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훈의 성서화 탐구]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 아가서의 비밀

성경의 궁금증 성서화로 풀기(10)
윌리엄 러셀 프린트 경ㅣ<솔로몬의 노래> Sir. Wm. Russell Flint ㅣ1909

한창 사춘기 때에 왕복 50리 길을 걸어서 중학교에 다녔다. 누구나 한 번 쯤 인생이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 의문을 가진다지만 나는 바로 그 시기가 좀 빨리 온 것 같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집안 내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경 읽기에 깊이 빠지면서 잡념을 뿌리치고 있었다.

그 해 겨울도 가고 봄이 되었을 무렵에 구약의 아름다운 시문학인 시편, 잠언과 전도서를 읽고 나서 아가(雅歌)를 접하게 되었다. 나는 그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아가서는 노래 중의 노래(Song of Songs)로서 솔로몬왕의 연가(戀歌)이다. 아름다운 술람미 여인을 사랑하여 청혼하고 결혼하는 과정의 기쁨과 아픔을 묘사한 한 편의 뮤지컬이다.

솔로몬왕은 많은 왕후와 비빈이 있었지만 진정한 사랑은 포도원에서 일하느라 얼굴이 검게 탄 술람미 여인 하나뿐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 여인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녀의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어린 사슴 두 마리(쌍태) 같이 신비하고(아4:5) 종려나무 열매와 포도송이 같이 달며 (아7:8) 다윗이 세운 망대같이 평안하다(아8:10)고 하고 있다.

구절마다 한편의 시를 읽는 듯이 아름답고 성경구절이라는 사실을 다 잊어버릴 만큼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였다. 성경에 이런 뜨거운 대화들도 있구나! 참 놀라왔다.

나중에 교회사 관련 책을 읽으면서 아가서가 일찍부터 당당하게 정경으로 공인된 과정을 알게 되면서 또 한 번 반전의 놀라움을 맛보기도 하였다.

AD 550년경의 초기 성경번역본인 탈굼(Targum)역에서는 아가서의 솔로몬은 하나님으로 비유되고 술람미 여자는 이스라엘을 비유한다고 하였다. 히브리 경전인 미슈나(Mishina)에서는 '아가서는 지극히 거룩하다'고 하여 유대인 회당에서는 매년 유월절에 아가서를 봉독하여 왔다.

기독교 계통의 교부인 제롬(Jerome. 331-421)은 아가서를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혹은 인간 영혼과의 연합에 대한 혼가(婚歌)'라고 하였다. 어거스틴(Augustine 354-430)은 아가서를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거룩한 사랑을 묘사한 노래'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견해들은 지금도 전 세계 교회가 존중하고 있다.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움과 순결성과 관련하여 성서화에서는 중세 시절부터 성모 마리아의 성품과 동일 시 하기도 한다.

필사본 '인간구원의 거울'장인ㅣ<마리아의 상징: 다윗의 망대>ㅣ1450년경 , from 'Speculum humanae salvationis'   ©소장(所藏) : Museum Meermanno Westreenianum,The Hague

중세 1450년경의 유명한 채색 필사본으로 신구약 성경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인간 구원의 거울> (Speculum Humanae Salvations )에는 '성모마리아의 심볼인 다윗의 망대'라는 그림이 있다. 이 삽화는 아가서의 술람미 여인이 '내 유방은 다윗이 세운 망대와 같으니 나는 그가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구나'하는 구절(아8:10)을 그린 것이다. 망대의 지붕모형을 잘 살펴보면 웃음이 나온다.

또한 독일의 낭만주의 화가인 프란츠 포어(Franz Pforr 1788-1812)는 '술람미와 성모 마리아'란 그림을 즐겨 그렸다. 술람미 여인의 신비한 아름다움과 순결성이 바로 성모 마리아의 심볼이라는 것이다.

프란츠 포어ㅣ<술람미 여자와 성모마리아>ㅣ1810-11 34x32cm, Franz Pforr, , oil on panel   ©개인소장

술람미 여인을 성모 마리아의 상징으로 그린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을 풀어헤치고 아기예수에게 젖을 먹이는 슬픈 기색의 젖먹이는 마리아(Maria Lactans)도상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1445?∼1510)의 젖먹이는 마리아의 배경은 울타리로 둘러싸인 후원이 보인다. 이 담장은 술람미 여인이 살던 은밀하고 순결성이 보장된 울타리 두른 동산(아4:12)이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는 것을 주제로 한 아가서에서 사랑의 힘과 가치에 대한 결론은 짧지만 엄격하다.

이쯤 되면 아가서를 읽으며 두근두근 하던 가슴이 엄숙하게 착 가라앉는 걸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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