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바로 상담 과정에서 상담사가 상담을 요청해 온 내담자에게 ‘좋은’ 답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대로 상담에 오는 내담자들은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한 후 ‘어찌하면 좋을까?’ 질문하는 경우가 흔하다. 물론 상담의 여러 기능을 고려하고, 넓은 스펙트럼에서 상담의 기능을 정의할 때 상담 과정에서 상담사와의 대화를 통해 문제에 대한 좋은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내담자가 갖고 온 질문에 대해 상담사가 마치 현자(賢者)처럼 답을 제공하는 것은 상담의 본래 목표와는 거리가 있다. 상담은 기본적으로 내담자 자신 안에 있는, 내담자의 환경과 상황에 맞는 최적의 답을 ‘내담자 스스로 찾도록 돕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상담 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다고 할 때 그 관계는 상담사가 내담자의 문제에 대해 명쾌한 답을 제공하는 데에 의존하기보다, 내담자 스스로 자신을 더 깊이 통찰하도록 ‘좋은 질문’을 하는 상담사의 전문성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I(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 활용의 급증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간 상담사보다 A.I에게 자신의 문제를 호소하고 답을 찾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엄청난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인공지능이 내담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조언하는 기능을 하는 것을 본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내담자들이 즉각적이고 명료하게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경우를 본다. 그렇다. 이제 우리는 답을 찾는 데는 여러 채널을 보유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 답이 옳은가, 그른가의 통찰적 질문은 두 번째로 하더라도 적어도 문제가 있을 때 답을 찾기 위한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방법은 다양해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A.I의 답이 도움을 요청하는 이를 부정적인 결말로 이끄는 예도 보게 된다. 다시 말해 질문이 잘못 전달되는 경우 도식적인 정답을 이야기하는 A.I는 내담자 상황에 대한 깊은 공감 없이 내담자 스스로 파국으로 이끌도록 하는 예들이 점점 드러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중심을 지키고 도움받는 존재의 주체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수동적으로 답을 받아 적용하는 것이 아닌, 언제든지 즉각적 해답을 위한 접속이 가능한 현실에서 어떻게 현명한 조언을 선택적으로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이를 위해 이제 우리에게 더욱 요청되는 심리적 능력은 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적절한 질문을 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의 바다에서 나에게 가장 적합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질문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유능한 상담사가 강력한 질문을 통해 내담자의 통찰을 돕고, 내담자 스스로 가장 최적의 선택을 하도록 돕는 것처럼 말이다.
중독자를 도울 때 상담사가 중독자에게 하는 강력한 질문은 보통 다음의 세 가지로 알려져 있다. 첫째는 ‘네가 낫고자 하는가’라는 회복의 동기에 관한 질문이고 (요한복음 5장), 둘째는 ‘무엇 때문에 목이 마른가’라는 갈망의 원인에 대한 질문이며 (요한복음 4장), 셋째는 ‘당신은 인생에 무엇을 기대하는가’라는 삶의 의미 물음이 그것이다. 복음서의 예수님은 ‘강력한’ 질문을 통해 인생들의 내면에 깊은 동기와 결핍, 소망과 기대를 생각하도록 도우셨고, 결국 의존적이고 결핍된 인생들이 자립적이고 충만한 삶이 되도록 도우셨다. 많은 이들이 포기한 인생도 적절하고 희망을 돋우는 질문을 받을 때 살아나는 기적 같은 역사를 우리는 복음서에서 확인한다.
이곳저곳 온라인에서 서핑하면서 인생의 답을 찾으며 헤매는 시대, 우리에게 더욱 요구되는 것은 서핑하는 능력 이전에,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갈망 하는가’ 하는 내면의 본질적 동기에 대한 확인인 것이다.
#이경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