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전 칼럼] 직업과 소명

오피니언·칼럼
칼럼
편집부 기자
  •   
▲이종전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개혁파신학연구소장)

[기독일보 = 이종전 교수] 거래하는 고서점 몇 곳이 있다. 그 서점들은 각각 부산, 대구, 목포, 서울, 수원, 안양 등에 있다. 당연히 지역적인 특성도 있다. 어느 지역의 서점에 어떤 책들이 주로 나온다는 ···. 시간이 있을 때면 이 서점들에 나온 책들을 찾아본다.

그런데 그 중 한 서점은 답답하리 만큼 새로운 책이 올라오지 않는다. 한 달이면 한 두 번 쯤 올라올까 하는 정도로 뜸하게 새로운 책을 소개한다. 사장은 젊은이다. 그의 부친도 고서점을 운영하는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독자적으로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그렇게 뜸하게 올리는 새로운 서적의 목록이라야 수십 권 정도가 전부다. 그래가지고 먹고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나는 가끔 올라오는 서적 리스트를 빠트리지 않고 꼭 챙겨본다. 비록 올라오는 횟수는 적어도 내가 원하는 책들이 종종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책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얼마 전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구입할 책을 지정하여 홈페이지에 글을 남겼다. 구매의사를 밝히고 책값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다. 역시나 그의 답장은 길고 장황하기까지 했다. 그 책의 출생(출판)에 대한 사연과 과정까지 꼼꼼히 챙겨서 안내문을 만들어 보냈다. 게다가 책의 상태는 물론 어느 출판사에서 어떤 계기로 어떻게 만들어졌다는 것 까지 조사를 해서 알려주었다. 몇 번째 출판인 것과 영인본이기는 하지만 영인본도 언제 몇 권을 찍었는데 왜, 제목은 그렇게 붙여야 하는지에 대해서까지 알려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그 책값을 그렇게 산출한 근거까지 ···.

나는 바로 전화를 했다. 책을 구입할 때마다 연락은 하지만 그날은 특별히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였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고서점 운영에 대해서 어깨너머로 배웠고, 그 과정에서 손님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책에 대한 전문가가 되지 않으면 고서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고 했다. 해서 단순히 유통만을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책에 대해서 연구하는 자세로 서점을 운영한다고 했다.

따라서 일단 자신의 손에 들어온 책을 판매해야겠다고 결정하면 그 책에 대한 연구(조사)를 한단다. 최소한 출판에 관한 것과 저자에 관한 것은 기본적으로 조사를 해서 그 책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아는 작업을 우선한 다음 어느 정도 파악이 된 것을 정리해서 새로운 목록에 올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밖에는 새로운 책을 소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꺼이 박수를 쳤다. 그리고 칭찬을 했다. 또한 고맙다는 말도 했다.

요즘 고서점을 운영해서 먹고살기 힘든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실정이다. 일반서점들도 많이 문을 닫았고 고서점도 물론이다. 한데 젊은 친구가 자신의 일에 대해서 나름 소신을 갖고 비록 서지학자(書誌學者)는 아니지만 책을 조사해서 정리하는 것은 사업 이전에 자신의 일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모습이다.

벌써 여러 차례 거래를 하는 터인지라 이제는 메모만 남겨도 알아서 처리를 해준다. 그만큼 신뢰가 쌓였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한결같은 태도는 책에 대한 애착심이다. 분명히 그는 책을 파는 사람이지 그것을 소유할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팔 책이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지 않고, 어차피 팔 것이기 때문에 몰라도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파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팔 책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자세하고 확실하게 알려고 한다. 해서 그것을 필요로 하는 구매자에게 책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전화를 끊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자신에 그렇게 하고 있는지 물어야 했다.

요즘 젊은이들 가운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 그렇게 소신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든데 ···. 하지만 그는 이미 자신이 선택한 일이 먹고 살기 힘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 일을 선택했고, 선택한 일이기에 일답게 하려고 하는 그 자세가 귀하고 아름답다. 그의 경제 사정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궁금할 만하면 한 번씩 꾸준하게 새로운 책을 소개하고 있다. 오늘도 그의 서점을 찾아갔다. 새로운 책이 올려진 것을 확인하고 한 권씩 읽어 내려간다.

새로운 책이 올라올 때마다 그의 홈페이지를 열게 되고 올린 책들을 살펴보는 것은 단지 내가 필요로 하는 책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으로 만족할 일이 아니다. 그가 올린 책을 하나씩 읽어가면서 그가 그 책에 대해서 어떤 것을 알아보았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다만 그가 어떤 신앙을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가 어떤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이든 적어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그렇게 소명과 자부심을 갖고 할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더욱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소명을 분명하게 갖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을 소명으로 확인하고 그것을 이루는 것을 인생으로 고백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글ㅣ이종전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개혁파신학연구소장)

#이종전칼럼 #이종전교수 #소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