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정부 고위 관계자가 러시아정교회가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기독교의 근본 원칙을 위반했다며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 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종교자유국(State Service for Freedom of Conscience) 수장인 빅토르 옐렌스키는 최근 프랑스 파리의 가톨릭 연구기관인 베르나르댕 대학(Collège des Bernardins)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고 영국 주간지 처치타임스(Church Times)가 보도했다.
옐렌스키는 전 세계 약 5억8천만 명의 기독교인을 대표하는 356개 교단이 가입한 제네바 소재 에큐메니컬 기구인 WCC를 향해 “러시아정교회의 활동은 기독교의 근본 원칙과 직접적으로 모순된다”며 회원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이 종교의 자유와 우크라이나의 적대 세력이며, 종교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우크라이나의 국가 정체성과 문화, 독립성을 파괴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러시아정교회 수장인 모스크바 총대주교 키릴에 대한 제재 논의도 “전적으로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옐렌스키는 키릴 총대주교가 러시아의 전쟁 목표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전쟁을 미화하거나 키릴이 직접 ‘전복 활동(subversive work)’이라고 표현한 활동을 서방 국가들에서 수행하는 성직자들 역시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발언은 약 일주일 전 러시아가 키이우와 하르키우, 드니프로, 자포리자 등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가해 최소 22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한 이후 나왔다.
우크라이나 교회·종교단체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해당 공격을 강력히 규탄했다. 협의회는 공격으로 주택과 교회, 학교, 병원, 상업시설 등이 파괴되거나 손상됐으며, 부활절 후 50일째를 기념하는 성령강림절(삼위일체 주일) 직후에 발생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협의회는 “이러한 유혈 범죄는 우크라이나 영토를 침략한 러시아군에 의해 자행되고 있으며, 범죄적 크렘린 체제의 핵심 구성원인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이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러시아정교회의 WCC 제명 요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2022년 2월부터 제기돼 왔다. 당시 전 세계 15개국의 성공회, 정교회, 가톨릭, 개신교 지도자들이 러시아정교회의 제명을 촉구하는 청원서에 서명했으며, 전 캔터베리 대주교인 로완 윌리엄스(Rowan Williams)도 이에 동참했다.
그러나 WCC 중앙위원회는 2022년 6월 회의에서 해당 요구를 거부했다. 위원회는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이 WCC의 틀 안에서 대화와 만남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점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 문제는 2024년 4월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WCC 총무인 제리 필레이 목사는 키릴 총대주교가 우크라이나 전역의 점령을 지지하고 이번 전쟁을 ‘서방에 대한 성전(holy war)’으로 규정한 성명을 지지한 것과 관련해 추가 설명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해당 성명에서 키릴 총대주교는 서방 세계가 “사탄주의에 빠졌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WCC 측은 이후 키릴 총대주교가 필레이 총무의 질의에 응답했는지 여부를 공개하지 않았다.
한편 필레이 총무는 최근 성명을 통해 “치명적인 폭력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국제법과 보편적 도덕 원칙에 기초한 지속 가능한 평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의 공격이 지난 5월 키이우 공습으로 24명이 사망한 사건에 이어 발생했으며, 러시아 측 역시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으로 러시아 점령 지역인 루한스크 인근 기숙사에서 학생 21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