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간첩·중국인 범죄자에게까지 조롱당하는 대한민국의 ‘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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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남파 간첩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일이 있었다. 온갖 범죄를 저지른 중국인이 정부의 출국명령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하는 등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간첩에 이어 중국인 범죄자까지 소송을 거는 비정상적인 일들이 21세기 대한민국 땅에서 벌어질지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북한 조선노동당 산하 대남공작기구인 정찰총국 소속의 염모 씨는 지난 2011년 중국 위조 여권으로 국내에 침투해 간첩 활동을 하다 2016년 공안 당국에 적발돼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2021년에 만기 출소한 후 주민등록증 발급을 못 받아 취업이나 의료보험 혜택을 못 받는다며 청와대에 민원을 넣었다.

국정원은 그에게 국적을 취득하려면 전향 의사를 표시하거나 가정법원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안내했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전향을 거부하고 법원에 주민등록 신청을 해 2023년 1월 정식으로 등록됐다. 이후 지난해 5월 경찰과 국정원 등이 사상 전향을 강요했다고 주장하며 돌연 국가를 상대로 1억원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 결과 1,2심 모두 염 씨에게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그가 스스로 대한민국 보호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고 심지어 북한으로 돌려 보내달라고 한 점을 들어 배상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고 봤다.

사실 북한이 직파한 간첩에게 불과 징역 5년을 선고한 이 사건은 당시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로 사회적 논란이 컸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들이 염 씨 사건을 변호하며 수년간 재판을 질질 끄는 등 이해하기 힘든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더니 이제 간첩이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하는 황당한 사건까지 벌어진 거다. 법이 대한민국에 위해를 가한 북한 남파 간첩조차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니 도리어 간첩이 대한민국을 만만히 보고 되려 능멸하려 달려드는 게 아니겠나.

범죄를 저지른 중국인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건도 있었다. 한 중국인 남성은 지난 2008년 단기 비자로 국내에 입국한 뒤 3년 10개월 동안 불법 체류하며 범인도피죄와 음주운전, 근로기준법 위반 등 온갖 범죄를 저질렀다. 그런 그에게 당국이 출국명령을 내리자 부당하다며 소승을 제기했다.

법원은 소송을 기각했다. 이 중국인이 한 차례 출국명령을 받았음에도 이를 어기고 계속해서 범죄 행위를 되풀이해 온 걸 문제로 지적했다. 재판부의 기각 판결에도 불구하고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이 어떻게 당당하게 국내에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지 그 허술한 외국인 관리 시스템의 문제점과 함께 법의 구멍이 여실히 드러났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 중국인 두 명이 무면허 상태로 치과 시술을 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불법체류 중국인이 전 여자친구를 주먹 등으로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도 있었다. 최근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 특히 중국인 범죄는 음주운전, 주거침입, 절도, 마약 범죄에서 살인까지 그 종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2024년 기준 국내 불법체류자는 약 39만 명으로 체류 외국인의 15%를 차지한다. 이들 중 외국인 범죄 피의자는 3만 954명으로 해마다 5% 넘게 증가하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현장에서 범인으로 체포되고도 출국 조치가 뒤따르지 않거나, 구속 이후에도 절차가 지연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그러니 이 중국인 범죄자처럼 당국의 출국명령을 무시한 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가능하게 된 거다.

갈수록 불법체류자와 외국인 범죄자가 늘어나는 데도 이를 제재하거나 관리할 명확한 기준과 절차조차 불비하다. 미국의 경우 불법체류자나 범죄 전과자에 대해 변명의 여지 없이 강제 추방 조치를 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주로 법원의 재량에 맞기는 실정이다 보니 불법체류 범죄자들까지 한국을 만만히 보고 감히 법적 대응을 할 맘을 먹고 있는 거다.

북한 남파 간첩이 복역하고 나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사건은 이전에 듣도 보도 못한 사건이다. 남파 간첩이 자신이 저지른 간첩 이적행위에 대해 당당하게 대한민국을 상대로 배상을 요구하는 세상이니 간첩죄, 국가보안법이 무슨 소용이냐는 말이 나오는 거다.

국내에 불법으로 들어와 활개 치는 중국인 등 외국인 범죄자들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한국을 우습게 봤으면 출국명령도 깡그리 무시하고 소송으로 맞붙을 생각을 하겠나. 미국과 중국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고 돼 있다. 그러나 법이 정말 만인에게 공평하게 적용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부자와 가난한 이에게 법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었다 적용되는 걸 빗대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이 나왔듯이 일반 국민이 저지른 범죄엔 법을 추상같이 적용하면서 정치인과 고위 관료, 재벌 등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에겐 그 법이 관용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어쩌다 대한민국이 간첩과 중국인 범죄자까지 적반하장으로 소송 거는 세상이 된 걸까. 이를 단순히 시스템의 문제만으로 볼 순 없을 것이다. 결국, 법의 잣대가 그 대상에 따라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고 힘을 가졌느냐 못 가졌느냐, 혹은 정치적 진영 논리에 따라 달라지는 비상식이 만연한 세상이 된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이것이 오늘 간첩과 중국인 범죄자에게까지 조롱당하는 대한민국 ’법치‘의 엄연한 현주소임을 부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