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백 선교사, 무사귀환 위해 기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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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5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러시아 당국에 간첩 혐의로 체포된 한국인이 백광순 선교사(53)로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는 한국을 직접 겨냥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백 선교사는 블라디보스토크 현지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의약품, 의류 등 생필품을 지원하는 등 인권 관련 활동을 전개해 왔다. 현지에 파견된 북한 벌목공 등 6명의 탈북을 돕는 등 북한주민 구출 활동에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선교사 신분의 한국인이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는 사실 자체가 의문투성이다. 백 선교사는 중국이 동북 3성 일대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외국인을 대거 추방할 때 러시아로 건너가 북한 노동자를 돕는 인도적 활동을 벌여온 인물로 알려졌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일급기밀 정보를 외국 정보기관에 넘긴 혐의로 체포됐다니 의아할 뿐이다.

러시아가 한국인을 간첩혐의로 체포 구금한 건 양국 수교 이후 최초의 일이다. 러-우 전쟁 발발 이후 한-러 관계가 악화돼 온 점에서 시사해 주는 바가 있다. 외신은 러시아가 백 선교사의 인권 측면의 선교활동에 간첩 혐의를 씌워 체포 구금한 것이 한국과 정치 외교적 협상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의도로 해석하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중에 북한에 무기 지원을 요청하는 등 두드러진 친북 행보를 펼쳐왔다. 지난해 9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러시아 극동 아무르주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한 후 한동안 소원했던 두 나라 관계가 복원됐다는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북-러 정상회담 이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북한제 포탄 등 재래식 무기를 사용해 왔고, 러시아는 그 보답으로 북한에 미사일 기술을 이전했을 것이란 설이 이미 파다하다.

러시아가 한국인 선교사를 간첩 혐의로 체포했다는 소식에 국제사회는 연일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이번 사건이 두 나라가 수교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어서 아무래도 러-우 전쟁 발발 이후 한국이 미국 등 서방 편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것 때문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BBC와 알자지라 등 외신들도 한국과 러시아의 달라진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과 멀어진 러시아가 북한과 밀착 관계가 되면서 북한이 눈에 가시처럼 여겨온 한국의 탈북민 선교가 타깃이 됐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러시아 당국이 백 선교사를 체포한 직접적인 동기는 외국에 국가 기밀 정보를 넘겨줬다는 이른바 ‘간첩’ 혐의다. 그런데 이런 사실은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이 보도한 것에 의존한 것일 뿐 정확한 내용의 근거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러시아 당국이 사건 자료를 일급기밀로 분류하고 러시아 법원이 백 선교사의 구금을 6월 15일까지 연장한 것도 석연치 않다.

러시아는 종종 서방의 외교관, 언론인 등을 간첩 혐의로 체포해 협상을 구실로 국면 전환을 꾀해 왔다. 지난해에는 미국 국적의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를 간첩 협의로 기소했다. 또 미국 여자프로농구(WNBA) 스타 브리트니 그라이너를 체포한 후 교환하는 등 외국인을 협상카드로 사용한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사건도 정치적 의도가 개입됐을 가능성이 짙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미국 등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타깃이 됐으리라는 건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교계는 백 선교사의 전격 체포 소식에 충격을 받은 모습으로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김정은의 반인권 강압에 해외로 떠돌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도와온 선교사를 체포 구금했다는 사실이 놀랍거니와 그에게 간첩 혐의를 뒤집어 씌웠다는 자체가 앞으로 탈북민 지원활동을 대대적으로 단속하겠다는 경고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지는지라 앞으로 제2, 제3의 사건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지난달 말 모스크바로 이송돼 현재 레포르토브 구치소에 수감된 백 선교사는 러시아 법원이 어떤 혐의를 적용하느냐에 따라 중형이 내려질 가능성도 예상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북한과 무기 거래를 할 정도로 과거의 밀월 관계를 복원한 러시아가 인도적 활동을 해 온 한국인 선교사를 체포한 걸 단순한 간첩 사건으로 보긴 어렵다. 인권 차원의 통상적인 선교 활동에 간첩 혐의를 씌웠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와 긴밀하게 공조해 외교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선교사의 신변 안전과 조기 석방이다. 한국교회언론회는 14일 발표한 논평에서 “러시아가 인도적 차원에서 궁핍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활동을 하는 한국인 선교사를 붙잡아 억류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며 “러시아는 주권국가로서, 북한 당국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신속히 한국 선교사를 돌려보내기 바란다”고 했다.

정부는 백 선교사에게 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러시아의 인질 외교에 치밀하게 대처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세계교회를 통해 러시아정교회 등을 외교채널에 동원하는 방법으로 이번 사태가 조기에 원만히 매듭지어지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한국교회 성도들이 백 선교사의 무사귀환을 위해 마음을 모아 기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