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가부 존폐논란, 정치적 편향이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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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여성가족부(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여가부 존폐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는 여가부 폐지 주장에 “국민 편 가르기 정치”라며 비판에 나섰지만, 야당은 문재인 정권 5년간 줄곧 ‘국민 편 가르기’를 한 것이 누구냐며 역공에 나서고 있다.

여가부 존폐논란은 지난 7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SNS에 “여성가족부 폐지”라고 쓴 후 뜨겁게 타올랐다. 특히 젠더 이슈에 민감한 20대 남성들이 단 하루 만에 수만 개의 ‘좋아요’와 댓글을 달 정도로 폭발적인 반향이 일었다.

당장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반박에 나섰다. 이 후보는 페이스북에 “단칼에 특정 집단만을 선택하는 정치는 나쁜 정치”라며 윤 후보를 겨냥했다. 이 후보는 지역 유세 중에도 “편 가르기, 보수 우익 포퓰리즘”이란 용어를 동원해 비판을 이어갔다. 여당도 “분열의 정치를 하는 퇴행적 집단에 철퇴를 내려달라”며 맹공에 나섰다.

이재명 후보 측이 윤석열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에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윤 후보의 여가부 폐지 공약이 2030세대 남성의 표심을 겨냥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윤 후보가 소위 2030 MZ세대의 지지를 얻기 위해 민감한 ‘젠더 이슈’를 꺼내든 자체가 ‘국민 편 가르기’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 반론도 적지 않다. 대선을 치르는 후보의 입장에서 성별과 세대가 관심을 갖는 주제를 공약으로 내세운 것을 분열, 또는 편 가르기라고 단정할 수 있냐는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여성의 40% 정도가 여가부 폐지에 찬성하고 있는 것에서 보듯이 이것을 무조건 2030 남성의 표를 얻기 위한 표퓰리즘으로 몰아세울 명분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사실 여가부 존폐 논란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윤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우기 훨씬 전부터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였다. 현 여가부는 지난 2001년 김대중 정부 때 ‘여성부’라는 이름으로 신설돼 그 후 ‘여성가족부’, ‘여성부’에서 다시 ‘여성가족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역대 정권마다 명칭을 여러 번 바꿨다는 것은 그만큼 제 역할을 하지 못해 개편·축소·폐지 등의 요구가 비등했다는 걸 뜻한다.

이런 여가부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리 사회에 거세게 일게 된 것은 지난 2020년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권력형 성 비리사건에 여가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여권 일부에서 피해자인 여성을 ‘고소인’ 또는 ‘피해호소인‘ 등으로 지칭하며 오히려 가해자인 박 전 시장을 두둔하는 듯한 처신으로 여론에 뭇매를 맞았다. 이정옥 전 여가부 장관은 서울과 부산에서 보궐선거를 치르게 된 데 대해 “성인지성에 대한 집단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해 끓는 가마에 기름을 부었다.

여가부 존폐논란의 책임이 일차적으로 여가부에 있다고 보는 이유가 이뿐 만이 아니다. 지난 2020년 7월 텔레그램 ‘n번방’ 사건과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운영자 손정우 사건이 벌어졌을 때 누구보다 피해 여성의 권익 대변과 구제에 나서야 할 여가부가 오히려 침묵한 것은 뭐라 변명이 안 된다.

‘젠더 이슈’는 우리 사회가 전통적으로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간주하면서 그 대치점에 있는 남성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논란이 핵심이다. 경쟁 사회에 뛰어든 2030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 보호, 성차별 금지, 여성의무할당제 등 여성을 우선하는 각종 사회적 보호장치에 불만을 가질 수 있다. 이들이 양성평등을 넘어 오히려 남성에 대한 불이익이 사회 제도 곳곳에 만연하고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30 MZ세대 남성들 중에는 ‘여성가족부’를 ‘남성 차별부’로 인식하는 등 뿌리 깊은 불신을 드러내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도 여성계는 이런 현상을 “일부 표피적 현상에만 치우쳐 사회 구조적으로 여성에 가해지는 잠재적 불평등을 간과하고 있다”는 식으로 그 책임을 남성에게 떠넘기고 있어 둘 사이에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여가부 폐지논란이 대선 이슈로 급부상하면서 가장 난감한 곳은 아무래도 여가부일 수밖에 없다. 그걸 의식해서인지 여가부 장관은 최근 명칭 변경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여성과 가족에 청소년까지 넣어 ‘여성청소년가족부’ 또는 ‘청소년여성가족부’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성가족부가 이름을 다르게 바꾼다고 해서 곱지 않은 시선이 당장 우호적으로 바뀔 거 같지는 않다. 해답은 내용에 있지 포장지에 있지 않다는 말이다. 즉 여가부가 남녀 문제에 있어서 겉으로는 성 평등을 내세우면서 그것이 오히려 남녀의 갈등을 조장하고 역차별을 일삼지 않았는가 되돌아볼 때가 됐다. 또 여성 보호와 권익증진에 있어 모든 여성이 아닌 현 정권의 이념과 사상에 부합한 여성들만 선택적으로 보호하는 등의 편향적 행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존폐론을 잠재우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교계와 학부모단체들은 여가부가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이고 윤리적인 가정과 성(性)을 해체시키려고 하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고 지원한다는 명목 아래 동성혼의 합법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며 거세게 반발해 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여가부 존폐 문제는 대선 결과에 따라 향방이 엇갈릴 전망이다. 만약 이재명 후보가 당선된다면 지금의 지위를 유지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겠지만 윤석열 후보가 당선된다면 폐지 내지는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여가부가 ‘환골탈태’ 수준으로 개혁되지 않는 한 시간이 가면 또 존폐론의 중심에 서게 될 게 뻔하다. 정치적 편향이 아닌 공정과 상식으로 다시 태어나는 여가부를 바라는 이유다.