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말씀묵상] 예배 공동체에 임한 심판, (영원한) 심판을 면하는 은혜이다

고전 11:17-34

♦오늘의 말씀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전하여준 '성만찬 의식'(성찬식)을 오해하고 있었다.
바울은 교회에서 성찬을 이해 모일 때 분파가 있다고 들었고 그것을 사실로 믿었다(18절).
이런 분파가 있어야 누가 하나님께 인정받는지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이다(19절).
여기서 분파는 문맥상 음식을 많이 가져온 부자들과 교회에 와서야 먹을 수 있는 가난한 자들 사이의 분파를 뜻한다.

그런데 이렇게 분파가 있는 상태에서 음식을 나누는 것은 주의 성찬이라고 할 수 없다(20절).
왜냐하면 모두가 모였을 때 공동식사를 해야 하는데 각자가 자기의 것을 갖다 먹게 되니, 어떤 이는 음식이 없어 굶고, 어떤 이는 지나치게 먹어 술에 취한다(21절).
곧 부자들은 많은 음식을 가져왔는데 자기들끼리 먹고 마심으로써 '주의 성찬'이 아닌 '자신의 만찬'을 먹은 것이다.
이와 같은 행위는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하고 가난한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짓으로 결코 용납될 수 없다(22절).

이에 대해 바울은 주님이 정하신 성찬식의 말씀을 인용하여 공동식사의 의미를 깨우친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전하여 준 것은 주님께 받은 것이다(23절).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나를 기억하면서 이것을 행하라"(24절).
똑같은 방법으로 식후에 잔을 들고 말씀하셨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면서 이를 행하라"(25절).
성도들은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해야 할 것이다(26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과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범하는 것이다(27절).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것은 주께서 자기를 버리시고 우리를 사랑하신 죽음의 의미를 저버리는 행위이다.
이는 가난한 자를 배척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는 행동과 형제에 대한 우애를 상실한 행동이다.

각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근거해 자기를 살피고 떡을 떼고 잔을 마실 것이다(28절).
주님의 몸이라는 인식 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에게 내릴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다(29절, 쉬운성경).
여기서 문제의 사람들은 주의 성찬에 모일 때 도리어 자기에게 심판을 초래하고 죄를 범하고 만다.
그로 인해 아픈 사람이 많고 죽은 사람도 적지 않다(30절).
바울은 주의 식탁을 더럽힌 자들이 신체적인 질병의 원인으로 간주된 악마의 세력에 그들 자신을 드러내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10:20-21 참고).
질병과 죽음에 대한 말은 고린도에서 일어난 것으로 알려진 사건들에 대한 설명이고 동시에 주의 만찬을 계속 남용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이다.
이것이 바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을 분별하였더라면 이 같은 심판은 받지 않았을 것이다(31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심판은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지금 심판을 받는 것은 장차 세상이 받은 영원한 심판을 면제해주기 때문이다(32절).
그러므로 먹기 위해 모일 때에는 서로 기다릴 것이다(33절).
혹시 배고픈 사람이 있으면 자기 집에서 먹을 것이다.
그리하여 먹기 위해 모이는 모임이 심판받는 모임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34절).
이 외의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직접 가서 말할 것이다(34절).

성찬식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나누는 의식으로서 그리스도 자신이 제정하셨다(23절).
이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경이로운 사건을 회상하는 의식이다.
그리하여 믿음으로 주님의 식탁에 앉아있음을 고백하며 그를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그 안에서 교회 지체와 하나가 되었음을 축하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취적으로 고백하여 최후의 심판 날을 기억하는 의식이다.
이로써 신자들로 하여금 특별한 종말론적 신앙의식을 가져다준다.

초대교회 성찬식에 사용되는 음식은 떡과 포도주이었다.
그리고 이것들은 특별한 음식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음식이었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밥과 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일상적인 것을 취하셔서 죽음의 의미를 드러내신 것이다.
그래서 성찬식을 위한 음식은 특별히 준비되지 않았고 각자가 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사용하였다.

또한 성찬식은 개인적으로 시행되지 않으며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시행되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교회 지체들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다.
이들은 하나의 떡을 떼어 먹음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였다.

현대 교회에서 가톨릭교회는 지금도 주일예배 시 성찬식이 중심이 된다.
반면 개신교에서는 먹기 위해 모이는 성찬식이 정례화 되지 않고 있다.
주일 예배 시의 성만찬 의식은 설교로 대체되어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성찬식이 의미하는 정신은 그대로 수용되어야 한다.
그것은 주일의 설교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중심 내용으로 하는 복음적 설교라야 한다는 것과 복음적 설교를 통해 온 성도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말씀을 받는 성도는 자기를 살펴서 심판을 먹고 마시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현대교회의 주일 예배와 설교는 과연 칭찬받을 수 있을까?
복음의 말씀은 인간의 죄악된 본성을 드러내며 듣는 자로 하여금 마음을 찢고 애통하게 한다.
그리고 그런 자를 아들의 십자가를 통해 용납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한다.
예배 공동체는 자기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형제와 나눔으로써 하나가 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4-15).

♦묵상 기도

아버지여...
사랑 없는 예배, 우애 없는 예배를 드린 자였나이다.
입술로는 복음을 외쳤고 개인적으로는 사귐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공동체 안에서는 철저히 실패한 자입니다.
다시 심판의 자리에서 긍휼을 구하나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 심판의 무덤에서 주를 바라나이다.

아버지...
비존재의 세력은 무시로 찾아와 나를 삼키려하나이다.
심판의 결과 앞에서 죄책감과 정죄의식이 나를 사로잡아가나이다.
신앙의 교차로, 사역의 교차로에서 서성이니 허물만 더해집니다.
의심과 불안, 미움과 정죄, 판단과 비난이 내 속에서 일어납니다.
오, 주여! 나의 죄악을 토설하오니 불쌍히 여기사 사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여...
죄인이 구할 것은 오직 보혈의 은총이옵니다.
죄악된 본성, 육신의 생각으로 오염된 영혼을 정케 하소서.
보혈로 씻으나 새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죄인을 용서하신 그 사랑, 그 은혜로 인하여 다시 입술을 여나이다.
잠잠하지 않으며 기쁜 입술로 주를 송축하나이다.
죽기에만 합당한 종을 살리신 그 은혜를 찬양하나이다.
주는 은혜로우시고 긍휼이 한이 없으시며 자비가 한량이 없나이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묵상선교회 #서형섭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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