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심리학의 전문적 식견이 필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언제나 세상에는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들이 스스로 나서서 불명예스러운 단체들과 어울리며, 특히 국제 문제와 관련해 매우 잘못된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는 현상이 존재해 왔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전문적 분석은 정치심리학자의 몫이겠지만, 그 단체들의 본질과 그 안에 연루된 기본적으로 선량한 사람들을 연구해 온 비전문가라 하더라도, 일정한 역사적 패턴을 감지하고 상식적 분석을 통해 어느 정도 합리적인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이 문제는 단지 이론적 관심사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바로 북한을 옹호하거나 극단적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미국인들이 왜 그러한 단체와 연루되는가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들 단체는 겉으로는 ‘고귀한 목적’과 ‘가치 있는 대의’를 내세우지만, 실제 목표와 입장은 결코 고결하지 않다.
1930년대 공산주의 선전의 실무자들은 이런 유형의 단체를 “순진한 자들의 클럽(Innocents’ Clubs)”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순진한 자들(innocents)’은 그러한 단체의 일반 회원 혹은 후원자들을 뜻하며, 실제 정책 방향을 세우고 그들을 교묘히 이용한 핵심 지도부와는 구별되었다.
이러한 이용은, 단체의 불순한 목적과 불쾌한 연계를 의도적으로 숨기고, 단체를 실제와 다르게 꾸며서 평범한 구성원들을 무지한 상태로 유지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예로, ‘평화를 위한 단체’를 자처하지만 실상은 미국의 외교정책을 훼손하거나, 미국에 적대적인 독재 정권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현상이 북한 관련 단체에만 해당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간의 분쟁과 관련해 미국 내에서 주목받는 좌파 성향 단체 ‘제이스트리트(J Street)’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제이스트리트는 자신들을 “친(親)이스라엘, 친평화(pro-Israel, pro-peace)” 단체라고 강하게 주장하며, 반(反)이스라엘 성향이 노골적인 극좌 단체 ‘유대인의 평화를 위한 목소리(Jewish Voice for Peace)’와는 다르다고 선을 긋는다.
그러나 그 단체가 취해온 입장, 협력해 온 단체들, 변호한 인물들과 무시한 사안들, 그리고 자금 출처를 살펴보면, 제이스트리트를 오히려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단체로 보는 것이 훨씬 정확하다. 이러한 평가는 이미 많은 주류 유대인 단체들과 미국 내 기독교계 친이스라엘 지도자들에 의해 공유되고 있다.
제이스트리트에 참여한 평범한 청년 졸업생 등은 대체로 단체의 표면적 목표를 그대로 믿으며, 그 내부에서 드러난 불쾌한 사실들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이른바 “순진한 자들(innocents)”은 제이스트리트가 과거 핵합의(JCPOA)를 지지하고 지금도 그 복귀를 요구하며, 국제홀로코스트추모연맹(IHRA)의 반유대주의 정의를 반대하고,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을 폄하했으며, 이스라엘 무기 판매를 막도록 의회에 압박한 사실을 잘 모른다.
또한 제이스트리트는 공식적으로는 이스라엘 보이콧(BDS)에 반대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보이콧을 지지하는 단체 및 테러리즘을 미화하는 극단주의 그룹들과 협력한다. 이런 이유로 제이스트리트는 주류 유대교 및 친이스라엘 기독교 단체들로부터 강하게 비판받으며 변두리 단체(fringe group)로 간주되고 있다.
더 나아가 제이스트리트는 이스라엘이 마르크스-레닌주의 테러단체인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 관련 위장단체를 단속한 것을 비판한 바 있으며, 일부 캠퍼스 활동가들은 악명 높은 PFLP 테러리스트를 찬양하는 티셔츠를 입었다는 의혹도 있다.
제이스트리트 캠퍼스 지부들은 친북·친테러·반유대주의 성향 단체 ‘팔레스타인 정의를 위한 학생회(SJP)’와 공동 행사를 열기도 했다. 현재 SJP는 테러단체와의 연계 혐의로 미 의회 조사 대상에 올라 있다. PFLP는 수십 년 동안 북한과 긴밀히 연계돼 왔으며, 북한은 PFLP 테러리스트를 훈련시키고 무기를 제공해 왔다. 실제로 1972년 일본 적군파가 이스라엘 로드공항에서 기독 순례자들을 학살했을 때, 그 작전에는 북한의 지원을 받은 PFLP가 관여했다.
이처럼 ‘순진한 자들의 클럽’은 명목상으로는 ‘평화’나 ‘인류애’ 같은 고귀한 목적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특정 이념 세력의 정치적 도구로 이용된 경우가 많았다. 198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 유행한 ‘핵 동결 운동(nuclear freeze movement)’이 대표적이다. 이 운동은 수많은 선량한 미국인과 유럽인을 끌어들였으나, 이후 소련의 대리선전사업으로 드러났다.
미 국무부 보고서, 의회조사, 소련 망명자와 전향자들의 증언, 그리고 냉전 종식 후 공개된 문서들은, 당시 일부 핵동결단체들이 소련의 자금과 지령을 받으며 미국과 서유럽의 안보를 해치는 목적으로 활동했음을 입증했다. 그 운동에 참여한 ‘이상주의자들’은 자신들이 크렘린의 꼭두각시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거나, 혹은 알면서도 외면했다.
이처럼 순진한 사람들이 그러한 단체에 끌리는 이유는 단지 정치적·도덕적 요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심리적 요인 또한 큰 영향을 미친다. 일부 사람들은 동조 압력(bandwagon effect)이나 또래 압력(peer pressure) 때문에 참여한다. 주변 친구들이나 동료들이 참여하니 자신도 뒤처지기 싫어서 합류하는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나 학계·연예계 인사들처럼 특정 가치가 ‘유행’으로 여겨지는 집단일수록 이런 경향은 강하다.
예컨대, 최근 세상을 떠난 배우 로버트 레드퍼드가 한때 친북 세력에 속아 한국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글을 썼던 사례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번 ‘순진한 자들의 클럽’에 들어가면, 구성원들은 외부의 비판적 정보나 사실을 외면하고 방어적으로 반응하며, 단체를 변호하게 된다. 나중에 단체의 실체를 깨닫고 환멸을 느끼더라도,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부끄러워 탈퇴를 망설인다.
현대판 ‘순진한 자들의 클럽’의 대표적인 예로는 ‘코리안 아메리칸 퍼블릭 액션 커미티(KAPAC, 재미한인공공정치위원회)’를 들 수 있다. 이름은 ‘공공정치위원회’지만, 실제로는 대한민국의 더불어민주당 및 이재명 대통령과 긴밀히 연계된 단체로 알려져 있다.
미 법무부는 KAPAC이 외국 정부의 대리인(Foreign Agent Registration Act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단체의 주요 활동은 미국 내 친북 세력 및 일부 의원들과 공조해, ‘한반도 평화법(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Act, HR 1841)’이라는 명목의 법안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북한 김정은 정권에 일방적인 양보를 제공하는 ‘선물목록(wish list)’에 가깝다. 북한의 비핵화나 인권 문제에 아무런 조건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수의 중도 및 보수 성향 한반도 전문가와 정책가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KAPAC의 일반 회원들 중에는 자신들이 친북 단체와 연계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알고도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단체의 실제 결정에 관여하지 못한 채, 그저 ‘한인 커뮤니티 평화운동’ 정도로 인식하고 활동한다. 또한 이 단체에 호의적인 정치인들이 행사에서 찬사를 보내고, 자신들이 그 정치인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끼며, ‘공공외교’라는 이름의 착각 속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점점 더 깊이 단체 활동에 몰입하면서, 지도부의 모든 입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느 순간 스스로도 모르게 단체의 정치적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순진한 자들”이 언젠가 단체의 실체를 깨닫고 떠날 가능성도 있다. 역사적으로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 예컨대 1939년~1941년 나치-소련 불가침 조약(몰로토프-리벤트로프 협정) 시기, 유럽과 미국의 많은 이상주의자들은 자신이 속한 ‘평화운동 단체’가 사실상 소련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전위조직임을 깨닫고 환멸을 느껴 탈퇴했다.
오늘날에도 그런 ‘각성’이 반복되기를, 즉 현대판 “순진한 자들의 클럽”의 평범한 구성원들이 언젠가 스스로 눈을 뜨기를 희망해본다. 그러나 인간의 심리적 장벽을 고려하면, 그것은 “희망에 불과한 희망(hope against hope)”일지도 모른다.
이 글은 NKINSIDER(https://www.nkinsider.org/)에 실린 로렌스 펙 박사의 기고글을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한 것입니다.
로렌스 펙(Lawrence Peck)은 25년 이상 미국 내 친북 성향 단체 및 극단주의 활동가들의 활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면밀히 추적해왔으며, 이 분야의 대표적인 미국 전문가 중 한 사람으로 미국과 한국 양국에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는 해당 주제에 대해 미국과 한국에서 강연과 집필 활동, 언론 인터뷰 등을 활발히 해왔습니다. 학력으로는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에서 정치학 학사 학위를, 로욜라 로스쿨(Loyola Law School of Los Angeles)에서 법학박사(Juris Doctor) 학위를 받았습니다. 또한 과거에는 한국에서 지적재산권 라이선싱 및 국제 비즈니스 개발 분야에서 국내 대기업들과 함께 일한 경력이 있습니다. 현재 그는 미국의 북한자유연합(North Korea Freedom Coalition)의 고문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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