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은 믿음, 들리지 않는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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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식 선교사(대한예수교장로회 (개혁총연) 캐나다 노회 파송, 세계 순회 의료복음 선교사)
주재식 선교사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향하던 그 이른 새벽, 성경은 누군가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침묵합니다. 바로 이삭의 어머니, 사라입니다. 인류 구원사의 가장 극적인 장면인 아브라함과 이삭의 여정 속에서, 아들을 낳고 길러낸 어머니의 자리는 철저히 비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 거룩한 침묵 앞에 멈추어 서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준엄한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서둘러 길을 떠납니다. 그 여정 속에 사라와의 상의나 설명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그 명령을 사라에게 전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사라에게 이삭은 단순한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하나님의 약속이자, 그녀의 생애가 응축된 기도의 열매였습니다. 그런 아들을 제단 위에 올리는 일은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깊은 단면을 마주합니다. 믿음은 때로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단독자’의 자리로 우리를 이끕니다. 아브라함의 침묵은 무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오직 홀로 감당해야 할 순종의 무게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라 역시 자신의 몫을 감당합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한 채 아들을 보내야 했고,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 앞에서 긴 기다림의 자리를 지켜야 했습니다.

이러한 ‘말하지 않은 믿음’은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도 반복됩니다. 우리는 때로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설명할 수 없는 결정을 마주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때때로 공동의 이해보다 먼저, 한 사람의 깊고 고독한 순종 속에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말씀으로 임하셨던 하나님이, 사라에게는 침묵으로 임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침묵은 부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라를 부르시는 또 다른 방식의 초대였습니다.

모리아 산 위에서 선포된 아브라함의 고백만이 믿음의 전부는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아들을 보내고 기다린 사라의 침묵 또한 그 제단 위에 함께 올려졌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말 없는 순종이 있었기에, 아브라함의 믿음은 비로소 온전해질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믿음도 다르지 않습니다. 말로 드러나는 화려한 고백뿐만 아니라,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묵묵히 기다리는 자리에서 우리의 신앙은 비로소 완성되어 갑니다.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 앞에서,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모리아 산을 향해 조용히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 침묵의 순종이야말로 가장 깊은 믿음의 언어일 것입니다.

#주재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