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말씀묵상] 아들을 보내시고, 아들의 영을 보내사

본문: 갈 4:1-11

♦오늘의 말씀

누가복음은 예수께서 처음 하신 메시지를 "나는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려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눅 4:18).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생을 가리켜 '갇힌 자'로 정의한다.
복음은 갇힌 자를 자유케 하는 진리이다(10/13일 묵상).
그런데 진리의 복음이 비진리의 현실속에 있는 한, 혼돈과 분열, 갈등이 상존(常存)한다.

나는 분명 복음으로 말미암아 갇힌 자에서 자유자가 되었다.
지난 주말, 이 복음을 수종들며 하나님이 잠시 맡기신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이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사역을 감당하였다.
나는 복음을 가르치기 보다, 복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안에서 사는 존재로 드러나기를 원했다.

그런데 눈을 뜬 내 영혼은 또다시 갇힌 자로 발견된다. 내 생각에 갇히고, 회한의 과거속에 갇히고, 무거운 상황에 갇힌다.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비참한(천박한) 세상의 이치(초등학문)으로 돌아가려느냐!"(9절).

자유자에서 다시 갇힌 자로 돌아가려는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한 사도의 호통이 성령의 호통이 되어 내 영을 깨운다. 복음의 진리를 알고도 그 진리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나의 한계, 그로 인한 내적 절망은 나를 수시로 짓누르고, 복음이 가져온 승리마저 삼켜버린다.

아침마다 인자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성실하심으로 찾아오시 않으신다면, 나는 절망의 심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리라!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안타까운 심정은, 이 아침, 나를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되어, 살아있는 말씀으로 내 영과 혼과 관절을 찔러 쪼갠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아들'을 보내셨다.
아들의 모든 권세를 누리게 하시도록 '아들의 영'을 보내셨다.
"God sent his Son.. God sent the Spirit of his Son"
하나님은 나를 아들이 되게 하셨을 뿐 아니라, 아들의 권세로 살도록 하시기 위해 아들의 영을 보내셨다.

이 아침, 하나님은 다시한번 나의 신분과 정체성을 밝히 일깨우신다.
그리고 내 삶의 근거와 능력의 근원을 분명히 조명하신다.
내 삶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다.

인도의 선다 씽은 비교종교학을 연구하는 교수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당신이 기독교로 개종한 후 새롭게 찾은 것은 무엇입니까?'
선다 씽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교수는 화가 나서 다시 물었다.
'아니 이전에 믿던 종교에 없는 어떤 원리나 교리같은 것이 있지 않습니까?'
선다 씽은 다시 대답하였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얼마나 명쾌한가!
예수 그리스도는 타종교에서 말하는 교리나 원리 이상으로, 존재이며 궁극적 실재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이며, 그가 없이는 한시도 숨쉴 수 없는, 오직 그로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나도 그러하다. 그래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진리을 잠시라도 떠나면 이내 갇힌 자가 되고 만다.

사방으로 우겨싸임, 답답함, 핍박, 거꾸러뜨림을 당함.. 나는 종종 이런 현실에 봉착한다.
이는 눈에 보이는 상황이기도 하지만, 내적인 갇힘이기도 하다.
오늘 아침도 그렇게 눈을 뜨지 않았는가!

그런데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같은 현실에 참여하신다(고후 4:7).
이것을 자각하니, 이제 나는 싸이지 아니하며, 낙심하지 아니하며,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아주 망하지 아니한다(고후 4:8-9).
이것이 십자가 죽음을 지고, 예수 생명으로 사는 삶이다(고후 4:10-11).

십자가는 죽음이며, 인간에게 최후의 실패, 마지막 절망은 죽음 아니던가!
이미 깨어진 것은 다시 깨어질 수 없듯이, 십자가 죽음은 이 땅에서, 내게 일어나는 최후의 절망을 삼켜버린다.
그에게 남은 것은 부활의 아침, 하나님에게서 시작되는 새로운 희망뿐이다.
오늘도 세상과 사람, 상황에 갇힌 존재인 나는 십자가 죽음안에서 하나님만을 소망한다.
이 영광스런 은혜는 아담의 타락직후에 약속된 구원의 은혜이다.

아담의 죄로 인해 모든 사람이 사망에 갇히게 되었다(롬 5:12).
그러나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에서 태어날 자가 모든 사람을 사망에서 해방시킬 것을 약속하셨다(창 3:15).
여자의 후손에서 태어날 자는 아담 안에서 태어나는 죄인과 근원이 다르다.
하나님 자신의 아들이시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기 '여자'를 '처녀'라고 구체적으로 예언하였다(사 7:14).
마침내 하나님은 처녀 마리아에게 성령을 통해 아들을 잉태케 하셨고, 타락시 하셨던 구원의 약속을 성취하셨다(마 1:21, 23).

아담 안에서 비롯된 모든 인간의 좌절과 절망은 하나님과 분리된 데에 있다.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은 자력으로 세상과 문화가 정한 규칙을 지키고, 심지어 하나님이 정하신 법(율법)도 지키면서 살려 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좌절, 허무, 절망으로 귀결된다. 문제는 규칙과 율법 이전에 주체에 달려 있다. 즉, 하나님을 떠난 존재로서 무엇인가 행하려는 데에 있는 것이다. 이것이 죄 아래, 율법 아래에 갇힌 자의 실상이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갇힌 자를 건져내시기 위해 당신의 때에,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태어나게 하셨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4절)
그리고 율법 아래에 있는 모든 사람을 건져내시고, 아들에게 주신 모든 권리를 부여하셨다(5절).

아들은 아들답게 살아야 하고, 그가 받은 권세를 다 사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아들의 영도 보내셨다(6절).
아들의 권세중의 권세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는 것이다(6절).
이는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을 의미한다(9절; 이제는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다.

복음의 실체는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셨다.
갇힌 자로 살아가는 우리들, 자기 힘으로 인생을 살고, 자기 힘으로 하나님을 믿는 이들을 구원해내셨다.
뿐만 아니라, 아들의 권세를 주시고, 그 권세를 행사할 수 있도록 아들의 영을 보내셨다.

아들의 권세는 하나님을 아는 것, 즉 하나님과 사귐에 있다.
지성소 안에서 아버지를 존재로 만나며, 여기서 하나님을 아빠로 부른다.
이같은 권세, 이같은 복이 세상 어디에 있는가!

갇힌 세상에서 살아가는 나의 현실은 나를 갇힌 자로 하루를 맞이하게 하였다.
이렇게 복음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지 않으면, 옛 사람의 관행대로 '갇힌 자'가 되고 만다.

이 아침, 나를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운 사랑은 복음의 진리를 밝히 드러내심으로 임하셨다.
'아들을 보내시고, 아들의 영을 보내사'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으로 살게 하시는 것.
세상과 상황에 갇힌 나는 지금 십자가 죽음 안에 있다.
십자가 죽음은 이 땅에서 내가 경험하는 최고의 좌절, 최후의 절망도 넉넉히 삼켜버린다.
그 죽음 안에서 부활의 새벽을 맞이한다. 하나님 안에서 새롭고 눈부신 소망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십자가에 죽었기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옛 사람.
나의 옛 사람을 오직 십자가 죽음 안에서만 발견된다.
무덤에 장사지낸 바 되었음을 진리로 확정한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들의 영으로, 하나님과 사귐안에서의 발견되는 나, 그가 바로 참된 나이다. 그로 살아가는 이 날이 되기를 소원한다.

♦묵상 기도

아버지.
이 아침, 눈을 뜨자 마자 내 영혼은 곤고함, 우겨쌈, 답답함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내게 놀라운 구원이 임했으나 다시 옛 사람으로 돌아가려는 종을 불쌍히 여기소서.

복음,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잠시도 숨쉴 수 없기에 주님은 교리가 아닌, 내게 생명이며 실재입니다.
다시 한번 복음의 진리로 내 존재와 삶을 새롭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나의 옛 사람은 오직 십자가 죽음안에만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아들을 보내셨고, 아들의 영으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살 수 있는 모든 권세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사귐 안의 나,
하나님의 품안에 있는 나,
하나님이 보시고 기뻐하시는 나,
그가 바로 새롭게 된 나이며, 내가 살아야 할 나입니다.
이 아침, 내 영혼이 여호와 하나님을 송축하나이다! 할렐루야!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시 103:22)

#서형섭목사 #말씀묵상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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