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난 속 반복되는 비극, 교회가 상처 보듬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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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수도권에 내린 폭우로 서울 강남 일대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유례없는 수해가 발생했다. 이중 침수된 반지하 주택을 빠져나오지 못해 참변을 당한 서울 신림동 장애인 일가족 사건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서울 강남과 관악구, 동작구 일대에 400mm 이상의 폭우가 한꺼번에 쏟아진 날 저녁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 살던 장애인 언니와 동생, 동생의 딸 등 세 가족은 빗물이 가득 찬 방 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반지하 주택이 홍수에 얼마나 취약하고 위험한 지는 홍수 때마다 반복되는 비극적 사례가 잘 말해준다. 지난 2011년 폭우 때도 반지하 주택에서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졌었다. 5년 전엔 인천의 한 반지하 주택에서는 치매 노인이 변을 당하기도 했다.

문제는 행정당국이 이런 문제를 알고도 수년 째 제대로 된 대책을 실천에 옮기지 않아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건이 벌어져 비판 여론이 들끓으면 매번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처방을 내놓지만 잠잠해지면 그나마 사후 대책도 슬며시 함께 자취를 감추곤 했다.

지난 2011년 7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광화문과 강남역 등 홍수 취약지역 7곳에 대형 배수관인 ‘빗물터널’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 계획은 그해 10월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면서 대폭 수정됐다. 민주당이 다수인 서울시의회가 오 전 시장이 과도한 토목공사를 벌이려했다며 예산을 대폭 줄였기 때문이다. 전임자가 망가뜨려 놓은 재난 대비책을 시급히 복구하는데 현 오 시장의 시간이 너무 짧았을 수 있다. 그렇다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10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 “수해 국민께 정부를 대표해 죄송한 마음”이라며 머리 숙였다. ‘하천홍수 및 도심침수 관련 대책회의’를 열고는 2011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하다 중단·축소된 ‘빗물터널’ 건설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번에는 과연 얼마큼 실효성이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서울시는 또 이번 홍수 사태에 대한 장기적 대책의 하나로 서울 시내에서 지하·반지하 주택을 없애나가겠다고 발표했다. 상습침수 또는 침수 우려구역을 불문하고 앞으로 지하층은 사람이 살 수 없도록 하겠다는 건데 벌써부터 논란이 뜨겁다.

서울 시내에는 전체 가구의 5% 수준인 약 20만 호의 지하·반지하가 주거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주거 형태를 없애면 갑작스런 홍수 시 신림동 일가족처럼 참변을 당하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과밀한 주택문제는 어떻게 되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반지하에서 밀려나면 더 열악한 쪽방이나 고시원 같은 곳밖에 갈 데가 없는 게 현실이다. 지하·반지하 주거를 없애기로 한 서울시의 홍수대책이 크게 환영받지 못하는 건 그 때문이다.

사실 백년 만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이번 홍수는 딱히 누구의 잘못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누구보다 국민의 쓰린 가슴을 보듬어야 할 정치권의 경솔한 언행과 책임 공방이 국민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는 점은 참으로 안타깝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수해 현장을 찾아 복구지원에 나섰던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이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고 했다가 여당 전체가 호된 질타를 받고 있다. 비대위 체제로 전환한 국민의힘이 수해 현장 복구지원에 나서게 된 건 아무래도 최근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과 내홍을 겪고 있는 당내 사정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여당 의원의 막말 한 마디에 7시간 가까이 수해 현장에서 흘린 땀의 보람은커녕 욕만 실컷 얻어먹는 꼴이 됐다.

그렇다고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무차별 공격에 열을 올리고 있는 야당에 국민이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수도권 집중호우와 관련해 “아비규환 와중에 대통령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며 윤 대통령이 자택에서 대책을 지시한 것을 문제 삼았다. 고민정 의원 등 일부는 이번 수해가 마치 청와대를 옮겼기 때문인 양 홍수대책과 무관한 비판을 쏟아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재난 앞에 장사는 없다. 특히 천재지변에 여야가 따로 일 수 없다. 평소에는 싸우다가도 국민이 고통을 당하고 피해가 발생하면 정쟁을 멈추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사태를 수습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진정한 정치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재난을 정쟁에 이용하는 게 일상화돼 있다.

정치가 제 할 일을 하지 않는다고 교회마저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등 한국교회 구호단체들이 수도권 수해 피해 현장에서 복구 지원에 구실 땀을 흘리고 있다. 이번 수해가 주로 강남 일대에 집중된 것을 놓고 부자동네에 무슨 복구 지원? 하며 의문을 제기하는 분위기도 일부 있다. 그러나 반 지하 셋방, 그보다 열악한 주거 환경에 사는 주민은 강남지역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이런 때일수록 민심은 피폐해지기 쉽다. 정치권은 당장 정쟁을 멈추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행정당국은 제대로 된 재발 방지대책을, 그리고 교회는 아픈 이들과 함께 울고 상처를 감싸주는 각자의 역할에 보다 충실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