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선교회' 찰스 카우만·어니스트 길보른의 '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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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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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제1회 길보른기념강좌' - ②
▲찰스 카우만과 레티 카우만   ©www.wikitree.com

[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박문수 박사는 어니스트 길보른(Ernest A. Kilbourne)의 회심 체험을 소개하며 "어니스트의 회심에는 회사 동료였던 찰스와 레티 카우만의 영향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결혼 후 어니스트 길보른은 미래가 없어보이는 서부의 버지니아를 떠나 웨스턴 유니언사(社)의 시카고 사무소로 전근을 요구하여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오래되지 않아 그는 전신 기사(telegraph operator)들을 1,000명이나 관리하는 기사장(a division chief)이 되었다. 당시에 같은 지위에 있는 다른 기사장이 있었는데 바로 찰스 E. 카우만이었다"고 소개했다.

찰스 카우만의 회심 과정은 찰스 카우만이 하늘로 부르심 받기 전에 작성하던 미완성의 자서전에 들어있는 '타락한 자의 회심'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소개했다.

박문수 박사는 "찰스와 레티 카우만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은 구원에 대한 기쁨을 깨달은 후, 찰스는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자기 신앙을 증거하기 시작했다"며 "어니스트 길보른은 카우만이 전신회사에서 그리스도에게 인도한 많은 사람들 중에서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찰스 카우만의 자서전, 『동양 선교회 창립자 찰스 카우만』( Missionary-Warrior: Charles E. Cowman )을 출판한 레티 카우만의 글을 통해 길보른의 회심 사건을 소개했다.

▲어니스트 길보른

박문수 박사는 이어 "길보른이 자신의 회심에 대해 기록에 남긴 것으로 판단하면, 카우만이 회심한 후 1년쯤 지나 발생하였다. 그것은 1895년 후반이 아니면 1896년 초반이었다"며 "이제, 어니스트 길보른은 모든 에너지와 야망을 오직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었다. 그는 카우만이 출석하던 '그레이스 감리교회'(the Grace Methodist Episcopal Church) 에 입회해 이로써 길보른은 잃어버렸던 유년기 신앙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불타는 신앙의 열심으로 그는 찰스와 함께 직장, 거리, 공원 등지에서 전도할 수 있었다"며 "카우만과 길보른은 남는 시간을 영혼구원 활동에 투자했다. 그들은 거리에서 공원에서 그리고 미션 홀들을 자주 찾는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간증했다. 그들은 복음전도 문서들을 나누어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도 지나는 길을 따라 우편함에 전도지를 넣어두곤 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1894년 시카고의 무디 성서교회에서 열린 선교대회는 그를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며 "그때 주 강사였던 기독교연합선교회(the Christian & Missionary Alliance)의 창립자 심프슨 박사가 '아내와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오직 믿음만으로 모든 필요를 하나님께 맡기고 아프리카 오지에 들어가 선교한 젊은 사업가'의 이야기를 했는데 그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그는 그 집회에서 선교사로서의 헌신을 다짐하게 되었다"고 소개했다.

덧붙여 박 교수는 "길보른의 아내도 역시 이때를 전후로 또한 회심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그녀를 아는 선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숨은 봉사자'(hidden servant)로 평가했다. 레티 카우만 여사의 기질이 적극적이었다면, 반면에 그녀는 조용히 섬기는 기질의 사람으로 알려졌다. 1917-1918년에는 10명의 젊은 전도대원들이 일본 전역을 누비고 동경에 돌아왔을 때 그녀가 따뜻한 식사와 뜨거운 목욕물, 그리고 말끔한 세탁물로 그들을 대접하였던 일은 여러 사람의 기억속에 남아 있다"고 했다.

그는 "길보른은 역시 무디 성서학원 야간반에 등록해 카우만 부부가 한 것처럼 시간제(part-time)로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며 또 "1897년에는 길보른을 따라 그들은 회심한 전신기사들 가운데서 주일 오후예배를 드리고 동시에 다른 기사들에게 전도하기 위하"여 한 단체를 조직했다. 이 모임은 후에 '전신기사선교단'(Telegrapher's Mission Band)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배 후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빛을 세상에 비추게 하겠다는 확고한 결단을 하고 사무실로 되돌아갔다"며 또한 "주일 오후예배 후 한 달에 한 번 만나 20달러 가량의 소박한 헌금을 선교를 위해 내놓았다"고 했다.

박문수 박사는 "그리고 미국 전역의 전신기사들을 대상으로 선교하기 시작했다. 초대 회장에 는 찰스 카우만이 맡았고 길보른도 전신과 편지, 그리고 직접전도를 통해 열심히 복음을 증거하였다"며 "어니 부부는 카우만과 길보른은 전신국을 마치'하 나님이 지명하여 보내신 사역지'로 여겼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전신기사선교단은 나중에 극동 아시아의 가장 위대한 복음전도단 중의 하나인 동양선교회(OMS)의 기초가 되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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