주먹이 먼저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먹보다 사랑을 선택해야 합니다. 사랑이 가장 큰 힘이요 무기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3. 그들의 최후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서 잊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가룟 유다요, 하나는 빌라도입니다. 그들의 동기가 무엇이었든지! 그들의 속마음이 무엇이었든지! 그들이 원했든지 원하지 않았든지! 그들은 예수님의 처형에 악역을 맡은 자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악역을 맡은 자들의 최후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판 다음 양심의 가책을 받아 대가로 받은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달아 죽었습니다. 무고한 피값을 흘린 대가를 지불한 것인가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가룟 유다가 조금만 참고 기다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찾아가셔서, 책망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용서하시고 사랑으로 껴안아 주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살아있었다면 동일한 예수님의 사랑을 받지 않았을까요? 조금만 참고 기다리십시오.

빌라도 총독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유다와 사마리아와 이두메를 10년간 통치한 후, 사마리아 대학살에 연루되어 비엔나로 추방당했다고 역사가 요세푸스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추방당한 비엔나에서 스스로 자결했다고 합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을 사형시킴으로써 하나님의 벌을 받아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인지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여기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절대로 악역에 쓰임 받지 마십시오. 불의와 절대로 타협하지 마십시오. 빌라도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진리 대신 실리를 선택했고, 진실 대신 현실을 선택했고, 정의 대신 안락을 선택한 것입니다. 얼마든지 예수님을 석방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음에도, 대제사장들과 군중들의 압력에 굴하여 악역을 자처하게 된 것입니다. 선택과 결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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