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시대 직후 신앙고백은 어떠했을까?

목회·신학
이수민 기자
제199회 한국교회사학연구원 세미나서 서울신학대 황훈식 박사 발표

[기독일보] 우리들의 신앙고백은 '사도신경'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사도신경은 처음부터 만들어져 고백됐던 것이 아니다. 시대가 지나면서 점차 다듬어져 지금의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초대 교회의 신앙고백은 어떠했을까? 그 궁금증을 갖고 황훈식 박사(서울신학대 외래교수)가 6일 열린 제199회 한국교회사학연구원 세미나에서 '기독교 신앙고백의 역사, 1세기 말에서 2세기 중반 사이의 신앙고백'을 주제로 발표했다.

황훈식 박사는 "사도시대 사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목격하고 경험한 사람들로 기독교 공동체를 세우고 확산시킨 장본인이자, 이들의 선포(κήρυγμα)와 설교의 내용은 기독교 신앙을 보여주는 기반이었다"고 말하고, "사도시대 이후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사도들이 가르친 내용(παράδοσις)을 구두 혹은 문서로 보존하고자 했고, 이것은 2세기 중반부터 '신앙규범'(regula fidei)이라는 이름으로 전승되며, 그 후 4세기에는 공의회 신조에 포함되어 결국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사도신경으로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다만 황 박사는 "사도시대 이후부터 2세기 중반까지, 즉 2세기 중반부터 나타나는 '신앙규범' 이전에는 어떤 신앙 고백적 표현이 존재하고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만일 그 당시의 신앙고백이 존재한다면, 이러한 신앙고백은 어떠한 기준으로 그 타당성과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었을지 궁금해 했다. 때문에 그는 사도시대 이후 기독교 공동체들에게 나타나는 신앙고백을 소개하고 그 의미를 찾았는데, 특별히 클레멘스 제 1서신과 이그나티우스(Ignatius Theophoros)의 서신들, 아덴의 아리스티데스(Aristides)와 순교자 유스티누스(Justinus)의 저서 등을 살펴봤다.

그는 이 문서들을 살펴보면서, "1세기 말에서 2세기 중반 사이에 쓰여진 문서 가운데 신앙고백이라고 정확히 언급하면서 그 내용이 소개되고 있는 곳은 한 군데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이 시기동안 이단이 아닌 보편 교회에서 고백되어지는 신앙의 내용이 어떠한 것인지는 파악할 수는 있었다"고 했다. 또 "로마 클레멘스의 첫 번째 편지는 신앙고백적 문구를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신앙적 가르침이 사도들로부터 전수된 것이라 언급을 통하여 1세기 말 당시 구두 전승과 정경화되지 않았던 성경, 성경 외에 기록된 것이 사도들로부터 내려오는 신앙고백의 기초가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줬다"고 전했다.

황 박사의 말에 따르면, 2세기 초반에 안디옥 이그나티우스 서신들에는 기독론적인 고백이 등장하고 있는데, 내용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 됨과 하나님 됨에 대한 균형을 갖춘 가운데 역설적 표현들이 들장하였고, 구조적으로는 대구적-병렬적 표현들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그나티우스는 이러한 독특한 신앙고백적 표현 이외에도 비슷한 기독론적 고백을 여러 번 소개하는데, 특별히 가현설적 사상을 견제하는 방법으로 역사상 실존 인물들(본디오 빌라도, 헤롯, 요한)을 거론하거나 '진실로'란 형용사를 여러 번 사용하면서 신약성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티브들과 일치하게 신앙고백적인 내용을 표현했다. 여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먹고 마시는 인간적인 모습이 더 첨가되기도 하였고, 영원성 안에서 한 몸을 이르는 교회의 모습으로서의 그리스도도 추가로 언급되기도 했다. 황 박사는 이에 대해 "당시는 보편교회라는 개념이 형성되고 있었던 시기에 이그나티우스가 표현하고 있는 이러한 신앙고백의 내용들은 사도성에 기초를 둔 보편교회의 정통성을 갖춘 것으로 유대교와 이교도과 구분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2세기 초반을 넘어서는 아덴의 아리스티데스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독교 신앙고백적 내용을 보여 주었는데, 그는 그리스도인 뿐만 아니라 비그리스도인들조차 인정하는 신의 본질적인 것들을 철학적으로 성찰하면서 진정한 신에 대한 개념에 가장 부합하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신약성서의 전승과 일치하게 소개했다"고 설명했다. 아리스티데스의 고백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 성육신, 십자가, 부활, 승천을 다 포함하고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케르그마를 담고 있었으며, 그는 기독교의 전통적 가르침을 알고 있었고, 그가 표현했던 신과 기독론적 내용은 당시 기독교의 신앙고백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 것이었다고 한다.

황 박사는 "2세기 중엽 로마의 유스티누스는 아리스티데스의 변증적 맥락에서 나오는 표현과 유사하게 기독교 신앙의 고백적 내용을 보여준다"고 했다. 특별히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유대교에 맞서 구약성서를 통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케르그마를 증명해 내었고, 이것은 신앙고백의 내용을 큰 틀에서 비추어 주고 있다. 또한 유스티누스는 세례에 관하여 말하면서 후대에 삼위, 즉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성령에 대한 신앙고백이 나오는 듯이 삼위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초기적 단계의 신앙고백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황 박사는 "이그나티우스에게서 희미하게 보이는 세례문답식 신앙고백형태가 이곳에서는 조금 더 환하게 보이는 모습"이라고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황 박사는 "이상과 같이 1세기 말과 2세기 중반 사이에 나타나고 있는 신앙고백의 모습은 이것이 비록 국지적(局地的)이긴 하지만, 정통과 이단과 구분되는 보편교회로 형성되어가는 시기에, 기독교 공동체는 유대교적 성향으로부터 빠져 나와 기독교 고유의 모습으로 갖추어 가면서, 기독교 케르그마를 구두전승, 혹은 성경, 사도들의 가르침이라 존재했을 것이라는 문서전승을 통해 보존하고 계승하면서 정통 신앙고백을 이어나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회 외적으로는 철학과 이단, 이교사상들과 교회 내적으로는 세례문답이라는 상황들이 신앙 고백적 표현과 설명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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