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군 화진포길,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별장이 하나 있다. 이름은 ‘화진포의성김일성별장’. 아니, 우리나라에 있는 별장 이름에 ‘김일성’이라니. 이유는 과거 이곳이 북한 땅이었기 때문이다. 김일성 일가가 1948년부터 1950년까지 별장으로 사용하다 한국전쟁 중 우리 지역에 포함됐다. 지금은 국방부가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원래 이곳은 셔우드 홀 선교사가 1938년 아버지 제임스 홀의 순직생명보험금을 기반으로 건립한 선교사들의 안식처였다. 훗날 선교사들이 한국을 떠나면서 비어있던 곳을 김일성이 부인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와 함께 여름 휴양지로 사용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 땅이 되었으니 원래 이름을 찾아줄 법도 한데, 여전히 ‘김일성별장’으로 불리고 현지 표지판에도 그렇게 써 있다. 고성군은 이곳을 소개하는 웹페이지에서 ‘김일성’을 수차례 강조하고 있고, 어린 시절 김정일이 이곳에서 찍은 사진도 보여준다.
고성군 관계자는 기독일보와의 통화에서 이곳의 정식 명칭이 ‘화진포의성김일성별장’이라며 ‘화진포의성’이라는 원래 이름과 훗날 붙여진 ‘김일성별장’을 병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이 정식 명칭을 모두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대부분 ‘김일성별장’이라고 부른다. 고성군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명칭 수정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
지난 10월 27~28일,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 김정석)은 강원도 지역 ‘기독교 근대문화유산 답사’를 진행했다. 당시 현장을 찾은 관람객들 중 일부는 이름에 ‘김일성’이 들어간 점에 의아함을 나타냈다. 한 관람객은 “김일성별장을 왜 그냥 두느냐, 부숴야지”라고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원래부터 이곳이 김일성별장이라고 오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초 고성군은 이 김일성별장을 셔우드 홀 선교사의 기념관으로 조성하려 했다. 그러나 별장 활용에 대해 국방부와 협력이 불가해져 인근의 화진포생태박물관을 리모델링, 지금의 ‘화진포 셔우드 홀 문화공간’을 지난해 6월 개관했다.
이번 답사에 동행한 양홍석 목사(기독교대한감리회 다릿목교회 담임, 기독교 역사학자)는 “김일성별장이라는 명칭을 이제는 수정할 때가 됐다”며 “선교사들의 안식처였던 만큼, 그들과 그들의 사역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제임스·로제타 홀 부부의 아들인 셔우드 홀 선교사는 1893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1년 생을 마감했다. 한국 근현대 의료에 큰 공헌을 한 인물로 평가되는 그는 평양선교기지를 개척했고 평양기홀병원, 광혜원(현 세브란스병원), 동대문 부인병원(현 이화의료원), 인천부인병원(현 인천기독병원) 등에서 의료선교사로 활동했다. 1932년 결핵 퇴치를 위한 크리스마스씰을 발행하기도 했다.
◇ 강원 지역 선교 역사 간직한 춘천중앙교회·강릉중앙교회
이 밖에도 한교총 답사단은 춘천중앙교회와 춘천 미술관(옛 예수교회병원·춘천읍교회), 강릉중앙교회,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일산사료전시관 등을 둘러보고 이곳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되새겼다.
특히 춘천중앙교회와 강릉중앙교회는 강원 지역에 복음이 전해지고 지역 교회 공동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한국 기독교사의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된다. 두 교회는 20세기 초 험준한 산길과 불편한 교통 여건 속에서 이뤄진 선교 활동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양홍석 목사는 “특히 외국인 선교사뿐 아니라 ‘권서인’이라 불리는 한국인 전도인과 초기 신자들의 헌신이 강원 지역 복음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춘천중앙교회의 역사는 한국인 전도인 이덕수의 선교 활동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1902년 춘천으로 이주한 이덕수는 봉의산 기슭에 예배처를 마련하고 복음을 전했으며, 이는 춘천읍교회로 이어져 오늘날 춘천중앙교회의 모체가 됐다.
춘천 지역의 초기 기독교는 교회 설립에 그치지 않고 의료와 교육 분야로 확장됐다. 선교 활동을 통해 형성된 춘천 예수교병원과 교육 시설 등은 복음 전파와 근대 사회 변화가 맞물려 진행된 역사를 보여준다. 춘천중앙교회에 남아 있는 이덕수 전도사 기념물과 옛 예배당의 흔적은 지역 교회의 역사를 넘어 한국인 전도자의 선교 활동을 되새기게 하는 기독교 근대문화유산이다.
강릉중앙교회는 미국 남감리회 로버트 하디(Robert A. Hardie) 선교사가 1901년 영동 지역을 순회하며 연 기도회에서 출발한 교회로, 강원 영동 지역 초기 감리교 선교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초기 신자들은 신앙을 받아들인 뒤 삶의 변화를 실천하며 교회 공동체를 형성했고, 교회는 교육과 사회 계몽 활동으로 사역을 넓혔다.
특히 1915년 이 교회로 부임한 안경록 목사는 1919년 강릉 지역 3·1운동을 이끄는 데 참여했으며, 교회는 일제 당시 민족의식과 독립정신이 발현된 지역 기독교 역사의 한 축을 이뤘다. 이후에도 지역사회를 위한 복지와 봉사 활동을 이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