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말씀묵상]육체의 일을 탐하는 나실인의 고통, 생명이 사망을 삼킨다!

본문: 삿 14:1-9

1. 오늘의 말씀 : 삿 14:1-9

2. 시작 기도

아버지여! 죄악이 나를 따라다니는 환난의 날에 종을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심히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
주께서 은혜를 주신 자이오니 죄악에서 건져내시고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하나님의 사람 삼손이 육체의 일에 탐닉하는 것도 과연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이옵니까?
말씀 앞에 심히 두렵고 떠는 자를 불쌍히 여기소서.
죄악을 행하여도 잠잠하시는 것이 더욱 두렵사옵니다.
나를 속히 책망하사 나의 죄악을 밝히 드러내소서.
내 죄가 주 앞에 숨길 수 없사오며, 내 죄가 항상 주 앞에 있나이다.
보혈로 씻어 정케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을 창조하사 주를 보게 하소서.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삼손은 경건한 부모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하나님의 천사가 고지한대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나실인으로 살아야 했다.
그가 자라매 하나님의 축복이 그와 함께 하였고 여호와의 영이 그를 이끌었다.

이제 그가 장성하여 혼인할 때가 되었다.
그가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다(1절).
그리고 그녀가 삼손을 좋아하였다(70인역에 추가됨).
딤나는 단 지파에 속한 소렉골짜기에 있는 성읍으로 유다와 블레셋은 이 딤나를 사이에 두고 계속적으로 싸웠다(대하 28:18).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는 히브리어로 '이시사아'이며, 통상적으로 결혼한 여인(woman 또는 wife)을 뜻한다.
히브리어로 '처녀'(virgin)는 '베툴라'이며, 여기서 삼손을 좋아한 여인은 과부이거나 이혼녀임을 암시하며 따라서 그녀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언질이다.

삼손이 딤나에서 소라에 있는 부모에게 올라와서 그녀와의 결혼을 요청한다.
그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으니 아내로 맞이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2절).
고대근동 이스라엘에서는 아버지가 집안의 모든 문제를 결정하였으며 여기에 아들의 아내를 맞이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12:9; 창 24:3-9; 민 10:30).

그러나 삼손의 부모는 이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다(3절).
그 이유는 그가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에게서 아내를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삼손의 경건한 부모는 이방민족과의 결혼을 금지하는 율법에 따라 이 결혼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출 34;11; 신 7:1,3; 삿 3:5-5).

하지만 삼손은 자기가 그 여자를 좋아하니 자기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올 것을 청한다.
"Get her for me. She's the right one for me"(3절, NIV).
"그녀를 저에게 얻어주십시오. 그녀는 나를 위해 합당한 자입니다"(3절, 원문의역).
'나를 위해 합당하다'는 사사기의 결어에 언표된 '자기의 소견에 옳다'와 같은 표현이다(21:25).
삼손은 율법과 전혀 무관하게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행한다.

하나님의 사람, 나실인 삼손은 경건한 부모의 뜻을 거스르고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행하였다.
그런데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지 못했다.
사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블레셋 사람을 칠 기회를 찾고 계셨던 것이다.

삼손은 '부모와 함께' 딤나로 내려갔다.
본래는 딤나로 내려간 사람은 삼손 한 사람이다(70인역, 단수형).
그러나 고대 번역본들은 '부모와 함께'를 추가하여 결혼협상의 주도권이 부모에게 있음을 언표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삼손은 블레셋 사람의 딸과 그녀의 가족들을 거부하는 부모에게 맞서서 그의 부모를 끌어들이지 않고 혼자 힘으로 일을 처리한다.

이 점은 삼손이 그의 아내의 집에서 축제를 한 것인지, 그가 자기의 동족대신 블레셋 사람들을 들러리로 세웠는지, 그의 아내가 결혼 후에도 계속해서 친정집에서 살았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이러한 결혼방식은 오늘날 아랍사회에서 '사디카(sadiqa) 결혼'으로 불리는데, 이것은 신랑이 자기 가족을 연루시키지 않고 직접 치루는 결혼이다.
이 경우 신부는 계속해서 자기 집에서 살고 남편이 주기적으로 그녀를 찾곤 한다.

삼손이 딤나에서 가까운 포도밭으로 갔는데 갑자기 어린 사자가 으르렁거리면서 그에게 다가왔다(5절).
그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으나 그 사자를 염소새끼를 찢듯이 찢어버렸다.
그는 그가 한 일을 그의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다(6절, 본 절은 직전구절, 곧 삼손이 혼자 딤나로 내려갔음을 확증한다).

어린 염소나 어린 양을 손으로 조각조각 찢어내는 것은 오늘날까지 아랍 여러 나라에서 계속되는 관습이다.
물론 이것은 동물이 이미 요리된 상태에서 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형은 이 일이 쉽사리 이루어졌다는 것을 입증하며, 삼손이 염소새끼 찢듯이 사자를 찢어버린 것은 그의 영웅적인 힘의 증거이다.
삼손은 내려가 그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그 여자는 그를 기쁘게 해주었다(7절).

며칠 후 삼손은 그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다시 딤나로 내려갔다.
그 길에 삼손은 자기가 죽인 사자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사자의 몸속에는 벌떼가 있었는데, 그 벌떼는 꿀을 만들고 있었다(8절).
벌들이 시체에 집을 지었다는 설화는 얼핏 이해되지 않는다.
주검(시체)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날아오는 법이 아닌가?
가정할 수 있는 것은 여름의 태양 및 건조한 기후가 시체를 급속히 말려서 부패물을 제거하게 했거나, 이 설화가 '시체는 벌떼를 포함한 벌레들을 생성시킨다'는 고대 신앙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손은 손으로 꿀을 떼어 내어 걸어가면서 먹었다.
그는 자신의 부모에게 되돌아가서 그것의 일부를 그들에게도 드렸다.
하지만 자신이 사자의 시체에서 그 꿀을 모았다는 것을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다(9절).
그가 부모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후에 언급될 수수께끼와 관련되어 있으며, 누구도 그 답을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13-14절).

여기서 나실인 삼손은 이중적인 범죄를 행한다.
하나는 나실인은 부정한 시체(민 6:6; 죽은 사람, 죽은 것)에 가까이 가서는 안된다는 법을 어겨 불결하게 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가 그의 부모를 불결하게 한 것인데, 이는 나실인이 아닌 사람도 부정한 시체에서 나온 것을 먹으면 불결하게 되기 때문이다(레 11:24-25,39).

삼손은 구별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요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는 태중에서부터 구별되었고 경건한 부모에 의해서 양육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장성하면서 나실인의 규례를 깨트리고 자기보기에 좋은 대로 행한다.
자기 보기에 좋은 이방여인을 맞이하고 부정한 것을 만지고 거기서 나온 꿀을 먹는다.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며 육체의 일에 탐닉한다.
특히 그는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방탕함에 빠져든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19-21).

그런데 그가 이방여인과 통혼하여 율법을 어긴 일은 바로 여호와께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삼손의 경건한 부모는 율법을 어겨 일탈하는 아들을 대하는데, 성경은 도리어 그들이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알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게다가 아들이 속이고 가져온 꿀을 먹어 부정한 자가 되고 말았는데, 이 일은 대체 어찌 설명할 것인가?
신앙의 당위성과 정당성이 무너져 내리는 사건 앞에 황당하기 그지없다.

다 알 수 없는 하나님, 이해너머에 계신 하나님...
그 분은 진실로 기묘자이신가? 하나님은 누구이시며, 삼손과 그의 부모는 대체 누구인가?
말씀 앞에 혼돈과 흑암만이 밀려든다.
어찌하여 하나님의 백성들 앞에 암울한 역사만이 반복되는가?

독일의 위르겐 몰르만 교수(88세)로 현존하는 신학자중 가장 탁월한 학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삼위일체적 십자가 신학을 완성한 신학자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어제 서울신대에서 '하나님의 기쁨의 신학'을 주제로 강연하였다.
중심주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인간의 고통 속에 참여하여 원초적인 하나님의 기쁨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현실은 고통과 절망이 기쁨과 행복보다 그 가깝고, 우는 것이 웃는 것이 더 가깝다.
그런데 가장 원초적인 것은 기쁨과 영광이며 생명과 사랑이다.
무엇이 더 원초적인가? 하나님의 현존이 만물의 비본재보다 더 원초적이다.
원초적인 것이 먼저 있고, 그것만이 영원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것을 원초적인 것으로 되돌린다.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된다"(고후 5:4).

고통 속에서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기쁨을 창조한다.
이 기쁨은 내세적인 것이 아니라 현재에서 경험되며 영혼에서 감각까지 이어진다.
원초적이지 않은 것, 영원하지 않는 것은 모두 지나간다.
가장 깊고 원초적인 것만이 영원하다.

"기쁨 - 그것은 마음의 고통보다 더 깊다!
고통은 말한다 : 지나가거라
그러나 기쁨은 영원을 원한다 - 깊고 깊은 영원을 원한다"(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창세전 약속된 영생은 가장 깊고 원초적이다.
십자가와 부활로 주어지는 영생의 기쁨은 모든 고통과 슬픔을 삼킨다.
고통은 기쁨으로 변화될 것이며, 한시적인 죽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지양(止揚)될 것이다.

"고통으로 말미암아 온 것은 지나가는 것일 뿐이었다!
나의 귀는 찬양만을 들을 뿐이었다"

4. 나의 묵상

오늘도 삼손의 부조리, 경건한 부모가 당한 기만은 내 영혼에 고통을 자아낸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육체의 일에 탐닉하는 것이며, 그래도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 알지 못하였더라"(4절)

이 말씀이 검이 되어 내 심장에 비수로 꽂힌다.
어찌하여 하나님 당신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가?
어찌하여 악한 자를 들어 당신의 선을 이루시는가?
어찌하여 당신의 종들이 자기 뜻대로 행하는데 그들을 통해 선한 역사를 이루시는가?

말씀에 대한 물음은 육체의 일을 탐하는 삼손의 길에서 서성이는 자를 고발한다.
하나님이 사용하신다고 모두가 의인은 아니며, 그분은 죄인이라도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신다.
그것은 만민을 구원하신 십자가 사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차라리 나지 않았어야 할 가롯유다, 진리에 대해 영원히 평행선을 가던 종교지도자들, 그리고 무법한 로마총독과 그의 군인들이 영원에서 오신 아들을 죽이지 않으셨는가?
그런데 이 일은 바로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뜻이라니...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행 2:23).

누구를 위해서인가?
바로 그를 십자가에 넘긴 무법한 자를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택정함을 입었으나 육체의 일을 구하는 삼손을, 죄인들을 위함이다.
그들 중에 바로 내가 있다.

오늘도 무시로 육체의 일에 탐닉하는 나를 고발한다.
내가 삼손이요 내가 요셉의 형들이요, 가롯유다요, 불의한 영적 지도자요, 빌라도와 그의 군병들이다.
내가 바로 그들임을 발견하며 나는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그 고통 속에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임한다.

그 사랑은 처음부터 존재하였던 기쁨을 창조한다.
생명이 죽음을 삼킨다! 기쁨이 고통을 삼킨다!
나는 본래 있던 곳, 원초적인 것, 영원한 곳으로 돌아간다.
오늘도 내 주님, 그의 이 기도가 응답된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 17:24).

창세전 영광을 보니...
나의 귀는 찬양만 들릴 뿐이다!
고통으로 온 것은 지나갔다!

5. 묵상 기도

아버지여...
하나님의 사람, 삼손이 자기 좋은 대로 행합니다.
육체의 일을 탐닉하며 자기는 물론 경건한 부모까지 불결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당신에게서 나온 일이라니요?
말씀 앞에 두렵고 떨리며 혼절할 정도이옵니다.
어찌한 경건한 가정이 한순간에 불결하게 되었나이까?
이 일이 정녕 당신에게서 나온 것입니까?

아버지...
삼손이 누구이옵니까? 내가 바로 그 사람이옵니다.
하나님께 택함 받고도 육체의 일을 탐하는 자입니다.
음란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방탕이 제 안에 있나이다.
이 일이 당신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니 더욱 두렵습니다.
오, 주여! 나의 고통을 보옵소서. 어찌 자격 없는 자가 당신의 일을 하오리이까?

아버지여...
이 모습 이대로 십자가로 달려갑니다.
내 영혼의 고통 속에 당신의 사랑을 부으소서. 십자가 사랑을 부어주소서.
영원한 것, 원초적인 것, 처음부터 있던 것은 아들의 영광이옵니다,
내게 그 영광을 보이소서. 당신의 기쁨을 보이소서.
창세전부터 있었던 그 영광, 기쁨 안에 들어가나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나이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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