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론] 무엇이 거듭남인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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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

*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최더함 박사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 3:5~8)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1. 영원한 생명, 조에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착한 사람’이거나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 정도가 아닙니다. 그들은 전혀 새로운 사람들입니다. 이 새로워진 사람들은 새로운 생명을 획득하면서 영생의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성경에는 두 종류의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는 ‘비오스’인데 이는 각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육신적 생명을 의미합니다. 이 생명은 시간이 다 되면 죽음으로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러므로 이 생명은 유한한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음식을 먹고 좋은 환경에서 살면서, 때론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되도록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며 육신의 안락함을 누릴 때 안도감과 행복감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음악들은 모두 이 ‘비오스’를 위한 것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조에’인데 이는 영원히 죽지 않는 영적인 생명을 가리킵니다. 무엇보다 이 생명은 우리가 예수를 믿고 다시 태어날 때 주어지는 생명입니다. 이 ‘조에’를 얻는 것을 두고 성경은 ‘거듭난다’고 말합니다. 신학적인 용어로는 ‘중생’입니다.(중생에 대해선 다음 주에 강설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선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3:3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실제로 역사상에서 거듭남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놀라운 업적을 쌓은 믿음의 영웅들이 즐비합니다.

1) 어거스틴(354~430)

그의 젊은 시절은 방탕이었습니다. 특히 음란에 완전히 도착된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 모니카의 간절한 기도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16살의 나이에 가출하여 19살의 나이에 벌써 사생아를 낳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32살이 되었습니다. 친구 알피우스는 그런 어거스틴에게 이집트 수도사로 유명한 안토니우스의 놀라운 거룩과 희생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며 어거스틴의 마음을 돌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추한 정욕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자신의 고백록에서 이렇게 당시의 심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묵는 집에는 작은 정원이 있었습니다. 가끔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정원으로 나갔습니다. 그곳이라면 저와 자신의 격렬한 싸움을 방해할 사람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반쯤 미쳐 있었고 머리를 쥐어뜯고 두 주먹으로 이마를 쳤습니다. 손가락들을 서로 엇갈려 낀 채 두 무릎을 감싸 안았습니다.”

그런 어느 날, 밤새 마신 술기운에 취해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잔 그의 귀에 갑자기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톨레 레게, 톨레 레게)

그래서 그는 얼른 친구 알피우스를 찾아가 바울 서신 중 한 구절을 찾아 읽었습니다. 그것이 그 유명한 어거스틴의 회심을 이끈 로마서 13장 13~14절입니다.

“낮과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문장을 다 읽고 나자 확신의 빛이 마음에 홍수처럼 밀려들고 모든 의심의 어둠이 물러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로써 마침내 어거스틴은 거듭났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확인할 수 있냐구요? 이후로는 두 번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어거스틴의 심령의 정원에 성령의 바람이 불었던 것입니다. 그 바람은 아이들의 노랫소리로 불었고 성경의 말씀으로 불었습니다. 그러자 어거스틴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던 어둠의 구름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밝은 빛이 비추었던 것입니다. 이 밝은 빛으로 어거스틴은 영원한 생명인 ‘조에’를 얻은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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