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와 양어머니(하트셉수트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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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교회 김창환 목사(성령충만 영성계발원 원장)
김창환 목사

하트셉수트(Hatshepsut)는 고대 애굽 제18왕조의 5번째 파라오(바로)이다. 하트셉수트란 이름은 "가장 고귀한 숙녀"라는 의미이다. 애굽학 학자들은 하트셉수트의 치세를 역대 파라오의 치세 중에서도 매우 성공적이었던 시기 중 하나로 본다. 하트셉수트의 재위 기간은 약 21년이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 15:13-14).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대로 요셉이 애굽 총리 있으면서 야곱의 가족들은 애굽(고센)으로 이주하여 애굽에서는 천시 여기나 이스라엘인들은 천직으로 여기는 목동 일과 국가에 필요한 말이나 가축을 기르며 살게 된다.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출 1:6-8). 아시아계 기마민족인 힉소스 왕조가 애굽 왕조를 무너뜨리고 애굽을 지배하였다. 힉소스 왕조때부터 이스라엘 자손들은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다.

애굽의 해방자요 제18왕조의 창시자가 되는 아모스(아하메스)의 선왕 카모스는 힘을 모으고 애굽인들의 민족주의 열기에 힘입어서 힉소스와 싸움을 시작한다. 그러나 힉소스 왕조를 애굽에서 완전히 몰아내는데 성공한 것은 그의 아들 아모스였다. 아모스는 즉위 11년에 힉소스 정벌의 대군을 일으켜 즉위 16년에 이민족 힉소스의 통치를 종식시킨다. 아모스는 테베 즉 룩소르에 도읍을 정하고 신왕국 초대 파라오가 된다. 파라오 아모스 1세는 150년 동안의 힉소스 식민지 압제에서 해방시키고 애굽 국경에 최선을 다하며(B.C 1546-1526) 통치하면서 후계자는 그의 아들이 아닌 중년의 군인 출신의 권력자인 투트모세 1세(Thutmose 1세)을 세웠다.

투트모세 1세는 셈족 힉소스 왕조를 몰아내고 150년의 식민지를 해방시킨 아모세 1세의 딸 아모세 공주와 결혼함으로 모계혈통의 정통성으로 왕위에 오른다. 투트모세 1세에게는 두 아들(와지 모세, 아멘 모세)이 있었으나 아버지보다 먼저 죽고 3번째 아들이 후계자가 된다. 이 후계자도 이름을 투트모세 2세란 이름을 사용하였고 자기와 배다른 누이인 하트셉수트(Hatshepsut Queen)와 결혼을 한다. 그는 하트셉수트와 함께 14년 통치하였고 30대 초반에 세상을 뜨고, 몸이 약하였으나 생전에 시리아와 누비아 원정을 가서 큰 전공을 세웠다.

하트셉수트(B.C 1507-1458)에게는 아들은 없이 외동딸(네페루네)을 두었고 이 여왕이 모세의 양어머니다. 남편인 투트모세 2세는 하녀(이시스)와 사이에서 아들 하나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와 똑같은 이름을 지어 주었고(투트모세 3세), 이 하녀의 아들은 하트셉수트에게는 눈에 가시로서 9세에 왕위에 오르자(왕위 계승 때 나이가 14세였으므로), 여왕이 섭정에 들어갔었고, 그 후 21년간 모든 정권은 하트셉수트 손에 있었고 야심이 강한 여자였기에 투트모세 2세가 미리 후계자 지명까지 했던 것이다. 하트셉수트는 양어머니자 고모이지만 이 하녀에게서 낳은 투트모세 3세를 왕위 중심부에 올려 놀 생각이 없었다.

이때 모세도 비슷하게 자라게 되었서 투트모세 3세는 모세보다 몇 살 위인 것 같았다.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출 2:9-10). 그녀는 모세를 왕자로 키웠고 자기 권력의 중심까지 생각하면서 엄격하게 모세의 교육을 시켰었고 투트모세 3세의 그 자리에 모세를 올리려는 야심 있는 여자였다. 항상 투트모세 3세와는 알력이 있었다.

남편 투트모세 2세가 병약하여 일찍 죽자 아직 어린 투트모세 3세의 섭정을 시작했다가 곧 남장을 하고 스스로 왕으로 칭하는 대범함을 보여 결국 애굽 최초의 여성 파라오가 되었다.

고대 애굽에서는 파라오가 남자만 있지 않고 4명의 여성 파라오가 있었고, 우리에게 클레오파트라가 유명하지만 가장 권력을 행사한 여성 파라오는 모세의 양모인 '하트셉수트 여왕(재위 B.C 1479-1458)'이다. 이 이름의 뜻은 “지혜의 첨단” 또는 “지혜의 최고봉”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남장을 하고 가짜 수염도 귀에 달고 파라오의 복장인 마직 머릿수건, 짧은 킬트 치마를 입고 남성 파라오처럼 똑같은 행세를 했고 신왕국에 와서는 도굴을 피하기 위해 테베(현재 룩소) 근처에 도굴을 피해 묘를 암석 깊이 아무도 모르게 매장하고 그 대신 장엄한 장제전(데르 엘 바하리)을 짓고 의식을 행했다.

이렇게 천하를 호령할 것 같은 기세 등등한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 여왕이지만 모세가 누비아 지역 정벌을 끝내고 고센 지역을 순찰 중 이스라엘을 학대하는 고급 관리의 모습을 보고 그를 살해한 것을 투트모세 3세에게 전달되자, 바로 이일로 하트셉수트 여왕의 입지와 모든 기대가 무너지면서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미디안 광야로 피신을 가고(출 2:15) 여왕은 급격히 쇠약해지다가 중심부에서 뒤로 물러나며 모진 두통, 치통으로 이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 일 뒤 투트모세 3세는 승승장구하여 하트셉수트에 관계된 것이면 다 없애고 비문도 무너뜨렸다고 학자들에게 전해지며 이 야심 찬 하트셉수트 여왕은 충격으로 갑자기 사망했다고 한다. 투트모세 3세는 이후 정복 왕으로 애굽의 '나폴레옹'이란 별명이 붙여지고, 이 양어머니는 모세를 양육하는데 까지 마치고 향년 50세에 죽었다(B.C 1458).

죽음을 피하여 모세는 미디안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도망자가 된 모세를 시내산에서 직접 만나주셨다. 모세가 애굽으로 돌아와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여 낸 연대는 B.C 1445년 혹은 1446년이라고 한다. 이때의 파라오 투트모스 3세가 죽고 새롭게 파라오가 된 아메노피스 2세( B.C 1450-1426)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애굽의 권력투쟁에서 구하여 이스라엘의 해방자로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모세를 세우기 위하여 왕자로서 학문과 병법, 모든 견문 지식을 취하게 하여 준비하신 하나님은 하트셉수트를 도구로 쓰시고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준비하신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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