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세습방지법’ 일단 봉합에도 존폐 기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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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한 달간 일제히 열렸던 장로교단 총회가 마무리됐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3년 만에 ‘거리두기’ 등의 제한 없이 치러진 이번 총회는 교단 임원 선거뿐 아니라 다시 정책 총회로 안착할 수 있는가에 이목이 집중됐다.

그중 예장 통합측은 9년 전 총회에서 결의한 ‘세습방지법’(목회지 대물림)과 관련해 끊임없이 제기돼온 내부 갈등을 일단 봉합해 주목을 받았다. 통합측은 이번 제107회 총회에서 명성교회 세습을 바로 잡아달라고 6개 노회가 올린 헌의안을 총대 찬반 투표에 붙여 반려했다. 또 세습을 금지한 교단 헌법 정치 제28조 6항 삭제 여부를 1년간 연구하기로 하는 등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를 보여줬다.

통합 총회가 ‘세습방지법’, 즉 목회지 대물림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킨 건 2013년 9월 제98회 총회에서였다.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가 한해 앞서 이 법을 통과시킨 게 일종의 자극제가 됐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총회 석상에선 찬반 논란이 치열했으나 투표 결과 84%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됐다. 이 결의안은 그 이듬해 봄 노회 수의과정을 거쳐 교단 헌법으로 명문화됐다.

그런데 5년 전, 명성교회 당회가 김삼환 목사의 아들 김하나 목사를 후임 담임목사로 청빙하면서 교단 헌법 위반 논란이 불거졌다. 해당 노회에서까지 갈등이 격화되자 통합측은 2019년 열린 총회에서 ‘수습안’을 전격 통과시켰다. 후임 김하나 목사와 당회원에 일정 기간 벌칙을 주되 기간이 경과한 후에는 그대로 인정하는 게 골자였다.

그러자 교단 안팎에서 통합 총회가 법을 위반하고 사실상 세습을 용인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일부 노회는 법을 잠재하고 결의한 ‘수습안’이 무효라며 총회 때마다 거듭 문제를 제기했고 소송전으로도 번졌다. 이번 총회에 6개 노회가 올린 헌의안도 같은 맥락이다.

통상적으로 노회가 총회에 보낸 헌의안은 헌의위원회가 정치부로 보내고 정치부가 자체적으로 논의한 내용을 본회의에 내놓고 총대들의 의견을 묻는 게 절차다. 그런데 헌의위가 교통정리를 하는 도중에 한 총대가 발언권을 얻어 “이미 끝난 문제를 계속해서 총회에 올리는 것이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헌의안 폐기를 주장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의장은 한두 차례 찬반 의견을 개진토록 한 후 헌의안 처리 여부를 찬반 투표로 정하자고 제안했고 결국 613명이 찬성, 465명이 반대해 헌의안 자체가 반려됐다.

이번 통합 총회에서는 ‘세습방지법’으로 불리는 교단 헌법 정치 제28조 6항을 아예 삭제해 줄 것으로 요청하는 상반된 헌의안도 다뤄졌다. 그러나 이 헌의안은 앞서 본회의에서 투표 끝에 반려된 6개 노회 헌의안과는 달리 소관부서인 헌법위원회에서 논의해 방향을 정한 그대로 1년간 연구하기로 해 대조를 이뤘다.

한국교회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담임목사직을 물려주는 소위 ‘목회 세습’이 이뤄진 건 1960년대부터였다. 그런데 당시는 문제 삼는 사람도 없었을뿐더러 하등에 문제될 게 없었다. 당시의 분위기는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교회 목회를 물려받는 것을 사명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대단한 희생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외환 위기를 전후해 일부 대형교회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부정적으로 굳어지던 때다. 내로라하는 개척 1세대 목회자가 은퇴하는 시기와 맞물려 일부 대형교회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담임목사직을 물려주는 사례가 이어지자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가 이를 ‘부의 대물림’, ‘지위의 대물림’ 등으로 규정하며 비판했고 사회적인 쟁점으로 떠올랐다.

2012년 기감이 한국교회에서 가장 먼저 이 법을 통과시킨 건 2000년대 들어서 교단 소속의 일부 대형교회가 연속적으로 목회 세습을 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그 이듬해 통합 총회가 전격적으로 ‘세습방지법’을 통과시켰고, 바로 이어 총회를 개최한 합동측도 ‘세습 금지’ 결의에 동참했다.

그런데 주목할 건 당시 통합 총회의 결의에 대한 반향이 그 어떤 교단보다 컸다는 점이다. 그건 합동측과 교단 분열 이후 비교적 순탄한 길을 걸어온 이력과 보수와 진보가 고르게 섞인 교단 색깔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1988년 NCCK가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발표하자 교단의 증경총회장이자 한국교회 큰 어른인 한경직 목사를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창립해 보수 연합을 주도했던 기억의 학습효과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통합측 총회의 명성교회 관련 결의는 교단 내부적으론 해마다 반복돼온 문젯거리를 단번에 마무리한 성과로 평가될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더 무거운 숙제를 교계에 던진 것으로 봐야 한다. 이제부턴 특정 교회의 사례를 봉합한 게 문제가 아니라 교단이 9년 전에 결의해 헌법으로 정한 ‘세습방지법’을 존폐의 기로에 서게 했으니 말이다.

목회지를 아들이라는 이유로 물려줘선 안 되는 문제가 절대 불변, 만고의 진리일 수는 없다. 그러나 법으로 정하고 나서 그 법의 무게가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되면 총회의 권위는 추락하고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제 와 교단이 교회의 거룩성을 위한 결단을 한 건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한 건지를 따지는 건 무의미해졌다. 다만 차제에 사회적 여론을 의식한 나머지 개교회 구성원의 권한을 총회가 빼앗은 데서 문제가 시작된 건 아닌지를 차분히 복기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존폐 여부에 대해서는 그런 후에 교단이 현명하게 판단해 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