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스길라 부부의 신앙(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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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우 목사(유럽목회선교연구원)
한평우 목사

엊그제 로마를 방문한 C 집사님을 만났다. 재능이 특출하신 분으로 놀라운 사역을 하시는 분이었다. 대교회 청년 사역을 담당하시는 분으로 코로나 이후 다음 세대인 청년들이 계속 교회를 빠져나가기에 그들을 교회 붙박이로 만들려는 거룩한 고민을 하는 분이었다. 노인 대학은 몇천 명이 모이는 데 정작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가야 할 청년들은 복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하셨다.

왜 그런 현상이 왜 일어날까? 이런 현상에 대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여 준 서구가 그런 전철을 밟았기 때문에 우리 역시 그런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자조 섞인 신음을 토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진행될 때, 미래가 불을 보듯 뻔하기에 해결책을 위해 백방의 노력이 필요하다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의 의미를 가슴으로 뜨겁게 경험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신앙이 흔들리고 교회에 대한 관심이 옅어지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거듭남의 확신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알기로는 사람이 이 땅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은 구원의 확신이다 싶다.

60년대 하버드에 유학하던 여성이 재학 중, 예수님을 만났다. 그녀는 전공을 바꿔 신학을 공부하고 하버드 대학의 교목이 되었다고 한다. 그 대학의 학생 중에 진로를 바꿔 목회자가 된 분들이 많다고 한다. 인생이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 삶의 의미를 알게 되고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을 위한 일에 목숨을 드리게 된다.

그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고, 가장 위대하고 보람된 것임에, 눈을 뜨기 때문이다. 인생은 폐일언하고 하나님을 발견해야 진정한 나를 보게 되고, 내가 해야 할 가장 귀한 일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 일에 몸을 던지게 된다. 부리스 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그런 좋은 예가 된다.

초기 로마 시대, 얼마나 뛰어난 가문들과 정치가들, 예술가, 지성인들이 많았을까? 그러나 그들 가운데 재능을 부여하여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분께서 당신의 일을 하도록 재능 주셨음을 깨닫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래서 주신 재능으로 정치나, 예술, 또는 문학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 세상의 칭찬을 위해 아낌없이 사용하였고, 나름대로 목적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 결과 허물어져 가는 유적으로 아피아 가도에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아피아 안티카(Appia Antica)에 상처투성이로 쓸쓸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스토아 철학자이자 정치가, 세네카(Seneca,BC4-65AD)의 묘지가 아닐까 싶다. 그의 친형은 아가야 총독 갈리오(행18;1-17)이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그의 저서를 출판하고 사람들이 그의 명구를 부지런히 인용하고 있다. 세네카는 바르게 살라고 강변하고 있으나, 그는 네로 황제의 고문으로 모든 비밀을 섭렵하여 발 빠르게 브리타니아에 투자하여 큰돈을 벌었다. 요즈음 돈으로 환산하여 6천억에 이르는 액수라고 한다. 그는 이재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네로 황제에 대한 음모에 연루되어 자살형을 받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런데, 그에 버금가는 재능은 없었어도, 브리스길라 부부는 주님을 만나고, 멋진 길을 갔다. 그의 삶은 이 세상에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빛나는 아름다운 길이다.

브리스길라의 집터에 세워진 교회, 지하에는 미테라 신전이 있음
그에게도 수많은 유혹이 거머리처럼 달려 붙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유혹에 결코 눈을 돌리지 않았다. 오로지 부르신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고집했다. 세상에서 출세하고 인정받는 유혹이 마치 홍수처럼 밀려왔지만 말이다.

오죽했으면 사도 바울은 그에 대하여 이런 극상품의 칭찬을 남기도록 했을까?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롬16:4)

이 부부의 헌신은 바울을 감동하게 했고, 이 방에 세워진 모든 교회에도 알려져 귀감이 되었다. 당시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바울은 로마의 식민지 출신이었다. 그가 비록 로마 시민권을 소지했다고 해도 로마의 귀족인 브리스길라가 볼 때는 해방 노예 정도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부부는 바울을 전폭적으로 그의 가르침을 순종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그 힘든 가정교회를 오픈하여 섬겼다.

그 이유는 그부부는 진정으로 복음의 내용을 알았기 때문이다. 복음을 알게 될 때, 그것을 위해 목숨을 걸수 있기 때문이다. 그 부부를 향해 바울은 그는 내 목을 위해 자신의 목이라도 내어주었다고 고백했다. 이 시대는 그런 사람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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