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임신중지 약물인 '미프진' 도입 등 약물 낙태 문제를 두고, 법 개정 없이 "의사의 재량과 양심에 그 책임을 맡기자"는 취지의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대통령과 참모들의 생명에 대한 윤리적 민감도와 왜곡된 생명 의식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의사의 전문성을 인정하는듯 하지만 실상은 보호장비 없이 위험한 공사 현장에서 각자 알아서 대처하라는 말과 같다. 생명과 관련된 문제일수록 국가의 책임은 더욱 분명해야 한다.
먹는 낙태약은 수술대에 오르지 않고 약으로 낙태를 한다는 점에서 매우 편리한 방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생명을 다루는 의료에서 편리함이 곧 정당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의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엄격한 윤리적 기준이다. 기술이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어정쩡한 기준으로 생명을 죽일 수는 없다. 먹는 낙태약은 생명을 죽이는 약이다. 가장 안전한 엄마의 몸을 아기의 무덤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생명을 어디까지 보호할 것인가?
인간이 지켜야 할 최우선의 가치가 생명권이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 윤리적 기준을 마련하고, 윤리적 기준에 따라 최소한의 기준을 정한 것이 법이다. 윤리적 기준에 벗어난 법은 항상 인류에게 재앙으로 찾아왔다. 윤리는 운전 중 탑승자를 보호해 주는 안전벨트와 같은 것이고, 교통사고를 막아주는 횡단보도와 같은 것이다. 윤리를 지키는 일은 수고가 필요하고 때로 불편하기도 하지만 이 기준을 지킬 때 생명과 건강이 지켜진다.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임신을 종결하는 결정에는 여성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주장할 수도, 보호를 요청할 수도 없는 태아가 함께 존재한다. 생명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만의 권리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생명일수록 더욱 강력한 사회의 보호가 필요하다.
의학의 역사는 생명을 살리고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의 역사였다. 의사는 치료자(Healer)이지 생명을 죽이는 사람(Killer)이 아니다. 생명을 인위적으로 종결하는 행위와 생명을 살리기 위한 치료행위를 동일한 차원에서 바라볼 수는 없다.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약물을 통해 낙태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의학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술은 ‘할 수 있는 것’을 넓혀주지만, 윤리는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판단하게 한다. 따라서 약물낙태의 도입을 논의하면서 단순히 약의 편리성과 접근성만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 생명을 다루는 의료행위로서 과연 무엇이 정당한지, 여성의 건강과 태아의 생명을 어떻게 함께 보호할 것인지부터 논의해야 한다. 생명보호의 기준이 무너진 사회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힘없는 생명이다.
낙태를 쉽게 만드는 사회보다 낙태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생명보호를 주장한다고 해서 여성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여성이 낙태를 선택하게 되는 이유를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
경제적 어려움이 있다면 경제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주거가 불안하다면 주거를 지원해야 한다. 아이의 아버지가 책임을 회피한다면 부성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혼자 출산과 양육을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 임산부에게는 보호 출산과 사회적 지원체계를 제공해야 한다. 아이를 없애서 여성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어려움을 해결해서 아이의 생명을 살리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2024년 7월 시행된 보호출산제와 같은 제도는 바로 이러한 방향에서 의미가 있다. 보호 출산제 시행 700일 동안 700명 이상의 아이들이 생명을 지키고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은 생명을 살리는 제도가 실제로 생명을 살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낙태를 더 쉽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여성이 낙태하지 않아도 되도록 도울 것인가?” 이것이 국가가 고민해야 할 질문이다.
다시 생명의 안전벨트를 채우자
우리 사회는 지금 생명에 대한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 그 기준은 세 가지면 충분하다. 첫째, 모든 생명은 보호받아야 한다. 둘째, 낙태가 돈벌이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 생명을 지키려는 의료인이 자신의 양심과 신념에 반하는 의료행위를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 이 세 가지 원칙은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벨트다.
의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의학의 윤리는 더 엄격해져야 한다. 편리함이 윤리를 대신할 수 없다. 자기결정권이 다른 생명의 권리를 지워버릴 수는 없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을 의사의 양심에 떠넘겨서도 안 된다. 생명을 없애는 것이 가장 쉬운 해결책이 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진정으로 선진적인 사회는 낙태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 임신으로 어려움에 처한 여성이 낙태를 선택하지 않아도 되도록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사회다. 생명은 편리함보다 소중하다. 국가는 생명을 보호하는 울타리를 세워야 한다. 사회는 위기에 처한 여성에게 낙태라는 출구부터 제시할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길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바른 법과 제도는 생명을 억압하는 족쇄가 아니다. 생명을 지키는 안전벨트다.
이명진(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공동대표,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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