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순방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EU 이사회 본부에서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등과 회담을 갖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러시아-북한 간 불법적 군사협력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자 북한이 즉각 반발했다.
북한 외무성은 담화에서 한·EU 정상 간의 공동성명에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북러 간 군사협력을 규탄하는 내용이 들어간 점을 언급하며 한국과 EU가 “‘평화’의 가면을 내던졌다”라고 비난했다. “서울 위정자들이 그 무슨 말과 행동을 하든 그것은 우리에 대한 도전이며 한국을 철저한 적대국으로 다뤄나가려는 우리의 대적 원칙은 불변하다. 이는 우리 국가에 대한 명백한 주권침해, 엄중한 적대행위로서 지금껏 입 닳도록 떠들어 온 ‘체제존중’, ‘적대행위 불추구’와 같은 위장 간판을 스스로 내팽개친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북한 측 담화에서 특히 주목되는 건 한국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노출한 대목이다. “한국 집권자는 이번 대결 선언으로 조한(북남) 사이에 ‘평화공존’은 있을 수 없으며, 영원히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입증했다”라고 한 후 “앞으로 ‘평화선언’이니, ‘평화적인 두 국가론’이니 하는 기만극도 더 이상 벌릴 체면이 없어졌다”라고 비꼬았다. 이는 이재명 정부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화해 협력을 모색하면서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평화적 두 국가론’으로 바꿔 설정한 것에 대한 노골적인 공박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반발에 청와대가 해명에 나섰다. 청와대 관계자는 “공동성명에 담긴 내용은 그동안의 한국 정부 입장에서 더 나아간 것이 아니라 이미 국제사회에서 공표하고 약속해 온 입장을 정리한 것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긴 안목을 가지고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EU 정상 간에 공동성명에 담긴 북한 관련 내용은 새로운 게 아니라 그동안 일관되게 유지해온 내용을 재확인한 데 불과하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하지만 이란의 핵 보유 문제로 미국-이란 간 전쟁이 발발하면서 북한의 핵 보유 문제 또한 국제사회에 초미의 관심사다. 이런 시기에 한국과 유럽연합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할 수 없다”는 선언을 한 건 그 자체만으로도 국제사회에 던지는 의미가 있다.
북한은 “적대를 떠나 절대 존재 불가한 제1의 적대국”으로 대한민국을 지목할 만큼 이번 성명을 중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핵이 없으면 자신들의 존재마저 위태로워질 걸 알기 때문이다. 북한은 앞으로 정부의 대북 화해 정책에 별별 딴지를 걸고 나올 게 뻔하다. 정부가 대화 재개를 위해 노력하되 북한 ‘비핵화’ 원칙이 흔들리는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