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의 어떠한 것보다 순전하다. 어떤 사람의 말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순결할 수는 없다. 아무리 뛰어난 지성을 가진 자라도 하나님의 지식을 능가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지혜가 모자라 그 누구에게 조언을 구할 일은 영원토록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때 반드시 승리하는 이유는 그 말씀이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시고,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고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다음 세대가 살아가는 세상과 그들이 날마다 접하는 교육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있는 그대로 사실이 아니라, 성경에 쓰인 내용이라도 지금 우리의 발전된 생각에 맞춰 새롭게 해석해야 할 고대 문서라는 불신앙을 심는다.
내 아이에게 누가 감히 '털 없는 원숭이'라고 부르는가?
“저는 오랫동안 동물과 인간을 연구해 온 동물학자입니다. 수십 년 전, 인류의 기원을 새롭게 바라본 책 <털 없는 원숭이>를 썼지요. 동화나 모험담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서 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진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 책이 가장 어린 '털 없는 원숭이'인 여러분에게 세상을 이해하는 첫 열쇠가 되기를 바랍니다.-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서대문자연사박물관 고시 제2025-36호, 포스터 글, 2025년 10월 31일 게시)
이 경악스러운 포스터의 홍보글을 보라!
진화론자들의 열심은 기원에 관해 물질적인 연구를 위한 가설 설정과 그 가능성을 탐구해 보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기필코 다음 세대들의 정체성을 진화의 관점으로 바꾸길 원하며 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길들여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진화론적 답을 수용하고 실천하기를 장려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교육을 통해, 문화를 통해 장려하고 권장하다가 법을 제정한다. 그것이 청년들, 청소년들에게 어느 정도 먹히면, 연령을 더 낮추고, 더 낮추고, 더 낮춰 우리 어린 자녀들에게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유포하며 세계에 대한 논리의 틀을 갖추기 전에 아예 아이들의 정서를 진화에 친화적이도록 만든다. 공적인 영역에서 이렇게 진화론을 정당한 이론으로, 과학적 사실로 배우고, 다양한 문화 행사로 진화론적 전시물들을 접하고, 영상과 책들을 통해 그 정보들이 강화되도록 세상은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은 우리 아이들을 어디로 끌고 가는가?
《털 없는 원숭이》 이 책은 1967년에 데즈몬드 모리스에 의해 쓰여졌다. 이 책이 대중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인간, 당신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영장류의 한 종일 뿐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형상이니 하는 주관적 오만함을 버리고 당신 속에 잠들어 있는 영장류의 본능대로 사십시오!' 이다. 진화론자들은 다윈의 유산을 얼마나 그럴듯하고 멋드러지게 확대 재생산하여 후대에게 강력하게 물려주는지 모른다. 서대문 자연사박물관은 이 책의 어린이판 출간을 기념하여 특별 강연을 열고, e알리미와 같은 학부모에게 학교 교육 정보를 알려주는 어플을 통해 행사를 홍보한다.
게다가 《어린이를 위한 털 없는 원숭이》를 강력 추천하는 사람은 우리나라 대표적 무신론 진화론자 최재천 교수이다. 그의 글이 지난 8년 동안 초등 4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었는데, 그 글의 내용은 경악을 금치 못할 수준이었다. 이미 우리의 5학년부터 고2까지의 자녀들은 그 글을 읽고 또 읽으며 문해력 향상을 위해 단어 찾기 해가면서 배웠다.
최재천 교수의 사상이 우리나라 전국민이 그것도 10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이들이 꼭 배워야 할 건전하고 보편적이며 교육적인 것 맞나? 최재천 교수의 글에 의하면, 바퀴벌레는 지구촌 주민으로 인간보다 한참 위의 조상이고, 우리가 바퀴벌레를 때려 잡으면 공경해야 할 어르신을 흠씬 두들겨 팬 것이 된다.
“인간은 지구의 막내예요. 최초의 생명체가 수십억 년에 걸쳐 다양하게 가지를 뻗으며 진화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생겨난 생물종일 뿐이지요?”(2015개정교육과정, 초등 4학년 국어 교과서 지문, 글: 최재천)
세상도, 동물도, 인간도 오직 진화적 관점으로만, 유물론적 관점으로만 보게하는 세뇌교육! 그 정도가 눈을 의심하게 할 정도로 노골적이고 심각하게 편향적이다. 진화론은 지금까지 단 하나의 단세포 생물의 출현도 설명하지 못하는 가설이다. 단세포는 커녕, 기능적 단백질 한 분자도 지적 존재의 인도 없이 무작위적인 화학반응으로 결합되지 않는다는 것이 현대 분자생물학이 드러내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진화 메커니즘의 부재와 증거적 취약성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진화를 신봉하는 자들의 이야기는 베스트셀러로, 교과서로, 공적 기관의 추천과 알림으로 마구 퍼날라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종국에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란 말인가? 창조를 지우면, 창조 질서를 따르지 않을 수 있다는 얄팍한 전술! 그들의 속내는 세상을 하나님의 법이 아닌 자신들이 옳다 여기는 대로 장악하고 싶은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을 세속적 인본주의로 마음껏 요리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선도 악이 되고, 악도 선이 된다. "나는 소년을 좋아했다"는 유발 하라리의 인터뷰 내용에는 그러한 진화론자들의 윤리적 의도가 다분히 드러난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동성애가 있다. 침팬지가 그 한 예다... 영장류의 섹스는 처음에 번식이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우정과 친밀감 구축, 긴장 완화를 위해서도 섹스한다.”(유발 하라리와 조선일보의 인터뷰에서.)
왜 우리 아이들을 '털없는 원숭이'라고 부르고 싶는지 보이는가? 그래야 침팬지나 오랑우탄 같이 살아도 된다는 윤리관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왜 침팬지를 보고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지 배워야 한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진화론이 사실이고, 그래서 인간이 우연히 출현한 생물종에 불과하면 그런 관점은 합당한 것이 된다. 결국 이 모든 시도는 인간 스스로가 '죄'가 무엇인지 정하고 싶은 의도에 닿아 있다. 선과 악을 스스로 정하려면, 선악과를 먹어도 죄가 아니어야 한다. 그러려면,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어야 한다. 그러려면,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로 지어진 것이 아니어야 한다. 모든 거짓말이 참이 되려면 창조가 아니라, 진화여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법이 무력화된다.
'바사르'를 키우는 문화 속에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창 6:2-3a)
김지찬 교수는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에서 '육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해 주고 있다. '육신'은 히브리어로 '바사르'인데, 살덩어리를 뜻한다. 성경에서 '바사르'의 용례는 인간의 몸, 부부가 한 몸이 되는 것, 성기 등으로 쓰였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절에서 '바사르'는 '동물'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이에 비추어 "육신이 됨"의 뜻은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 없이 오직 몸의 필요와 쾌락만을 추구하며, 특별히 성적 만족에 도취되어 있는 본능적 상태로서 "동물이 됨"으로 해석할 수 있다. 노아 시대 사람들은 동물과 다를 바가 없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 37-39)
노아의 때와 같이 지금 사람들이 '바사르'가 되어 동물적인 삶을 산다면, 필연적으로 인간은 스스로를 동물의 한 종으로 여길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유일하게 자기 정체성을 인식하고 자신을 성찰하며 도덕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바사르'라면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진화된 생물종이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그들 나름의 일관성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 시대는 끊임없이 우리 자녀들에게 '너는 바사르야. 너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야. 너는 수십억 년 진화의 산물에 불과해'라는 정체성을 심어주는 것이다. 무슨 뜻인가? 이 시대가 바로 노아의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모든 징조는 심판을 향해 가고 있으나 자신이 심판의 대상인 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눈과 귀를 가리는 교육과 문화로 뒤덮인 시대 한 복판에 우리 다음 세대가 자라고 있다.
진리만이 답이다.
진화론에는 첫 사람 아담이 없다. 그래서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도 필요하지 않게 된다. 진화론에서는 죽음이 죄의 삯이 아니고 '자연 현상'이다. 인류의 원죄로 말미암아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는데, 진화론에서는 인간이 존재하기 전 수십억 년 동안 이미 죽음과 멸종이 수없이 반복되었다. 진화론 세계에서 인간은 죄의 댓가를 치를 필요가 없으며, 따라서 죄값을 속량받는 '구속'도 필요하지 않다. 다만, 사람의 전통 즉, 인간 문화 유산의 계승만 있을 뿐이다. 성경은 이를 헛된 속임수라고 말씀한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 2:8)
서대문 자연사박물관 포스터에 있었던 글귀를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가 어디서 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진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 책이 가장 어린 '털 없는 원숭이'인 여러분에게 세상을 이해하는 첫 열쇠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들이 말하는 '진짜 이야기'를 따라가면 그리스도를 따라갈 수 없다. 이제 우리의 현명한 선택은 분명하다. 믿음의 가정과 우리 교회에 맡겨 주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을 더욱 선명하게 더욱 열정적으로 가르쳐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온전하게 세우는 것이다.
이 진화론 시대에 세상이 우리 자녀들을 '바사르'로 길들이고 있음을 인식하고, 믿음의 가정과 교회가 경성하여 올바른 창조신앙을 교육해야 한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생명'은 자연발생한 적이 없다. 생명은 언제나 생명으로부터만 나온다. 이는 미생물부터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 모든 생물과 인간까지 예외없이 적용되는 사실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부모로부터, 또는 모체로부터 나왔기에 첫 조상은 반드시 창조되었어야 한다. 다양한 생명체들의 첫 조상이 처음부터 완벽한 게놈을 갖춰 암수를 짝지어 번식 가능하도록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창조' 뿐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처음에 생명이신 '그리스도'께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았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3-4)
우리 자녀들이 오직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고백하고 믿고 따르는 삶을 살게 하려면, 망령된 진화론의 속임수로부터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보호해야 한다. 세상에 널려 있는 피조물들이 창조주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진리는 거짓으로 덮이지 않지만, 진리를 교육하지 않으면 가짜에게 영혼들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미혹이 많은 시대, 진리의 허리 띠를 띠고 믿음으로 이기는 세대를 키우는 그 시작이 창조신앙을 견고히 교육하는 것임을 명심하자. 그 기초 위에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행하신 놀라운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심어 온갖 교훈에 밀려 요동하지 않는 거룩한 교회를 세우자.
창조신앙과 성경적 세계관을 세우는 예스티칭연구소 노휘성 소장(02-388-1333, yesteachingl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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