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 매우 선명한 기준을 제시한다. 바로 선지자 나단과 왕 다윗의 이야기다. 권력 앞에서 침묵하지 않았던 사람, 그리고 권력을 내려놓고 회개할 줄 알았던 사람. 이 두 인물은 진정한 리더십의 양면을 보여준다.
첫째, 진정한 리더십은 나단과 같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나단 선지자는 왕의 비위를 맞추는 궁정 예언자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뜻 앞에서 권력도, 체면도, 위험도 계산하지 않았다. 다윗이 밧세바 사건으로 죄를 지었을 때, 나단은 침묵하지 않았다. 그는 왕 앞에 서서 비유를 통해 죄를 드러내고, 결국 “당신이 그 사람이라”(사무엘하 12:7)라고 선언한다. 이것은 단순한 충언이 아니라 목숨을 건 진실의 선포였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말 잘하는 정치가, 말 잘하는 교수 말 잘하는 목사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참 드물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 이 시대의 비극이다. 권력에 기대어 침묵하거나, 높은자의 눈치를보고 대중의 눈치를 보며 말을 바꾸는 것은 쉽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의와 양심에 따라 말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나단과 같은 선지자는 언제나 소수이며, 이 시대는 그런 사람을 갈망한다.
둘째, 진정한 리더십은 다윗과 같은 회개의 용기를 필요로 한다.
더 놀라운 것은 나단의 왕에 대한 책망이 아니라 책망을 받은 다윗의 반응이다. 다윗은 비겁하게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았다. 또한 책임을 회피하지도 않았다. 그는 즉시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사무엘하 12:13)라고 고백한다. 왕으로서 체면을 지키려 했다면 얼마든지 권력을 동원해 나단을 제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왕좌의 권세보다 더 높으신 하나님을 두려워했다. 오늘날 지도자들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문제다. 책임을 회피하고, 말로 포장하고, 상대를 공격하며 자신을 정당화하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진정한 지도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때 더 크게 더 높게 서는 법이다. 회개는 약함이 아니라, 가장 높은 형태의 용기다.
셋째, 대한민국의 현실은 나단은 드물고, 다윗은 더 더욱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하는 ‘나단형 인물’도 부족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다윗형 지도자’의 부재다. 누군가가 잘못을 지적해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돌이키는 지도자가 드물다. 오히려 비판을 적으로 규정하고, 책임을 전가하며, 끝까지 버티는 모습이 반복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이나라 국민의 분노는 쌓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완벽한 지도자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의 정직함과 책임감을 요구한다.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지도자, 그리고 그 말이 진심인 지도자를 원한다. 그것이 무너질 때, 신뢰는 무너지고 공동체는 분열된다.
넷째, 종교 지도자의 책임으로서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더 나아가 종교 지도자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교회와 신앙 공동체는 세상의 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권력과 타협하거나, 불의 앞에서 침묵하거나, 특정 진영에 편승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것은 나단의 길이 아니라 궁정의 내시와 같은 예언자의 길이다.
종교 지도자는 사람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이다.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말해야 하고, 위험하더라도 정의를 외쳐야 한다. 그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이며, 선지자의 사명이다.
다섯째,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는 자가 있는가?
이사야 선지자가 들었던 하나님의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이 질문은 특정한 시대나 인물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정치·사회·종교 지도자, 그리고 모든 신앙인에게 주어진 질문이다.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침묵할 것인가, 아니면 말할 것인가. 변명할 것인가, 아니면 회개할 것인가. 안전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진리를 선택할 것인가?
결론적으로 용기는 두 방향으로 흐른다.
진정한 리더십의 용기는 두 방향으로 흐른다. 하나는 밖을 향한 용기, 즉 나단처럼 권력 앞에서 진실을 말하는 용기다. 다른 하나는 안을 향한 용기, 즉 다윗처럼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돌이키는 용기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건강한 공동체가 세워진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제도나 시스템 이전에 ‘사람’(정치·사회·종교 지도자)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진실을 용기있게 말할 줄 알고,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할 줄 아는 사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사람. 오늘도 하나님은 묻고 계신다.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이 질문 앞에 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정치·사회·종교 지도자들은 물론 우리 모두가 이렇게 대답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내가 또 주의 음성을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이사야 6:8)
양기성 교수(Ph.D., Hon. Th.D.)
서울신학대학교 교회행정학 특임교수
웨슬리언교회지도자협의회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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