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목회… 지식 독점의 종말과 본질로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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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셉 목사(기독교한국 대표, 평택사랑의교회 담임)
김요셉 목사

근대 이후 목회자의 권위는 정보 비대칭 구조 위에 세워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신학교에서 원어와 배경사를 배운 소수만이 성경을 전문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았고, 평신도는 구조적으로 이런 정보에서 배제되는 위치에 놓여 있었다.

그 결과, 목회자는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 “성경을 대신 읽어 주는 사람”이라는 인식 아래, 비교적 쉽게 권위를 부여받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생성형 AI와 대규모 데이터 플랫폼이 일상화된 지금, 이 비대칭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게 되었다. 성경 원문, 역사적 배경, 교부와 종교개혁자들의 논의, 다양한 전통의 주석과 설교 자료에 이르기까지, 상당 부분이 검색과 대화형 인터페이스를 통해 즉시 제공되는 환경이 형성되었다.

과거에는 평생을 바쳐야 닿을 수 있었던 텍스트와 지식이, 이제는 몇 초 안에 요약과 비교 형태로 제시된다. 이 상황은 지식 공급자로서의 목회자에게는 분명 위기로 체감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목회라는 소명이 무의미해졌다는 선언이 아니라, 지식의 양이 목회자의 정당성을 보장하던 시대가 끝났다는 신호이다.

정보의 독점이 사라지면, 목회자는 얼마나 많이 아는가로 자신을 증명할 수 없게 된다. 그 대신, 같은 정보를 가지고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보고, 성경적으로 해석하며, 실제 삶과 공동체 안에서 구현해 내는 능력으로 평가받게 된다. 지식의 축이 무너진 자리에서, 목회는 말씀을 실천하고 나누는 인격과 공동체의 문제로 다시 귀환하고 있다.

새로운 권위의 축: 해석의 프레임과 영적 능력

정보가 평준화될수록, 사람들은 정보 그 자체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 줄 의미와 방향을 찾게 된다. AI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리하며, 다양한 의견을 비교하는 데 탁월한 도구이다. 그러나 한 시대의 고통, 국가와 사회의 혼란, 개인의 상처와 죄의 현실을 성경의 큰 이야기 안에서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그 방향을 책임 있게 제시하는 역할은 여전히 인간 목회자에게 남아 있다. 이 지점에서 목회자의 새로운 권위의 축이 형성된다.

첫 번째 축은 해석의 프레임이다. 해석의 프레임은 흩어진 데이터를 성경적 세계관 안에 통합하고, 현재의 사건들을 하나님의 이야기 속에서 위치시키는 능력이다. AI는 가능한 관점들을 나열할 수 있지만, 무엇을 중심으로 보고 무엇을 주변으로 둘지, 무엇을 죄라 부르고 무엇을 구원이라 부를지, 어떤 종말적 소망 안에서 현재를 이해할지에 대한 최종 판단을 스스로 내리지 못한다.

목회자는 이 지점에서 단순한 정보 전달자가 아니라, 공동체가 세계를 바라보는 렌즈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개혁주의 신학의 틀 안에서는, 전적 타락과 언약, 하나님의 주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성령의 적용이라는 축이 세계를 이해하는 기본 구조가 된다. 정치적 혼란, 경제 위기, 기술 발전, 문화 트렌드와 같은 요소들을 이 틀 안에 배치할 때, 성도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소망, 분노와 기대의 방향이 달라진다.

같은 사건과 뉴스를 접하더라도, 어떤 신학적 프레임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해석과 반응이 완전히 달라진다. AI가 자료를 모아 줄 수는 있지만, 이 시대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책임 있는 해석 공동체를 세우는 일은 목회자의 몫이다. AI 시대의 목회자는 자료를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자료를 전혀 다른 눈으로 보게 하는 사람으로 권위를 얻는다.

두 번째 축은 성령의 은사이다. 성령의 은사는 인간이 조작하거나 기술이 복제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한다. 영분별, 지혜의 말씀, 예언, 신유, 능력 행함, 특별한 믿음, 위로와 권면 같은 은사들은, 신앙을 교리와 사상의 차원에 머물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로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삶의 현장에서 체험하게 하는 기능을 가진다.

현대인은 이미 “정답”을 많이 알고 있는 존재가 되었다. 검색과 요약, 다양한 비교 검토를 통해, 웬만한 질문은 정보 차원에서 해결하는 시대가 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지금 여기에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실재감은 오히려 약화되고 있다.

이 틈을 메우는 것이 성령의 은사이다. 병이 낫고, 죄와 중독의 사슬이 끊기고, 상한 감정이 회복되고, 설명할 수 없는 평강과 소망이 절망 한가운데에서 솟아오르는 사건들은, 단순한 심리적 효과나 자기암시로 환원되기 어려운 차원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건들이 반복되고 검증될 때, 복음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해석의 프레임이 방향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면, 은사는 그 방향이 허구가 아님을 구체적 사건으로 증명하는 역할을 한다. 프레임 없는 은사는 방향 감각을 잃기 쉽고, 은사 없는 프레임은 관념적 논의로 굳어지기 쉽다. AI 시대의 목회는, 이 두 가지를 함께 붙들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해석과 은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둘을 담아 내는 그릇인 인격이 비어 있거나 깨져 있다면, 초연결 사회에서 그 사람의 사역은 곧바로 불신과 거부의 대상이 된다.

과거에는 지역성과 폐쇄성이 목회자의 삶을 일정 부분 가려 주는 역할을 했다. 이제는 설교 영상, 글, 소셜 미디어, 교회 내 갈등과 재정 운용, 사적 대화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이 기록되고 공유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 환경에서 목회자의 진정한 자산은 시간이 지나면서 축적되는 신뢰이다. 이 신뢰는 단기적인 이미지 관리가 아니라, 성령의 열매와 신행일치 위에서 천천히, 그러나 견고하게 쌓이는 자본이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인격적 성품의 총체이다. 은사가 사역의 엔진이라면, 열매는 사역 전체에 풍기는 향기와 품격을 결정하는 요소이다.

성도들은 이제 설교의 수사와 지적 완성도 이상을 요구한다. 약자를 대하는 태도, 비판을 받아들이는 방식,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자세, 권력과 돈 앞에서 드러나는 선택, 가정과 교회 관계에서 나타나는 일관성 같은 요소들이, 설교 못지않게 중요한 메시지가 된다.

은사가 강력하더라도 성령의 열매가 결핍되어 있다면, 사람들은 점점 두려움과 불신을 느끼게 된다. 반대로 설교가 화려하지 않아도, 성령의 열매가 일상과 관계 속에서 묵묵히 드러나는 목회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신뢰를 얻게 된다.

AI는 설교문을 만들어 내고, 인격의 덕목을 나열하며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인간 관계와 시간,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면서 길러진 인격의 무게를 모방할 수는 없다. 이 지점에서 목회자의 인격은 대체 불가능한 영적 자산이 된다.

신행일치는 말과 행동, 고백과 실제 삶이 긴장 속에서도 궁극적으로 서로를 향해 수렴하는 상태이다. 완전무결한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와 연약함이 드러났을 때 빛 가운데로 나와 고백하고, 회개하고, 합당한 책임을 지는 태도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에 가장 강력한 경제적 자산 가운데 하나가 신뢰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도 가장 중요한 영적 자본은 목회자의 신뢰이다.

성도는 학위나 스펙보다, 목회자의 위기 대처 방식을 통해 그 사람의 복음 이해를 읽어 낸다. 고난을 만났을 때 도피하는지, 정직하게 버티는지, 유혹 앞에서 자기유익을 택하는지, 공동체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지 같은 선택들이, 설교보다 더 큰 설교가 된다.

AI는 교리를 요약하고 윤리를 설명할 수 있지만, 그 교리와 윤리가 한 사람의 실제 삶에서 어떻게 검증되고 구현되는지에 대해서는 개입할 수 없다. 신행일치는 오랜 시간과 반복되는 선택, 그리고 공동체의 기억 속에서만 형성되는 영역이다.

그러므로 AI 시대일수록, 목회자는 지식과 은사의 크기보다, 열매와 정직성의 두께로 평가받게 된다. 이 두께가 바로 영적 신뢰 자산이다.

AI 시대의 목회자는 두 길 사이에 서 있다. 하나의 길은 플랫폼에 종속된 고급 종교 프리랜서로 남는 길이다. 이 길을 택하면, 더 세련된 설교문, 더 매끄러운 콘텐츠, 더 효율적인 운영 방식을 통해 잠시 주목을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정보와 기술의 경쟁이 심화될수록, 인간 목회자는 더 빠르고 값싼 대체재와 비교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다른 길은 시대를 해석하고 능력을 나타내는 영적 지도자로 서는 길이다. 이 길 위에서 목회는, 해석의 프레임을 설계하는 신학적·지적 사역, 성령의 은사를 통해 하나님의 실재를 증언하는 능력 사역, 성령의 열매와 신행일치를 통해 신뢰 자산을 축적하는 삶의 본을 하나의 통합된 소명으로 받아들이는 작업이 된다.

이 전환 속에서 몰락하는 것은 목회 자체가 아니다. 삶이 뒷받침되지 않는 지식의 권위가 몰락할 뿐이다. 학위와 사역 경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목회자의 지위를 방어하려는 시도는, 구조적으로 이미 힘을 잃어 가고 있다.

이제 목회의 정당성은 성령의 권능, 그리스도의 형상이 빚어 낸 인격, 신행일치로 축적된 신뢰를 통해 입증되어야 한다. 교회의 구조와 제도 역시, 말 잘하는 사람을 중심에 세우는 방식에서, 신실하게 살아내는 사람을 세우는 방식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AI는 지식을 공급한다. 플랫폼은 정보를 분배한다. 그러나 생명은 관계와 영성에서 흐른다. 목회는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단절된 관계를 말씀과 성령 안에서 다시 잇는 사역이다.

그렇기에 AI 시대의 목회는, 인류 역사상 가장 기술적인 시대 한가운데서,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영적인 본질로 승부하는 자리이다. 정보의 시대가 깊어질수록, 살아 있는 해석과 검증된 인격, 그리고 성령의 실제적인 임재를 통해 영혼을 인도하는 목회자의 소명은 오히려 더 선명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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