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혐중’ 시위 징역형 처벌? 누구 위한 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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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국회의원이 특정 국가와 국민을 모욕하면 최대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법안을 발의해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격화되고 있는 ‘반중 시위’를 법으로 엄단하겠다는 뜻으로 비치는데 다른 나라를 모욕했다고 자국민을 최대 징역형으로 처벌하겠다는 의도가 과잉 입법 수준을 넘어 매우 위험한 발상이란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더불어 민주당 양부남 의원은 지난 4일 ‘공연히 특정 국가, 특정 국가의 국민, 특정 인종을 모욕한 자’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의 형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하는 등 기존 형법이 정한 형량을 대폭 높였다. 이 발의안에 민주당 이광희·신정훈·박정현·윤건영·이상식·박균택·허성무·서영교·권칠승 의원과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최혁진 무소속 의원이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양 의원은 법안 발의 제안 이유에 “최근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특정 국가, 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적 발언으로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각종 혐오 표현과 욕설이 난무하는 집회·시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며 최근 격화하고 있는 반중 시위를 겨냥했다. 일례로 “개천절 혐중 집회에서는 집회 참가자들이 ‘짱개, 북괴, 빨갱이는 대한민국에서 꺼져라’ 등 일명 ‘짱깨송’을 부르면서 각종 욕설과 비속어를 난발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하며 특정 국가와 특정 국민에 대한 모욕과 명예훼손을 일삼았다”고 지적했다.

최근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울 명동 중국대사관 인근에서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혐오 표현의 구호를 외치거나 중국 국기를 찢는 등 과격한 모습으로 사회 문제가 된 건 사실이다. 경주에서 열리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 같은 반중 시위가 날로 격화하자 경찰은 명동 일대에서의 반증 시위를 완전히 봉쇄하기도 했다.

시위대가 남의 나라 국기를 찢고 과격한 구호를 외치는 등 특정 국가에 대한 반대를 넘어 ‘혐오’로까지 번진 건 목적이 무엇이든 정당화될 수 없다. 특정 국가를 모욕하는 것이 일시적 감정 분풀이되는 될지언정 문제 해결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국민이 외국에서 나갔을 때 똑같은 대접을 받게 된다는 걸 가정하면 자제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시위가 도를 넘었다고 국민을 최대 징역형으로 처벌하겠다는 건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폭력을 동반한 시위의 경우 법으로 얼마든지 저지할 수 있는데도 처벌 수위가 약하다고 더 쎈 법을 만들겠다는 건 과잉입법의 소지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시도라고 본다.

발의된 개정안을 보면 ‘공연히 특정 국가, 특정 국가의 국민, 특정 인종을 모욕한 자’ 등에 대한 강력한 처벌 규정이 있다. 형법상 폭력 행위나 타인에게 위협을 가하는 행위가 없어도 구호나 내뱉은 말만 가지고 처벌하겠다는 건데 그야말로 위험한 발상이다. 헌법 제21조 1항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에 위배될 소지마저 다분하다.

시위대의 구호가 그렇게 문제가 된다면 진보 성향의 단체들이 미국 대통령 사진을 찢고 성조기를 불태우는 과격 반미시위는 왜 모른 체하나. 지난 문재인 정부 때 일본인을 ‘쪽바리’라고 지칭하고 조국 대통령 민정 수석 같은 고위 공직자는 ‘죽창가’ 운운하며 반일 혐오 감정을 부추기는데 앞장섰다. 그래놓고 중국을 겨냥한 시위만 콕 찍어 최대 징역형으로 다스리겠다고 하니 ‘내로남불’이란 말이 나오는 거다.

‘혐중’ 시위는 그릇된 행동이지만 시위자만을 무조건 탓할 수도 없다. 우리 국민의 의식 속에 중국과 중국인이 오만하고 무례한 모습으로 각인된 것이 원인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광저우 아시안게임 직후 공안이 억류하던 수천명의 탈북민을 강제로 북송했다. 국제사회가 한 목소리로 우려를 표하며 비인도적인 강제 북송만은 말아달라고 애타게 요청했지만 “내정간섭”이라고 일축하며 끝내 반인륜적인 북송을 단행했던 거다.

사드 배치를 빌미로 우리나라에 대한 정치 외교적 보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드와 관련해 우리 정부에 ‘3불(不) 1한(限)’ 즉 사드 추가 배치 불가,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불참, 한미일 군사 동맹 불가와 미군 배치 사드 운용 제한까지 넣는 외교적 압박을 가하고 있는 중국에게 민주당 정부가 굴종하는 듯한 자세로 일관한 것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반발 심리가 반중시위에 내포돼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부 보수 단체 회원들이 ‘혐중’ 시위를 벌이는 걸 좋게 받아들을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시위를 막겠다고 국민을 최대 징역형으로 엄벌하겠다는 국회의원의 생각을 지지할 국민도 많지 않다고 본다.

특정국을 대상으로 한 ‘혐오’ 시위는 그 대상이 어느 나라든 해당 국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 결국 우리 국격만 추락시킬 뿐이다. 이 문제에 대해 한교총 김종혁 대표회장도 “과거 혐한 시위를 보며 우리 국민이 상실과 절망감을 느꼈듯, ‘혐중’ 시위 역시 증오와 갈등이라는 큰 부작용을 낳고 있다”면서 “국내 체류 중인 중국인의 삶을 힘들게 할 뿐 아니라 국가 간 미래의 길을 위협하는 극단적 행동”의 자제를 당부한 바 있다.

다만 이 사안은 우리 사회가 아직 덜 성숙한 증거로 받아들이고 함께 노력하며 풀어가야 할 숙제라고 본다. 이걸 당장 틀어막겠다고 초헌법적인 발상의 규제법안을 내놓는 건 국민의 대표가 국민과 싸우려 드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갖는 기본권 중에 기본권이다. 국회가 이를 보호하는 편에 서야지 억압하는 데 골몰해서야 되겠는가. 더구나 특정 국가 편을 들거나 반대로 특정 국가에 불리하게 적용하는 법은 법 자체를 무력화할 뿐이다. 그런 법을 누가 지키려 하겠나.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법이 국민 위에 군림하도록 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