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은 첫걸음, 교회의 심장이 다시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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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금관 목사(사우스파사데나 평강교회)
송금관 목사(사우스파사데나 평강교회)

교회는 때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가 아니라 “누구의 부르심에 응답하는가”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합니다. 지난 21일, 우리 평강교회가 멕시코 로자리또로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첫 단기선교는 거리로만 보면 당일치기였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45년의 시간을 건너는 걸음이었습니다. 교회 역사 속에서 “성도들이 함께 국경을 넘어 선교지로 간 첫 발”이라는 사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신 은혜의 표지였다고 확신합니다.

선교를 앞두고 로마서 1:14–16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바울의 고백은 세 문장으로 끝나지만, 한 교회를 움직이는 능력은 거기 다 들어 있습니다. “나는 빚진 자다.” “그러므로 전하고 싶다.”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복음은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나를 살린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붙들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빚진 자가 됩니다. 빚진 자는 계산으로 살지 않습니다. 감사로 삽니다. 복음은 은혜로 우리를 살리고, 그 은혜는 우리를 흘려보내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우리가 이번 선교에서 배운 가장 큰 진리는 “선교는 거창함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순종으로 시작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롬 1:15)라는 바울의 말처럼, 완벽한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가능한 만큼의 순종’이 길을 엽니다. 새벽에 모여 출발하고, 국경을 건너고, 낯선 언어와 환경 속에서도 예배를 드리고, 아이들의 눈을 마주치며 손을 잡는 그 순간들 속에 하나님은 “교회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다시 가르치셨습니다.

이번 선교의 준비 과정에서도 하나님은 이미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샘물선교회 그레이스 임 선교사님의 브리핑을 듣는 자리에서, 우리의 마음은 선교지를 ‘먼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오늘’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물품을 모으고, 생각지 못한 통로로 후원이 이어지고, 기도가 모여 하나의 흐름이 되는 것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선교는 현장에 가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선교는 교회가 기도로 방향을 틀 때 이미 시작됩니다.

현지에서는 김용기 선교사님이 오랜 세월 지켜온 사역의 땅을 통해, 우리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로자리또 샘물교회는 조건이 넉넉하지 않습니다. 기반 시설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다음 세대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배를 놓치지 않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교회의 크기나 환경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신실함이 교회의 생명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현장에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은, 외부에서 온 우리가 “무언가 해 주는 것”으로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믿음이 우리를 살리고, 우리의 찬양이 그들을 격려하며, 성령께서 서로를 통해 한 몸의 신비를 보여주셨습니다.

이번 선교에서 교회의 ‘비전’이란 무엇인지 다시 배웠습니다. 비전은 새로운 프로젝트의 이름이 아닙니다. 비전은 더 멀리 가겠다는 야심이 아닙니다. 비전은 복음이 교회의 혈관을 타고 흘러가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안으로만 모이면 심장은 뛰어도 피가 돌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바깥으로 흘러갈 때, 교회는 다시 살아납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 1:16)입니다. 그 능력은 규모가 아니라 순종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을.

특별히 저는 96세 권사님의 헌신을 잊을 수 없습니다. 몸이 따라주지 않아 함께 가지 못하는 미안함을 담아, 성도들을 위한 후원을 내어주셨다는 이야기는 선교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선교는 ‘가는 사람’만의 사명이 아닙니다. 선교는 ‘보내는 사람’의 눈물과 기도로 완성됩니다. 한 걸음의 현장 뒤에는 수많은 무릎의 기도가 있습니다. 교회는 그렇게 하나가 됩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첫 선교를 했다”는 사실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첫걸음을 내디딘 교회가 어떤 교회로 계속 걸어갈 것인가”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 번의 이벤트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복음의 흐름으로 부르셨습니다. 로자리또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국경을 넘은 것은 발걸음만이 아니라, 우리의 시선이었고 우리의 기도의 반경이었고, 교회의 심장이었습니다.

우리가 다시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입니다.
주님, 할 수 있는 대로 순종하겠습니다.
주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고백이, 한 번의 감동으로 끝나지 않고 교회의 체질이 되게 하소서. 로자리또에서 보게 하신 주님의 얼굴을, 이제 LA 한복판에서도 보게 하소서. 우리의 다음 걸음도 주께서 여시고, 우리의 다음 만남도 주께서 준비하셔서, 결국 남는 고백이 “우리가 했다”가 아니라 “주님이 하셨다”만 남게 하소서. 아멘.

#송금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