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주해 무상] 절뚝발이 야곱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듯, 십자가에서 그 분의 얼굴을...

본문: 창 32:21-32

♦오늘의 말씀

야곱은 가나안 땅 접경에서 형 에서의 위협을 받는다.
이에 그는 곤궁에서 벗어나고자 방책을 세우며 언약의 하나님께 도움을 구한다.
더불어 에서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연속적으로 예물을 보낸다.
예물로 에서의 얼굴을 가리고, 그로부터 자기 얼굴도 가리움 받기를 원한다.
예물은 야곱의 얼굴(파님)에 앞서 가고 그는 진지(camp) 가운데에서 밤을 맞이한다(21절).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나루를 건너게 하였다(22절).
또한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한다(23절).
야곱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존재물)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았다.
바로 그 때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을 하였다(24절).
하지만 그 사람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허벅지 관절)를 쳐 어긋나게 하였다(25절).

날이 새려 하자 그 사람이 보내주기를 청한다.
그러나 야곱은 자기를 축복하지 않으면 보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26절).
그러자 그 사람은 야곱의 이름을 묻고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부른다(27-28절).
이는 야곱이 신들(엘로힘)과 사람들과 더불어 이기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엘과 싸우다, 엘이 싸우다, 엘이여 통치하소서'의 뜻을 가진다.
야곱 또한 그 사람의 이름을 물으니 그 사람은 이름을 말하지 않고 야곱에게 복을 주었다(29절).

그래서 야곱은 그 곳 이름을 '페니엘'(하나님의 얼굴)로 부른다.
그리고 말하기를 그가 하나님과 대면하였으나 자기 생명이 보전되었다고 말한다(30절).
그가 페니엘을 지날 때 해가 돋았고 야곱은 그의 허벅지로 인해 절뚝거리게 되었다(31절).
이후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않았다(32절).

야곱은 신들과 사람들을 이긴 승리자로서 가나안 문턱에 진입하고 에서를 대면한다.
여기서 문제의 초점은 야곱이 겨루어 이긴 그 신(엘로힘)이 과연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느냐에 있다.
야곱이 얍복 나루터에서 씨름한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근거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① 야곱과 씨름한 자는 하나님이 아니고 '어떤 사람'(이쉬)이다(24절).
② 구약성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과 싸워 이겼다는 인간에 관한 기록은 없다.
③ 야곱이 얍복 나루터에서 원하는 것은 에서로부터의 구원이었으며 신과의 대결이 아니었다.
④ 그 사람이 야곱을 향해 '겨루어 이겼다'라고 했을 때 그 대상은 '신들과 사람들'(임 엘로힘 워임 아나쉼)이다. '엘로힘와 아나쉼'은 서로 대칭되는 말로 짝을 이루어 표현할 때 사용되는 통전적 개념이다(삿 9:9,13). 이것을 두고 '신을 이겼다'는 개념으로 읽기는 곤란하다.
⑤ 야곱의 개명(改名)이 '이스라엘'이며 그가 싸워 이긴 엘로힘을 표기하는 '이스라-엘로힘'이 아니다. 엘은 그 지역을 지키는 강의 신으로 이 신은 밤에 위력을 갖고 있었으나 날이 밝으면 힘을 잃는다. 그래서 날이 새려고 하자 그 신은 자기를 놓아달라고 요구한다.
⑥ 야곱이 여기서 승리한 감격은 '신들 겨루어 이긴' 강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났다'(페니엘)는 사실에서 왔다.

이러한 맥락으로 볼 때 야곱이 겨루어 이긴 대상은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강의 신이거나 야곱의 도강(渡江)을 방해하는 세력이며, 그에게 이스라엘이라고 이름을 준 '그는' 창세기 기자의 신학적 천명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저명한 주석가 베스터만은 창세기 35장 10절(하나님이 그를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되리라)의 이중기사 또는 메아리라고 보았다.

어쨌든 이 사건은 에서로 인한 심리적 고통 속에 있던 야곱이 고난과 심판을 거친 하나님의 시험에 통과한 사건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심판의 표로 다리는 절뚝거렸으나 그의 앞에는 희망의 태양이 떠올랐다.
속임의 명수 야곱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깨어지고 야곱의 이름, 야곱의 인생도 함께 끝이 났다.
야곱은 그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만나는 체험을 하였다.
심판을 통한 깨어짐은 약보의 약함이나 그로 인해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은 야곱의 강함이 되었다.

약함 속에 있는 강함!
그것은 장차 구원자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리사 가장 약하여졌으나 하나님의 능력을 강하여졌다.
우리 믿는 자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그 안에서 약하나 하나님의 능력이 그곳에 머무는 것으로 인해 강하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고후 13:4).

예수 그리스도는 강하시나 겟세마네에서 씨름하셨다.
이로써 십자가 죽음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고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담당하셨다.
야곱은 생식기가 있는 가까운 곳에 신의 공격을 받아 생식 불능이 되는 고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 무너진 생식기가 오히려 재생산의 자리로서 누구도 손댈 수 없는 '터부'가 되어 번성한 후손의 조상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깨어져 죽으심으로써 많은 생명의 열매를 맺었다(요 12:2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 새 생명, 하나님의 생명을 주신 것이다.
우리는 아들의 죽음과 무덤에 연합됨으로써 새 생명 가운데 행한다(롬 6:4).
야곱과 같은 옛 사람이 십자가에서 죽고 장사됨으로써 하나님의 생명, 새 생명으로 사는 것이다.
새 생명으로 사는 것은 매일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절뚝거리는 자 되었으나 그의 영혼은 하나님 품 안에서 희망으로 가득하다.

♦묵상 기도

아버지여...
저의 50여 평생은 야곱의 인생이었습니다.
속고 속이고, 물고 뜯기고, 가장 무서운 자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존재물을 획득하여 나의 수치를 가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리하진 못했습니다. 돌아보면 이것이 은혜입니다.

홀로 남아 한밤중이 되었습니다.
사람들도 소유물도 다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때 말씀으로 씨름하게 하셨습니다.
말씀으로 비쳐진 나의 죄악을 대하니 하나님의 심판은 참으로 옳았습니다.
하오나 당신은 영원히 의로우셔서 심판 중에 성전을 지으셨습니다.
마침내 내 안에 오셨습니다. 아담이후부터 나를 찾으시던 발자국이 멈추었습니다.

아버지여...
오늘도 나의 죄악을 드러내시니 저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입니다.
나의 의를 세우고자 뭇사람을 악인으로 만드는 패역한 자입니다.
오, 주여! 어찌하여 모든 것이 나의 기준이 됩니까?
죄의 세력은 여전히 나를 속이고 나를 사망으로 몰고 갑니다.
오늘도 얍복 나루터의 야곱처럼, 겟세마네의 주님처럼 씨름합니다.
내 뜻대로 마시옵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당신의 뜻만을 이루소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 그는 약하나 온전히 강하나이다.
저 또한 그 안에서 약하나 온전히 강하옵니다. 종을 받아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묵상선교회 #서형섭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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