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복기’(復碁)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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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욱 교수(아신대 설교학)
신성욱 교수

최근 일본이 자랑하는 14세 ‘천재 바둑 소녀’ 나카무라 스미레(仲邑菫) 3단이 한국에서의 객원기사 신청안을 제출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프로기사협회는 지난 9월 13일, 대의원 회의를 열고 나카무라 3단의 객원기사 신청안을 통과시켰다고 했다. 이에 따라 스미레는 내년부터 한국 프로기사들과 본격적인 실력을 겨룰 전망이다.

나 역시 중학교 시절 바둑에 취미를 들인 때가 있었다. 바둑을 배우거나 오래 두진 않았지만, 당시 일본에서 활약하던 대한민국 국적의 조치훈 명인을 많이 좋아했다. 조 명인은 일본 바둑계에 전설로 불릴 만한 족적을 남긴 위대한 기사이자 살아 있는 전설로 그가 이룬 업적들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최고의 명인들이 세기적인 대국을 할 때면 한 수 한 수 친절하게 해설해주는 전문해설위원들의 TV 해설을 즐겨 듣곤 했다.

바둑 고수들의 실력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신기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대국 후 그 자리에 앉아서 바둑알을 처음부터 다시 하나씩 순서대로 놓는 것 말이다. 궁금한 점은 그들이 왜 그리 하는지와 어떻게 몇 시간에 걸쳐서 둔 바둑알을 순서대로 정확하게 놓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대국이 끝나고 승자와 패자가 마주 앉아서 바둑알을 다시 두는 것을 ‘복기’(復碁)라고 한다.

집에 가서 각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바로 복기를 한다. 다시 말하면, 복기는 방금 두었던 판을 한 수씩 주고받으며 그 판을 재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뭘까? 이긴 쪽은 그나마 괜찮겠지만 패배한 쪽은 죽어도 하고 싶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왜 그들이 그렇게 하는 걸까? 그 이유를 알고 보니 바둑은 머리싸움이기도 하지만 생의 지혜도 깨우쳐 주는 소중한 게임이었다.

복기를 하는 이유는 승자와 패자 양쪽이 서로 번갈아 한 수씩 두면서 어떤 시점에서 승부가 갈렸는지를 공부하는 것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복기가 어려울 수 있다. 나처럼 궁금한 어떤 이가 프로기사에게 어떻게 순서대로 복기를 할 수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프로기사들은 한 수 한 수를 모두 의미를 두고 두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했다. 깊은 고심을 한 후에 두었기에 첫 수만 기억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생각난다는 것이다.

프로기사 조훈현 9단의 회고록에 의하면, 복기는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패자는 경기에 지고 나서 비참하고 우울한데, 한 수 한 수 복기하면서 패배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니 심적 부담이 무척 크다고 한다. 그러나 그 아픔을 견디고 복기를 하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다시는 그런 패착을 하지 않도록 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고 한다.

반대로 승리한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복기를 하면 자신이 잘해서라기보다는 상대방의 실수로 판세가 뒤집힌 경우가 있는 것을 알게 해주고, 또 자신의 실수로 위기의 순간을 맞게 된 경우도 여러 차례 있었음을 기억하게 해준다고 한다. 이로 인해 겸손과 상대방 존중의 자세를 배우면서 다음 대국을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알고 보니 바둑은 참 매력적인 게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복기가 필요한 것이 바둑만이 아님을 깨닫는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복기가 필요함을 절감한다. 누구라도 실수를 할 수 있다. 목회든 설교든, 대인관계에서든 대신관계에서든 실수와 허물이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실수나 허물을 인정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자세이다. 자신의 약점을 인정을 해야만 수정이 가능하다. 인정을 했다면 어디에 자신의 약점이 있는 것인지를 반드시 복기해야 수정과 성장이 가능하다.

물론 매사에 지금 잘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도 마찬가지다. 잘 나가는 동안 혹 실수할 위기 상황은 없었는지, 자만에 빠져서 자신의 약점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 깨우치기 위해 영적인 복기는 꼭 필요하다.

‘복기’, 이것은 바둑기사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변화'와 '성장'을 기대하는 신앙인들이나 목회자들이라면 모두가 반드시 시도해야 할 필수요소임을 기억하고 살자.

#신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