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수십만 젊은 청년이 왜 군대 막사에 앉아 세월을 보내나”라고 말했다. 지난 2일 공개된 모 유튜브에서 국방의 AI화를 주장하며 한 말인데 일각에선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국방 표플리즘’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 대표는 인공지능 AI와 국방력에 대해 언급하면서 “젊은 청년들이 군대 막사에서 세월을 보내는 것이 과연 진정한 국방력이고, 전투력일까”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드론, 로봇 등 첨단 무기가 사용되는 것에 비해 우리 군의 군사 밀도가 높은 점을 꼬집은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드론과 로봇 등 AI 기반의 첨단 무기가 사용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드론이 수백 킬로 밖에 떨어진 적진의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하고, 드론 카메라에 포착된 부상 병사에게 식수와 식량을 떨구는 등은 과거 전장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이는 재래식 무기로 화력을 쏟아내던 과거의 전쟁 방식이 현대전에선 더는 통하지 않게 됐다는 걸 의미한다.
이 대표는 “드론, 로봇, 무인 기술로 가야 국방력이 진짜 살아난다”라고도 했다. 단순히 군인 수를 줄이자는 게 아니라 AI로 생산성을 높여 국방 산업에도 기회를 만들자는 얘기로 해석될 수도 있다. 또 “AI로 늘어난 생산성을 국민이 나누면 세금 걱정도 덜 수 있다”라는 말도 했다.
말은 거창하다. 그런데 과연 현실성이 있을까. AI 관련 첨단 무기들은 어디까지나 부족한 병력을 보완하는 대체 수단이지 병력 그 자체가 될 순 없다. 전쟁의 승패는 그런 첨단 무기들을 다룰 뿐만 아니라 전장에서 직접 적군에 맞서는 병력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저출산 국가 중 하나인 우리나라는 인구 감소로 군인 수가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한때 60만 대군을 자랑하던 국군이 지금은 거의 반 토막이 된 현실이다. 이에 비해 북한 인민군은 110만 명을 헤아리고 있다. 인구수는 우리의 절반인데 군인은 두 배가 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거다.
국방력을 단순히 병사 숫자로 국한할 순 없을 것이다. 현재 우리 군 일반 병사의 복무 기간은 18개월이다. 36개월 만기 제대하던 데서 꾸준히 단축돼 지금은 그 절반인 1년 6개월 복무하면 군복을 벗고 제대한다. 기초 전술을 익히기도 전에 전역하는 우리 군과 비교할 때 북한군은 10년 복무가 기본인 데다 핵무기까지 보유하고 있다.
병사 수의 감소가 저출산 영향 때문이라 하더라도 복무 단축은 다른 문제다. 남북 간의 충돌과 전쟁 발발 가능성이 작아서가 아니라 정치권이 선거 때마다 표를 얻기 위해 경쟁적으로 이슈화한 표플리즘의 결과물이란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어수선한 탄핵 정국에서 조기 대선의 가능성이 점쳐지자 야당의 유력 대선 주자가 또다시 국방 관련 이슈를 들고나온 게 문제라는 거다.
그런데 다른 건 다 차지하더라도 드론 관련 국방 예산을 90% 이상 깎은 민주당 대표로서 과연 할 말인가 싶다. 지난 2024년 12월 국회 예결위에서 국방 예산 3409억 원을 감액한 게 민주당이다. 이중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게 드론 관련 예산이다.
정부는 지난해 북한의 드론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접경지역 드론 체계’ 예산으로 100억 원을 책정했다. 그런데 민주당이 99억 원 넘게 삭감했다. 사실상 드론 관련 국방 예산을 전액 삭감한 야당 대표가 갑자기 “드론 전쟁 시대” 운운하며 ‘AI 국방’을 외치고 있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거다.
이 대표는 청년 시절 공장에서 일하다 골절 후유증으로 산재 장애 판정을 받아 병역 면제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본인은 군 면제를 받았으면서 젊은이들이 군 막사에서 허송 세월을 보낸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도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이 대표의 일련의 발언들은 20대 남성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탄핵 정국에서 MZ세대가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쪽으로 급격히 쏠리는 현상이 나타나자 중도 확장을 꾀하는 과정에서 유인책으로 꺼내든 카드일 수 있다.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부쩍 중도 확장에 공을 많이 들이는 모습이다. ‘전 국민 25만 원 지급’ 등 전형적인 좌클릭 정책에 몰두하다 갑자기 “분배보다 성장”을 외치며 우클릭을 시도하고, 또 얼마 안 가 다시 ‘기본사회’와 ‘주 4일제’를 꺼내 드는 등 그야말로 아무 말이나 마구 던지는 식이다.
이 대표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반드시 ‘차별금지법’을 시행하고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에 성 소수자가 30%가 되도록 하겠다고 한 사람이다. 그래놓고 지난해 10월 2일 한교총을 방문한 자리에선 ‘동성혼 합법화’와 ‘차별금지법’에 대해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시급하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라며 둘러대는 모습을 보였다.
입법부를 장악한 야당 대표이자 그 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라면 그 위치에 걸맞은 무게감과 신뢰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본인이 한 말을 본인이 손바닥 뒤집듯 하는 데 무슨 말인들 그 진의가 국민 가슴에 와닿겠나.
국방의 AI화와 관련한 이번 논란은 이 대표 말의 본뜻이 와전돼 일어났을 수도 있다. 다만 AI로 무장한 세계 최첨단 무기를 갖춘 미군이 왜 130만이 넘는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답이 나와 있다. 정치인, 더구나 대권을 노리는 위치에 있다면 응당 신성한 ‘국방의 의무’에 대한 인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최소한 지구상에서 가장 호전적인 집단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군대에 간 젊은이들의 사기를 꺾지는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