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 예정론 '선교' 약화시켰다는 주장...검증돼야

1일 개혁주의학술원 제5회 칼빈학술세미나 고신대서 개최
프랭크 제임스 3세 비블리컬신학교 총장   ©비블리컬신학교 웹사이트

1일 고신대학교(총장 전광식)에서 열린 개혁주의학술원 제5회 칼빈학술세미나에서 '개신교 개척자: 예정을 설교할 경우' 를 주제로 강의한 프랭크 제임스 3세(Frank A. James III) 박사(비블리컬신학교 총장)는 "(칼빈의 예정론에 대한)판단은 무자비하고 부정확할 뿐만 아니라, 실제 칼빈에게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불행하게도 저 개혁신앙의 창시자에 대한 대중적인 오해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실제 칼빈이 어떤 인물인지 다시 한 번 소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발제를 시작했다.

먼저 그는 칼빈의 예정론에 대한 비판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칼빈의 예정론이 설교와 복음과 선교에 대한 모든 관심을 약화시켰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며 "칼빈의 예정론에 대해 존 웨슬리(John Wesley)보다 더 신랄한 비판자는 없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웨슬리는 만일 예정이 참이라면 '설교는 모조리 헛된 것'이라고 주장한다"며 "칼빈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 웨슬리는 계속해서 예정론을 '신성모독으로 가득한 교리"라고 비웃고 천시한다. 그는 그것이 '인간 영혼에 치명적'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또 "나아가 그는 덧붙이기를, 예정이 참이라면 하나님을 '악마보다도 더 악한' 분으로 만드는 것이다"고 소개했다.

이어 "당대의 비판자들 가운데 스위스 프로이트파 심리학자, 오스카 피스터(Oskar Pfister)는 기록하기를, 이 교리가 '예수께서 가르치신 사랑의 하나님을 완전히 악마적인 성향을 지닌 강박적이고 신경질적인 하나님으로 변질시켜버렸다'고 했다"고 말했다.

또 "칼빈에 대한 가장 집요한 다른 비판들 가운데 하나는 그가 너무 신학적으로 몰두하는 바람에 선교나 복음전도에 무관심했다는 것이다"며 "칼빈을 포함하여 종교개혁자들을 선교학적 장애자들로 묘사한 유명한 개신교 선교학자 구스타프 바르넥(Gustav Warneck)의 말에서 이것을 알 수 있다"며 소개했다.

"[칼빈을 포함한] 종교개혁자들에게서는 선교 활동은 고사하고 선교 개념조차도 없는데,... 그 이유는 근본적인 신학 견해들이 그들의 행동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들의 사상에까지도 영향을 주어 선교적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프랭크 박사는 "칼빈에 대한 이런 두 비평 모두의 중심에는 예정론이 있다"며 "예정론에 대한 그의 확고한 입장이 복음전도와 선교를 약화시켰다는 것이 오랫동안 주장되어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칼빈은 예정이 설교를 약화시켰다는 표준적 비판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답한다"며 "그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논한다"고 했다.

"'우리는 누가 예정된 자들의 숫자에 속하는지, 누가 속하지 않은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구원받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평화의 참여자로 삼으려는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또 그는 "목사 칼빈은 이렇게 말한다"며 "그런 다음, 설교에 맡기라. 설교가 사람들을 믿음에로 인도하여 인내 가운데 지속적인 유익으로 그들을 굳건히 붙잡아 주도록!"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칼빈이 복음화 내지는 선교활동에 어떻게 적극적으로 관여했는지에 관해 변론했다.

프랭크 박사는 "16세기 중반에 개신교도들이 박해를 받아 수많은 사람들이 프랑스어권인 제네바로 도피했다"며 "제네바에서 피난처를 찾은 불어사용 개신교 피난민들은 그들의 목회자로서 칼빈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개신교 복음을 가지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야 한다고 느껴 칼빈을 찾아가 프랑스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지를 요청했지만 칼빈은 교육받지 못한 선교사들을 가톨릭인 프랑스의 위험지역으로 돌려보내는 것에 대해 마음이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신학적으로 훈련했고, 그들의 설교 능력을 검증했으며, 그들의 도덕적 성품을 주의 깊게 면밀히 살폈다. 그들이 알맞게 훈련받고 검증된 후에야 칼빈과 제네바 교회치리회는 그들을 프랑스의 위험지역으로 보내어 복음을 전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또 "1555년경 프랑스에는 개신교 지하교회가 5개 있었다. 1559년경에는 이 개신교 교회들의 숫자가 100개를 훨씬 넘어섰다. 최상의 학문적인 평가는 1562년경에는 프랑스에 세워진 교회가 2150개 이상 있었고 출석 교인이 약 3백만 명 정도였다는 것이다"며 "이 사실들을 볼 때, 칼빈이 선교에 무관심했다는 구스타프 바르넥의 주장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게 되었다"고 했다.

덧붙여 "최상의 학문적 평가는 약 300명의 선교사들이 1555년부터 1565년까지 제네바로부터 파송되었다는 것인데, 당시 제네바 인구는 1만 5천 명 가량의 소도시였다"며 "내 친구 피터 윌콕스(Peter Wilcox)는 '선교활동은 칼빈이 자신의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최우선적으로 몰두했던 일이었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프랭크 박사는 제네바 기록보관소가 보관한 500년된 칼빈 서신을 언급하며 프랑스의 선교사가 칼빈에게 편지를 보면 너무나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음도 알게된다고 했다.

그는 "제네바가 프랑스 선교에 성공한 것은 프랑스 가톨릭까지도 인정했다"며 "예수회 사제 쟝 뻴띠에르(Jean Pellttier)는 1561년 뚤루즈로부터 보고를 받았다"여 이 글을 소개했다.

"도시마다 제네바로부터 온 사역자들이 설교를 합니다. 그들은 주요 인사들과 대부분의 시장관들을 설득하여 이단들을 처벌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 나는 주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고 봅니다. ... 지금 온 나라가 이단으로 가득하므로, 만일 우리 주님이 자비를 베푸시지 않고 금년에 간섭하시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끝장날 것입니다."

또 "제네바 선교사들이 가야할 다른 지역들도 있었다"며 "선교사들이 이탈리아, 네덜란드, 헝가리, 폴란드와 라인 강변의 자유제국도시들에도 보내어졌다는 것은 증거에 의해 입증된다"고 했다.

그는 "칼빈이 선교사들을 대서양을 넘어 서부 아메리카에 보낸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며 "실로 우리는 제네바가 브라질에 보낸 두명의 선교사 이름을 알고 있는데, 삐에르 리쉬에르(Pierre Richier)와 귀욤 샤르띠에르(Guillaume Chartier)이 그들이다. 제네바에서 훈련받은 이 두 선교사는 마치 브리질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목사로서 정착민들을 섬겼다"고 소개했다.

프랭크 박사는 "칼빈으로 하여금 놀라운 선교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최소한 이 대답의 일부는 칼빈의 설교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말씀과 같은 그러한 보물을 주시고 그와 같은 평가 불가능한 것을 주셨다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우리 자신을 희생하여 말씀이 안전하고 건전하게 보전되도록, 그리고 소멸되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그리고 각자는 그 말씀을 자신의 마음에 안전하게 보관해야만 한다. 하지만 자신의 구원을 보는 눈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온 세상 곳곳에 편만하게 빛나야 한다."

그는 "자신의 마무리 목회 기도에서 목회자 칼빈은 계속 이 동일한 주제로 되돌아간다"며 "칼빈에게 있어서 자명한 사실은 우리 자신의 영혼 구원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불가피한 소망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프랭크 박사는 "만일 칼빈이 개혁신학의 안내자일 수 있다면, 개혁 장로교도들은 성경신학에 전념해야 할뿐만 아니라, 가장 훌륭한 목회자들의 양산과 선교적 세계관의 특성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도 요청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웨스터민스터 예배지침에 나타난 청교도 설교'(박태현 박사/총신대 신학대학원 설교학 교수) 발제가 진행됐다.

#칼빈예정론 #칼빈학술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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