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승철의 노래 〈아마추어〉를 다시 들었다. 오래전 들었던 노래인데도 이상했다. 노래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데 마음은 지금의 나를 향해 말을 걸어왔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아마추어가 아니던가. 사랑도, 이별도, 가족도, 나이 들어가는 일도 처음 살아보는 일이다. 잘하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은 아니다. 넘어졌다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
이승철의 노래가 오래 사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그의 노래에는 화려한 스타의 목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친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위로가 있다. 내가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가보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건네는가가 중요하다는 듯하다. 가사는 때로 위로가 되고, 때로 힘이 되고, 때로 오래 묻어두었던 눈물을 불러낸다.
음악에는 특별한 마법이 있다. 한 소절만 들어도 잊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떠오르고, 한때 사랑했지만 미워하기도 했던 사람이 다시 생각난다. 드라마 《불새》의 〈인연〉을 들으며 “나는 정말 그댈 사랑해요”라는 노랫말에 마음이 젖었던 사람도 많을 것이다.
〈네버엔딩 스토리〉 역시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가수의 목소리로 다시 불릴 때마다 옛 노래는 새로운 세대의 마음에서 다시 태어난다.
이승철의 40년 음악 여정을 생각하면 ‘네버엔딩’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오랜 시간 노래했다는 기록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무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관객에게 좋은 공연을 들려주기 위해 음향과 무대를 직접 살핀다고 한다. 가수 혼자만의 무대가 아니라 밴드와 백보컬, 관객이 함께 호흡하는 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한 사람의 노래가 수천 명의 합창이 되는 순간, 공연장은 음악을 듣는 곳을 넘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공간이 된다.
나는 여기서 대중문화의 역할을 생각한다. 대중문화는 사람을 즐겁게 해야 한다. 그러나 즐거움만을 파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사람을 웃게 하면서도 그 웃음 뒤의 눈물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지친 사람에게 잠시 쉬어갈 자리를 만들어주고, 혼자라고 느끼는 사람에게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오래 살아남는 문화는 사람의 기억 속에 들어간다. 사랑했던 사람을 떠올리게 하고, 힘들었던 시간을 견디게 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건네는 문화다.
문화의 궁극적인 힘은 사람을 연결하는 데 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같은 노래를 부르고, 같은 장면에서 웃고, 같은 대목에서 눈물을 흘릴 때 우리는 잠시 혼자가 아니다. 대중음악은 그렇게 개인의 감정을 공동체의 기억으로 바꾸기도 한다.
문화비평가 사이먼 프리스는 음악이 개인적인 자아와 공동체적인 자아를 함께 경험하게 한다고 보았다. 반면 아도르노는 문화가 지나치게 상품화될 때 인간의 감정과 취향마저 획일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두 사람의 시선은 오늘의 대중문화를 생각하게 한다. 문화는 사람을 소비자로만 만들 것인가, 아니면 서로의 마음을 연결하는 사람이 되게 할 것인가.
좋은 가수는 단지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다른 사람의 삶 속에 남기는 사람이다. 좋은 대중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유행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의 마음에 흔적을 남겨야 한다.
그래서 이승철의 노래가 오래 살아 있는지도 모른다. 노래는 끝났지만 그 노래를 듣던 사람의 마음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때 나를 울렸던 노래가 어느 날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운다.
어쩌면 인생도 하나의 노래인지 모른다.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때로는 미워하고,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누군가의 노래에 기대어 다시 걸어간다. 노래는 끝나도 마음은 끝나지 않는다.
#정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